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 비판했다고 징계받은 국책연구원

권순철 기자 2015. 1. 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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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부 고위인사, 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기고문에 분노… 글 삭제·징계 조치 요청 의혹

국책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징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원이 기고한 글은 현재 온라인 상에서 삭제된 상태다. 연구원에 대한 징계과정에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쪽에서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2월 국회가 개원하는 대로 진상조사에 나설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속 K모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발행하는 <TTA 저널>에'재난통신'과 관련해 서언과 전문가 인터뷰 형식의 기고문을 썼다. 하지만 기고의 대가는 컸다. 글은 온라인 <TTA 저널>에서 삭제됐고, K모 연구원은 징계대상이 돼 지난 1월 19일 인사위원회에서 '견책' 징계를 받았다.

정부가 올해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 게 발단이었다.

정부는 올해부터 PS LTE(공공안전 롱텀에볼루션) 기술방식으로 재난안전통신망사업에 들어갔다. 이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사업을 반드시 구축하겠다고 밝힌 이후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총사업비만 2조원 이상 소요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재난통신망 구축 신중해야" 지적

하지만 전문가들과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PS LTE 기술이 아직 국제표준화조차 이뤄지지 않는 등 기술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난통신망사업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주간경향 1102호 참조)

K모 연구원도 <TTA 저널> 기고문에서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을 뿐이다. 그는 기고문에서 "PS LTE 기술을 도입한 미국, 영국의 경우도 현재 또는 가까운 장래에 사용할 재난안전통신용 그룹 음성통화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PS LTE 망에 재난안전통신용 데이터와 그룹 음성을 모두 제공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이는 해외 구축 현황과 재난안전통신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다소 무리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PS LTE 망 구축은 전국적인 망 구축에 수조원이 들고, 운영 및 유지·보수에도 매년 수천억원이 소요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위한 공정하고 타당한 정책방향 제시와 함께 이런 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책연구원의 연구원으로서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 저널이 최근 책자로 발행된 이후 불거졌다. 미래부 고위 인사가 기고문을 보고 분노했다는 후문이 돌았고, 그 직후 미래부는 정보통신기술협회에 인터넷 상에서 해당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부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기술방식으로 PS LTE 방식을 선정한 주무부처다.

K모 연구원은 해당 글을 온라인 상에서 왜 볼 수 없는지 정보통신기술협회 측에 항의했다. K모 연구원은 "미래부의 요구에 의해 불가피하게 다운로드할 수 없도록 막아놨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기술협회도 미래부 요청으로 해당 글이 삭제됐음을 사실상 부인하지 않았다. '미래부의 요청으로 해당 글이 삭제됐느냐'는 <주간경향>의 확인 요구에 정보통신기술협회 측 관계자는 연거푸 "노코멘트"라고만 했다.

미래부는 산하기관인 전자통신연구원에 K모 연구원에 대한 조치를 요청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K모 연구원은 "인사위에 참석한 한 인사위원이 '위쪽(미래부)이 불편해 한 사항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면서 "이는 징계와 관련해 미래부와 전자통신연구원 사이에 사전에 소통이 있었다는 의혹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부인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미래부 쪽에서 TTA 저널에 기고문 수정을 요청한 적이 없고, TTA 저널 측에서 스스로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자통신연구원에 글을 쓴 연구원에 대한 어떤 조치를 요구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전자통신연구원이 이 연구원을 징계한 이유는 두 가지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관련 사안은 사전협의 후 대내외 기고 등을 추진하라는 부서장의 지시사항을 위반했다는 점과 연구원 내규인 원고에 대한 사전 심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전경

"허가받지 않고 기고했다" 이유

하지만 이 연구원은 신문·방송 등이 아닌 정보통신기술협회에서 물어온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태의 기고라서 사전 협의 대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K모 연구원은 정보통신기술협회 산하 정보통신표준화위원회 공공안전 PG(프로젝트그룹) 의장으로 수년 동안 활동해 왔다. 사실 이 기고문도 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자격이 아닌 공공안전 PG 의장 자격으로 썼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전자통신연구원이 사전에 승인을 받지 않고 기고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조치를 취한 것은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연구원이 사전에 승인을 받지 않고 2010년 9월 TTA 저널에 똑같은 형식의 글을 기고했으나 당시에는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자통신연구원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는 "이는 개인의 인사문제이고, 지금은 징계에 대한 재심 요청기간이기 때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인 우상호 의원은 "연구기관의 책임자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전문분야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과 관련해 문책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해당 사안에 대해 미래부에서 압력이 있었는지, 연구원들의 과거 기고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노동연구원 출신의 은수미 의원(새정치연합)은 "국책연구기관은 특정 정부의 소유가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민의 연구기관"이라며 "정부의 정책이 국민의 이익에 반할 때는 정부 정책이라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외부 기고에 대해 연구원 내규상 사전에 신고하도록 돼 있더라도 이에 앞서 연구원들은 헌법상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 책임연구원의 'TTA 저널' 기고문 요약

재난안전통신(PS LTE) 기술 개발에 대한 국내외 현황과 우리 정부의 정책 방향을 말씀해 주신다면.

"PS LTE 망 구축은 정부가 구축하고 운영하는 자가망이 타당하지만 전국적인 망 구축에 수조원과 운영 및 유지·보수에 매년 수천억원이 소요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위한 공정하고 타당한 정책 방향 제시와 이런 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수렴하여 결정된 정책 방향을 소신 있게 끝까지 책임지고 추진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갖춘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재난안전통신에 대한 국내외 표준화 현황을 말씀해 주신다면.

"이러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에는 신중하고 장기적인 국제표준기술 로드맵에 근거하여 계획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기 위한 국제적인 표준화는 기술의 실현성뿐 아니라 기존 기술과의 역호환성과 앞으로의 기술 진보성을 고려하여 진행돼야 합니다. 나라별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며, 표준규격 완료 후 최소 2년 후에나 표준에 맞는 상용장비 구현이 가능하여 실제 서비스 제공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에 대해 설명과 이를 추진하는 데 있어 시급한 점과 문제점이 있다면 해결방안은.

"유감스럽게도 PS LTE 망과 PS LTE 스마트폰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2017년쯤에 고화질 영상서비스와 실시간 영상 그룹통신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재난안전 통신시스템과 미션크리티컬 '푸시 투 토크'(PTT)를 제공하는 PS LTE 스마트폰이 보급되리라 판단되며, 이런한 점을 고려하여 단기간에 실적 위주의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기초부터 완벽하게 다진다는 신념으로 서서히 점진적으로 완벽하게 동작하는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여야 합니다. 백년대계 사업으로 생각하여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재난통신기술을 연구개발하여야 하고, 재난안전통신망을 확실히 구축하기 위한 전담기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난안전통신 국내 시장 현황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활성화를 위해 선결되어야 할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은.

"국내 재난망의 PS LTE 스마트폰 수요는 5년 동안 30만대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 수량은 전형적인 중소통신제조업체의 사업영역으로 현재의 UHF 무전기 및 TETRA TRS 단말기를 생산하는 전문 중소통신업체가 전담해야 할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난안전통신망 기술표준화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전문 중소통신업체를 참여시키고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사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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