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자는 정말 세금을 많이 낼까?

박종훈 2015. 1. 2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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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⑧

1% 부자가 우리나라 전체 '세금'의 절반을 낸다?

우리나라 부자는 정말 세금을 많이 낼까? 기획재정부는 부유층 증세 논란이 있을 때마다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세'의 45%를 낼 정도로 큰 부담을 지고 있다며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반대해 왔다. 더구나 일부 언론은 이 소득세 발언을 전체 세수로 착각하고, 소득 상위 1%가 45%의 '세금'을 내고 있다는 잘못된 기사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득세'와 '세금'은 엄연히 다르다. 소득세가 우리나라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현재 14.8%에 불과해, 전 세계 주요국가 중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이 때문에 상위 1%가 내는 소득세가 전체 '세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가 아니라 6.7%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2.97%나 되기 때문에 경제 관료들의 주장대로 부유층의 세금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세금 안 내는' 저소득층부터 증세해야 형평성이 높아진다?

연말정산 대란 이후 증세 논란이 나오자, 일부 언론은 전체 근로자의 36%에 이르는 저소득층 면세자를 세수 부족의 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세금을 아예 내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과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증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언론들은 흔히 저소득층이 '세금'을 전혀 안 낸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소득세'를 안 내는 것과 '세금'을 안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실효세율은 고작 4.48%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각종 공제제도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내는 실효 소득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이러한 소득세 실효세율을 고려할 때,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간접세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거의 모든 물건과 서비스에 붙는 부가가치세율은 10%로 소득세 실효세율의 2배가 넘는다. 더구나 담뱃값의 무려 74%, 휘발유 값의 58%, 맥주값의 53%가 세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세 실효세율에 비해 간접세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전체 세수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전체 세수 중에 고작 14.8%밖에 안 되는 소득세를 면제받았다고 저소득층이 '세금'을 한 푼도 안내고 있다며 세수 부족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는 기사는 사실상 오보나 다름이 없다.

다른 나라들은 상속세를 속속 폐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이야기가 바로 일부 국가가 상속세를 폐지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상속세를 폐지했다는 것이 상속재산에 과세를 안 한다는 얘기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상속세를 폐지한 대부분의 나라는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로 과세 방법을 바꾼 것뿐이다.

너무나 큰 실물자산을 상속받았을 때 당장 상속세를 낼 현금이 없으면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한 현금 마련을 위해 실물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흑자 도산을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 세금 내는 시점을 자산 매각 시점으로 바꾸기 위해 상속세에서 자본이득세 체제로 전환을 한 것이다.

자본이득세를 제대로 도입한 나라들은 돈으로 돈을 버는 모든 것에 과세하는 조세체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전면적으로 자본이득세 체제로 전환하면 사실상 부유층의 세 부담은 더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온갖 공제제도로 양도세에 구멍이 뚫려 있는 나라에서 상속세를 폐지한다면 부의 대물림만 가속화시킬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자본이득세를 강화하지 않은 채, 가업상속 공제라는 제도 하나만 따 와서 일부 부유층의 상속세를 대폭 공제해 주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매출이 3천억 원 이하인 기업의 경우 상속시 5백억 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그런 면에서 정말로 상속세를 무력화시킨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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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조세 개혁만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는 길이다

조세체계는 나라마다 매우 다르고 복잡하기 때문에 부유층이 실제로 세금을 많이 내고 있는지 확인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 때문에 조세와 재정정책으로 빈부 격차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확인하는 방식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Oxfam)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토대로 조세제도로 빈부격차가 개선되는 효과(지니계수 감소율)를 계산한 결과, 우리나라는 고작 9%에 불과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에 최하위권이었다. OECD 회원국 평균이 35%이고, 우리 정부가 모범 사례로 여기는 독일은 무려 42%나 된다. 더구나 자유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미국조차 25%나 개선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빈부 격차 개선율은 너무나 미미한 편이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 관료들은 지금도 세금 얘기만 나오면 우리나라 부유층이 세금을 '너무' 많이 내고 있고, 세금을 내지 않는 저소득층 근로자가 너무 많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같은 관료들의 인식은, 부자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상당수 국민들의 인식은 물론 실제 통계와도 동떨어져 있다. 지금 당장 조세 구조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조세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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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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