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예뻐도 안 쓰다듬어요.. 오해 살까봐"

김승재 기자 2015. 1.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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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나 콩나물같이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반찬 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잘못했다간 학대했다고 오해받아요."

27일 서울 송파구의 한 민간 어린이집의 점심시간. 정원 13명의 만 4세반 담임 이모(32)씨는 "편식하는 습관을 바로잡아주려 안 먹는 반찬을 권했다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괜한 오해를 산다"고 했다. 이씨는 숟가락을 던지며 교실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붙잡으러 다녔고,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겐 차분히 남은 밥을 떠먹였다. 정작 이씨는 국그릇에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넣고 비벼 5분 만에 식사를 해결했다. 급하게 먹었는지 이씨는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최근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 폭행 사건 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데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본지 기자 2명이 실태 파악을 위해 서울 송파구의 한 어린이집 일일 보육교사를 해봤다. 이씨가 요령 있게 아이들을 살피는 사이, 아이들은 "꺅~" 하며 비명을 내지르고, 수저로 철제 식판을 "탕탕탕" 두드렸다. 처음 경험한 두 기자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체험한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보육교사에게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보육교사들은 "몸 힘든 건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를 '잠재적 아동 학대범'으로 보는 시선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이날 오전 9시 10분쯤부터 아이들이 하나둘 어린이집으로 모였다. 보육교사에게 배꼽 인사를 한 아이들은 장난감을 향해 돌진했다. 10시 20분까지는 자유 놀이 시간이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놀았고, "선생님, 저건 뭐예요?" "선생님 안아주세요"라며 30초에 한 번씩 선생님을 찾았다. 그때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얼굴에 미소를 만들며 대답했다.

만 5세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아이는 장난감으로 다른 아이의 머리를 내리쳤고, 다른 아이는 5세반 담임 김모(39)씨에게 다가가 친근함을 표시하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김씨는 "아이가 아프게 때려도 째려보지 않고 아이가 예쁠 때도 쓰다듬지 않으려 주의한다"며 "CCTV로 보면 쓰다듬는 게 때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점심 식사 전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안전 교육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순간이었지만 이내 사고가 이어졌다. "쿵" 소리가 나 돌아보니 돌아다니던 한 아이가 의자에 부딪혀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가장 힘든 시간은 점심시간. 아이들은 "선생님, 물 주세요" "콩나물 옷에 흘렸어요" "친구가 날 놀려요"라며 쉴 새 없이 선생님을 찾았다. 밥 먹다가 돌아다니는 아이, 책 보는 아이, 드러눕는 아이들을 챙기던 교사 김씨는 힘에 부친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다 먹은 아이 양치를 돕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보육교사 이씨는 "우리도 인간이라 가끔 너무 힘들고 짜증 날 때도 있다"며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 찬 바람을 쐬고 오기도 한다"고 했다.

식사 후 3~4세반 아이들은 낮잠을 잤고, 5세반 아이들은 영어 수업을 받았다. 한 명이 알파벳 노래를 부르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자 3~4명이 우르르 따라갔고, 덥다고 한 아이의 겉옷을 벗겨주자 나머지 아이들이 너도나도 옷을 벗겨달라 했다. 한 보육교사는 "한 반에 CCTV가 2대씩 설치돼 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다"고 했다.

보육교사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만 3세반 담임 김민성(42)씨는 이날 하루 종일 코를 풀고 기침했다. 지난주 아이에게서 옮은 감기가 낫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아이와 온종일 살을 맞대고 생활하다 보니 한 아이라도 감기에 걸리면 옮지 않을 수 없어 매년 감기를 달고 산다"며 "병원에 갈 시간도 없어 아파도 어린이집에서 아파야 한다"고 했다.

일이 고되지만 보육교사들은 최근 벌어진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에 대해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만 2세반 담임 이미경(49)씨는 "우리 교사들은 힘들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걸 보람으로 삼는 사람인데 아이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 했다. 김미정 어린이집 원장은 "이번 사건으로 묵묵히 일해온 다수의 교사가 너무 위축됐다"며 "사명감과 사랑으로 일하는 교사가 더 많다. 우리를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어린이집을 찾은 학부모 백모(41)씨는 "여러 아이 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번 일 때문에 불안감이 큰 건 사실"이라며 "고생하면서도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선생님들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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