[빛나는 준우승] '파격, 또 파격' 거침없던 슈틸리케의 승부수

김태석 입력 2015. 2. 1. 07:15 수정 2015. 2. 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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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축구 감독들은 승부가 벌어지기 전 경기 중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한다. 농구처럼 작전 타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전술 훈련을 통해 조직력을 다지고 승부한다. 따라서 변수라는 걸 매우 싫어한다. 변화 역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큰 틀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파격적 결단을 서슴지 않았고, 허를 찌르는 승부수는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2015년 1월의 마지막 날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호주에 패했다. 한국은 후반 추가 시간(90+1′) 손흥민이 극적 동점골을 넣는 등 분전했으나, 호주에 전반 45분과 연장 전반 15분 두 골을 허용하며 1-2로 석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은 다시 한 번 벽에 막히고 말았다.

부임 4개월 만에 나서는 메이저 대회,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가 다소 떨어진 상황에서 임하는 도전이라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도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과감했다.

대회 개막 전 엔트리 발표부터 파격이었다. 스트라이커 이정협을 기용한 건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카드였다. 국제 경기에서 통할 수 있는 전문 골잡이는 이동국·박주영·김신욱 외에는 없다는 게 그간 축구인들이 바라보는 공통적 견해였다. 이중 두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졌고, 박주영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전후로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어 국가대표팀에 뽑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방에 무게감을 더해줄 공격수가 없다는 건 슈틸리케 감독에겐 큰 골칫거리였다. 이때 꺼낸 카드가 바로 이정협이었다. 이정협은 국제 경험 부족이라는 약점을 성실한 플레이로 상쇄시키며 이번 아시안컵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슈틸리케호의 결승행을 견인했다. 이번 대회 최고의 발견이라고 평해도 무방한 이유다.

경기 중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놀라운 승부수를 던졌다. A조 선두 자리를 놓고 다퉜던 조별 라운드 3차전 호주와 승부에서는 한교원을 오른쪽 측면에 배치해 상대 측면 공격을 봉쇄하는 수비형 소임을 맡겼다. 이번 대회에서 호주의 주 득점 루트가 측면이라는 걸 읽고 내세운 카드였는데, 수비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평가받는 한교원이 이 소임을 매우 충실히 해냈다.

토너먼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기성용은 언제나 중앙에 서야 한다는 그간의 편견을 깨뜨렸다.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기성용을 후반 중반 이후부터는 왼쪽 날개로 배치시킨 것이다. 전방에서 볼이 원활하게 돌면서 한국은 공격의 활로를 찾았고, 손흥민의 2골로 연장 혈투 끝에 승리할 수 있었다.

비록 이기지 못했지만 호주와 결승전은 슈틸리케 감독이 승부처에서 얼마나 대담한 결정을 내리는 지휘관인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박주호에게 최근 4~5년간 거의 서 본 적이 없는 위치인 왼쪽 날개 공격수 구실을 맡겼다. 앞서 언급한 한교원 효과와 마찬가지로 상대 오버래핑을 저지하고 공격에 힘을 불어넣는다는 계산이었고, 덕분에 이반 프라니치가 자리한 호주 오른쪽 측면은 박주호가 활약할 때 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했다. 0-1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는 공중볼 경합이 뛰어난 곽태휘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올리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곽태휘의 전진 배치는 손흥민이 경기 종료 직전에 터뜨린 드라마틱한 동점골에 간접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재차 강조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매우 어려운 대회였다. 한국 축구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주전들의 연쇄 부상으로 정상적 스쿼드를 꾸리기도 어려웠다. 대회가 벌어진 호주는 걸핏하면 폭우가 쏟아졌고, 상대 선수의 거친 플레이에 이청용·구자철이라는 핵심 미드필더들을 잃는 악재까지 겹쳤다. 이런 상황에서 무실점 전승으로 결승전까지 오른 것은 기적적 결과에 가깝다. 이 기적을 변화무쌍한 지략으로 만들었다. 슈틸리케호의 향후 행보에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gettyImages멀티비츠(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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