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개혁 포기로 고소득자 위장취업 '꼼수' 손 못대
경기도 여주에 사는 이모씨(77)는 아들이 경영하는 주유소에 취업한 것으로 서류를 꾸며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었다. 그는 건강보험공단에 월 보수가 60만원이라고 신고하고 월 보험료 1만7030원을 납부했다. 그러나 이씨가 지역가입자라면 연간 종합소득 3814만원과 재산과세표준 19억7373만원을 보유하고 있어 월 38만여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직장·지역으로 이원화된 건보료 부과체계의 허점을 악용해 고소득 지역가입자가 직장가입자로 위장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올해 중단키로 하면서 고소득 지역가입자들의 이런 행위도 다시 묻히게 된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에서 고쳐야 할 적폐로 잡은 고소득자의 탈법과 사각지대가 지역가입자 속에도 많은 것이다. 소득·재산 수준보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저소득 지역가입자들의 억울함만 더 커지게 되지만, 건보 개편 중단으로 다시 장기 방치될 상황이다.
고소득 지역가입자가 직장가입자 자격을 허위 취득하는 이유는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재산·자동차·성·연령에 대해 건보료를 매기지만 직장가입자는 오직 보수에만 부과하는 시스템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일하지 않는 사업장에 위장취업하거나, 소유 건물 등에 간이 사업장을 직접 차리고 직원을 고용해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는다. 직원의 건보료(직장보험료는 회사와 직원이 절반씩 부담)를 내주더라도 지역보험료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0~2002년 소유한 건물의 관리회사를 차리고 건보료를 월 2만원 정도만 낸 것이 후자에 해당된다. 건보료를 뚝 떨어뜨린 'MB표 위장취업'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부과체계 개편 기획단 위원인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사업소득(방송·광고출연료)이 많은 연예인도 연예 관련 협회에 자리를 얻은 것처럼 위장취업하고 월 보수에 대해서만 직장가입자 건보료를 내는 사례가 있다"며 "(기획단 개편안처럼) 직장가입자의 보수 외 종합소득(사업·임대·금융)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면 지역가입자의 이런 행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직장·지역으로 이원화된 부과체계 탓에 부담 능력보다 더 많은 건보료를 내고 있다. 대구 서구에 사는 유모씨는 직장에서 퇴직해 소득이 없는데도 주택(과세표준 4320만원)을 보유하고 있어 월 6만7530원(퇴직 전 직장보험료는 3만4450원)이 부과되고 있다. 직장보험료가 보수에 일정 요율을 곱해 산정하는 것과 달리 현행 지역가입자의 등급테이블은 소득·재산이 적을수록 보험료를 많이 내도록 설계돼 있다. 월 소득이 100만원인 지역가입자는 소득의 8.6%인 월 8만6000원이 부과되지만, 소득이 월 1000만원이면 3.2%인 32만원이 매겨진다. 이중삼중으로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불리한 소득 역진체계인 셈이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와 노년유니온·복지국가소사이어티·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획단의 개편 기본 방향은 형평하지 못한 부과체계를 개선해 보험료 정의를 구현하자는 내용이었다"며 "이처럼 중대한 국정과제가 정권의 지지도 등락에 따라 중단돼선 안된다"고 밝혔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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