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으면 내 돈 물어야.." 過速 내몰리는 '철가방'

엄보운 기자 2015. 1. 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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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서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박모(31)씨는 지난 2주 동안 야식으로 족발 소(小)자 2개, 파닭 치킨 1마리, 매운 닭발 2인분을 혼자 다 먹었다.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었다. 음식 주문자가 "배달이 늦었다"며 환불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먹어치운 음식들이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일하며 밤낮으로 음식만 배달하는 박씨는 "나같이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소비자가 주문을 취소하면 무조건 내 돈으로 땜질해야 한다"며 "손해 안 보려면 무조건 빨리 배달해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작년 12월 환불로 인한 손해액이 10만원을 넘어가자 오토바이에서 사이드미러를 떼어 냈다. "차들 사이 좁은 틈을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스마트폰 배달 앱이 인기를 끌자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대행업체가 늘어났고, 배달 과정의 모든 문제를 떠안게 된 배달원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빠른 배달'에 내몰리고 있다. 2011년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던 오토바이 배달 청년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여론의 질타 속에 폐지됐던 '30분 배달 보증제'가 부활한 셈이다.

요즘 야식 배달 구조는 예전과 다르다. 주문·요리·배달이 분업화됐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배달 앱으로 야식을 주문하면 주문을 받은 음식점은 요리를 한다. 야식이 만들어지는 사이 음식점과 계약을 맺은 배달 대행업체가 배달원을 음식점으로 보낸다. 배달원은 소비자 가격보다 몇천 원 싼값에 음식을 사 배달하고 정가를 받는다. 그 차액이 배달원 몫이다. 배달이 늦어져 소비자가 주문을 취소하면 배달원은 자기 돈으로 메운다. 업계에서는 이런 구조로 배달되는 음식이 전체 배달 음식의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구조는 주문이 많지 않은 음식점들이 배달원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고, 배달 대행업체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이 시스템은 배달원에게만 불리하다. 기존 음식점에서 해고된 배달원들은 대행업체로 몸을 옮겼지만 "생활은 더 팍팍해졌다"고 했다. 한 배달원은 "음식점에서는 시급이나 월급으로 돈을 받았지만, 대행업체에서는 배달 건수에 비례해 월급을 받는다"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오토바이 곡예 운전을 한다"고 했다. 인천 부평구의 한 배달 대행업체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는 이승혁(20)씨는 "과속은 기본이고 신호도 웬만한 건 무시한다"며 "주문이 몰리는 시간엔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고 인도로도 달린다"고 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배달 오토바이를 타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3만7000여명이다. 스마트폰 배달 앱이 등장한 2013년부터 사고는 매년 1000여건씩 늘고 있다. 실제 작년 8월 배달원 박모(18)군은 시간에 쫓겨 신호를 위반해 달리다 인천 서구 심곡동 사거리에서 트럭과 부딪쳐 평생 뇌 인지 장애를 겪게 됐다.

배달원들은 "야식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행업체와 음식점이 배달원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는 행태도 문제"라고 했다. 인천의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남모(21)씨는 작년 10월 자신이 배달한 피자에서 흙이 나왔다며 환불된 피자 값의 절반인 8000원을 물어냈다. 흙이 피자집에서 묻은 건지, 배달하다가 묻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음식점 사장은 "절반은 네가 책임져라"며 돈을 받아갔다고 했다. 지난 23일 족발을 45분 만에 배달했다가 환불당해 그 족발을 자신이 먹은 김모(21)씨는 "내가 배달할 수 있는 양은 고려하지 않고 업체가 무조건 일감을 받아오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김태현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음식을 자기 돈으로 사서 배달해주고 음식값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대행업체 소속 배달원은 형태상 가장 힘이 약한 자영업자에 가깝다"며 "비용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이런 구조가 결국 이들을 위험에 밀어 넣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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