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일하면 아들이 논다?..'일자리 딜레마' 닥친다

서진욱|김남이 기자|기자 2015. 1. 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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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구절벽-한국사회 뒤흔든다]<2>번지는 고용대란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김남이 기자] [[2020 인구절벽-한국사회 뒤흔든다]<2>번지는 고용대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28년째 근무 중인 김장년씨(54)는 2016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60세 의무화'로 최소 6년은 더 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임금피크제로 연봉은 30% 정도 깎이지만 더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김씨에겐 큰 행복이다. 재취업시장에서 이 정도 연봉을 주는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깝다. 하지만 김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2년째 대학 졸업을 미루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 청년씨(27) 때문. 명문대 졸업을 앞둔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좀처럼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인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장년씨의 마음은 답답해진다. 얼마 전 장년씨가 다니는 대기업에 지원했던 청년씨는 또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장년씨는 괜히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아들에게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한국이 저성장·고령화의 굴레에 빠져들면서 일자리를 둘러싼 청년층과 장년층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저성장으로 일자리가 정체되면서 장년층의 정년 연장과 재취업이 청년층의 취업을 가로막는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13~2023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는 2013년 3595만명에서 2023년 3441만명으로 153만명(4.3%)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경제활동인구(만 15세 이상 중 취업이 가능한 인구, 취업자+실업자)는 여성과 장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면서 같은 기간 2394만명에서 2543만명으로 148만명(6.2%)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면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 즉 고용률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저성장 기조를 감아날 때 정년 연장과 장년층의 재취업이 활성화될수록 청년층의 취업길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대표는 "책을 집필할 때(2007년)만 해도 주유소, 편의점 등의 일자리는 10~20대가 채웠는데 이젠 장년층이 대체하고 있다"며 "안정된 고급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값싼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년 늘면 신규채용 줄일 것"…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

상당수 기업들은 2016년부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종업원 300인 이상 181개 기업을 대상으로 정년 연장에 따른 신규 채용 영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매우 부정적'이라는 대답이 32.6%, '다소 부정적'이라는 대답이 39.8% 로 나타났다. 부정적일 것이라는 답변이 72.4%를 차지했다.

인건비 재원은 한정된 상황에서 정년 연장으로 기존 직원들에게 투입되는 비용이 늘어날 경우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홍보본부장은 "기업이 한정된 재원으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신규 채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통계적으로 보면 '일자리의 딜레마'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통계청의 '임금근로 일자리 행정통계'에 따르면 50대 일자리 수(302만7000개)는 2013년에 처음으로 20대 일자리 수(300만1000개)를 넘어섰다. 2009년에 비해 50대 일자리는 42.7%(92만개) 늘었지만, 20대 일자리 증가폭은 4.9%(14만개)에 그쳤다. 4년간 늘어난 20대 일자리가 60세 이상(50만7000개)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전체 일자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1.2%에서 2013년 18.2%로 3%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50대 일자리 비중은 15.6%에서 18.4%로, 60대 일자리 비중은 4.8%에서 7.0%로 올라갔다.

◇비정규직 확대 등 '질적 악화' 불가피… 세대간 일자리경쟁 '격화'

일자리의 질적 악화도 문제다.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기 위해 정규직 은퇴로 발생한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는 "기업들이 정년 연장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경험하면서 향후 신규 채용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며 "임금을 줄이고 해고가 쉬운 형태의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지만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라는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내가꿈꾸는나라의 우 대표는 "경제 패턴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해법이 없다"며 "저급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만 올리려는 정책 방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양대의 전 교수는 "장기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려면 기업들이 신규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고용에 대한 기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안정적인 일자리 확대를 통해 급진적인 성과를 낸 기업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정부가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적극 활용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도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일자리의 질적 악화는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의 격화를 불러온다. 고학력과 전문성의 필요성이 떨어지면서 청년과 장년이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인구구조 변화와 고용정책: 청년층 고용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고령층의 직종별 격리지수가 점차 낮아지면서 다수의 산업에서 청년과 고령층의 일자리 경합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한국경제에서는 고숙련을 요구하지 않는 일자리들이 많아 청년과 고령층의 일자리 경합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진욱 기자 sjw@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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