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차라리 탈영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수영 기자 2015. 1. 3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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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이 일병…탈영?

이 모 일병은 지난 16일 목포 북항 쪽에서 해안 경계 근무 도중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K-2 소총과 공포탄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군은 발칵 뒤집혔고, 함께 근무를 하고 있던 선임병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선임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간 뒤 사라졌습니다."

군은 탈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경찰력을 지원받아 주변 도로와 터미널을 중심으로 이 일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탈영병은 보통 하루 이틀 정도면 어딘가에 연락을 하거나 흔적을 남기는데 도통 나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자, 점점 탈영보단 사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육군 고위관계자도 이런 부분을 인정했습니다.

탈영의 경우 이성문제, 금전 관계 등 원인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일병의 경우는 친구에게 돈을 좀 보내달라는 연락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징후가 없었습니다. 부대 내에서도 다른 장병들과 관계에서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주일 뒤, 근무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 일병은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사고 발생 일주일 만입니다. 사인은 익사.. 실족해서 물에 빠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탈영이 아닌 사고로 인해 숨졌지만 사실 이 부분은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 뒤늦게 드러난 거짓말…탈영병의 오명을 쓰다

좀처럼 이 일병을 찾는데 진척이 없자 군은 같은 부대 장병을 상대로 재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일병과 함께 근무를 했고, 마지막 행적을 진술했던 선임병을 다시 조사하다가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 이상 반응이 나온 것입니다.

결국 선임병은 거짓을 말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일병이 사라질 당시,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차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감췄고, 거짓 진술 때문에 사고보단 탈영에 무게 중심이 쏠렸습니다. 사고가 났다면 이 선임병이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무심결에 내뱉은 거짓 탓에 한동안 이 일병과 가족은 탈영병과 탈영병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썼습니다.

사실 이 선임병은 해안 경계근무를 할 때 사용하는 기동 TOD(열상감시장비)차량을 운전하는 '운전병'입니다. 주 임무는 운전이지만, 경계 근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잠깐 규정을 어긴 것이지만 그 대가는 컸습니다. 만약이지만 선임병이 근무를 제대로 하고 있었다면 이 일병이 사고를 당했을 때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둡고,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적어도 소리라도 들었을 것이고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차라리 탈영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렵게 이 일병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오히려 연락한 기자가 죄송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아들이 탈영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제주도에서 목포까지 왔지만 군인과 경찰이 쫙 깔린 목포 시내를 보면서 큰일이 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부대에서 생활하면서 아들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탈영병'으로 낙인 찍힌 아들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탈영병의 아버지로 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주변의 눈을 피했습니다. 군 조사관에게 "아들은 그럴 애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다 아느냐" 라는 부정적인 답변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백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이 차라리 탈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란 것입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아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시에 선임병의 거짓 진술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고, 당장이라도 찾아가 선임병을 어떻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아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선임병을 미워하는 것도 아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이 일병 아버지는 아들의 관물대에서 물품을 정리하다가 방한 용품을 발견했습니다. 문득 이 일병과 전화통화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후임병이 계속 들어오지 않고 있었는데, 드디어 다음 달에 후임이 들어온다며 얼굴도 모르는 후임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문자 메시지로 기자에게 이 일병이 학창 시절 받은 효행 상장을 보내주었습니다. 더 많이 있는데 찾지 못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다는 아버지의 말을 아무도 듣지도, 믿어주지도 않았던 지난 일주일의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이 일병 아버지는 군에서 아들을 잃었습니다. 탈영병의 아버지로 오해를 받아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에 대한 신뢰는 잃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색 과정에서 많은 장병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군을 너무 비판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용서했습니다.

▶ 근무 태만 감추려고…선임병의 '못된 거짓말'

김수영 기자 sw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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