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긁혔는데 "범퍼 갈아달라"..보험금 줄줄샌다

권화순 기자 2015. 1. 2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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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적자 자동차보험, 해법은]上-② '툭하면 교체' 경미사고, 수리기준 마련해야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편집자주] 자동차보험 영업적자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1조원을 넘었다. '국민필수품'인 자동차보험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오해'가 근본 원인이다. 경미한 사고에도 "보험처리 되니 범퍼와 문짝을 교체하는 게 이득"이라는 '관행'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보험사는 언제나 이익을 낸다"는 '오해'도 되짚어 볼 부분이다. 대부분 보험사들이 다른 사업부문에서 낸 이익을 자동차보험 적자를 메우는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은 이미 보험사 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자동차보험의 누적된 적자는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귀결돼 소비자 부담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빨간불이 켜진 자동차 보험 시장의 정상화 방안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1조 적자 자동차보험, 해법은]上-② '툭하면 교체' 경미사고, 수리기준 마련해야]

#. 회사원 박 모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는 출근길 광화문 교차로에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다 앞 차의 뒷범퍼를 살짝 접촉하는 사고를 냈다. 앞 차 범퍼엔 새끼손가락 크기의 볼트자국이 남았다. 박 씨는 대수롭지 않은 사고로 생각하고 보험처리를 했는데 한 달 지나 날아온 보상처리 내역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보험금 지급액이 200만원에 달했다. 30만원 미만에서 처리될 줄 알았는데 지급액이 과도해 보험사에 문의했다.

보험사 담당자는 "한 시간 정도 판금과 도장작업을 하면 원상회복이 가능한 파손"이라면서도 "상대방 차량 소유자가 범퍼 커버 교환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기존에 긁힌 부분까지 커버하려고 범퍼 커버 교환을 요구했던 것. 보험사가 불응하자 수리공장에 입고시키지도 않고 렌트카(렌트비 150만원)를 사용했다. 금감원 민원 제기로 결국 보험사는 민원 취하 조건으로 뒷범퍼를 교체해 줬던 것이다.

가벼운 접촉사고로 살짝 긁히기만 했는데 범퍼를 교체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미사고 수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고객이나 정비업체 성향에 따라 수리비가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는 "어차피 수리비는 보험사가 낸다"는 인식 탓에 무조건적인 부품 교체를 요구한다. 부품 판매 수익을 남기려는 자동차회사 직영 정비공장도 부품교체를 유도한다.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양산하고 보험금 누수로 인해 보험료 인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경미사고 수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프랑스에서 흔한 범퍼 스크래치..국내선 "명품 모시듯"='경미한 사고'란 일반적으로 기술성·안정성을 고려할 때 차 운행에 지장이 없고 부품교체 없이 도장이나 판금 등 수리를 통해 자동차가 원상회복이 가능한 사고를 말한다. 예컨대 가벼운 접촉 사고 등으로 범퍼나 도어, 휀더 등에 스크래치가 났거나 찌그러짐이 발생한 경우가 해당된다.

이런 경미사고와 관련해 명확한 수리기준은 없다. 동일한 차종에 똑 같은 스크래치가 났더라도 "범퍼를 교체하겠다"고 하면 수리비가 몇 배로 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차보험(자기차량손해담보)으로 본인 차를 수리하면 최소 20만원의 자기부담금과 보험료 할인 유예(혹은 할증)가 발생하는 탓에 부품교체를 망설인다. 반면 상대방 차량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는 무조건 부품교체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다.

심지어 기존에 났던 스크래치까지 '한번에 해결'하려고 범퍼를 바꾸는 사례도 발견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프랑스나 미국에서는 범퍼를 '충격흡수'용도로 보기 때문에 스크래치가 났다고 교체하진 않는다"면서 "하지만 국내는 '명품 가방' 모시 듯, 작은 흡집도 그대로 못 두고 미관상, 과시용으로 여기는 성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경미사고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발생한 50만원 이하 물적사고는 142만건으로 전체 물적사고(325만건)의 43.6%에 달한다. 물적사고 절반이 '경미사고'인 셈. 인적사고를 포함한 전체 자동차사고(447만건) 중에서도 31.7%를 차지할 정도로 빈번하다.

◇경미사고 10건 중 3건 부품교체…범퍼 교체율 72%=찌그러진 차를 펴고 페인트칠을 하는 등 수리만 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하지 않지만 범퍼를 바꾸면 공임비를 포함해 100만원 내외로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

실제 A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현황(2014년 1월~11월) 분석결과, 수리비가 100만원 이하로 지급된 사고에서 부품교체율이 33.6%에 달했다. 구간별로 50만원 초과~70만원 이하, 70만원 초과 100만원 이하에서도 부품교환율이 각각 32.5%, 33.2%를 기록했다. 경미사고가 나면 10건 중 3건 이상은 여지없이 부품교체를 했다는 얘기다.

교체를 한 부품은 범퍼커버, 도어, 앞 펜더, 뒤 펜더, 후드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범퍼 커버의 경우 교체율이 무려 71.9%(앞 41.2%, 뒤 30.7%)를 기록했다. 도어(19.2%), 앞 펜더(18.5%) 교체율도 만만치 않다. 범퍼나 도어는 가벼운 손상이 발생해도 기술성·안정성에 큰 문제가 없는 외판부품이라는 점에서 부품교체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현상 이면에는 자동차회사의 직영 정비공장이나 외산차 전문수리점의 부추김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경미한 사고에도 부품교체 위주의 작업을 유도, 일반 정비업체 대비 부품교체율이 2배 이상이라는 설명이다.

일반 정비업체는 수리를 하고 받는 공임비가 높은 편이다. 반면 직영 공장은 부품을 교체하면 추가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 자동차기술연구소 조사연구보고서(2013년 5월 발간)에 따르면 사고 1건당 지급된 평균 부품가격은 일반 업체가 39만1806원인 반면 직영 공장은 56만9384원이었다. 직영 공장이 1.45배나 높았던 셈이다.

◇수리비 가이드라인 필요..보험료 인상 부메랑 우려=동일차종, 동일 파손에도 수리방법과 범위가 제각각이라 경미사고 수리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범퍼나 도어 등 다빈도 손상부품 항목을 선정한 뒤 부품의 재질, 파손형태로 나눠 표준수리방법을 마련하자는 것. 예컨대 찢어지거나 뜯어져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지, 찌그러짐과 스크래치를 수리만 해도 되는지를 수리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경미사고 수리기준이 적용되려면 정비업체, 자동차소유자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 돼야 한다. 또 국토교통부 등 정부 부처가 고시 또는 행정지도로 어느 정도 '강제'할 필요도 있다. 정비업체 참여 유도를 위해 보험사가 부품교환비와 수리비 차액의 일부를 우수기술료로 지원하는 '인센티브' 방안도 거론된다.

자동차 소유자가 "무조건 부품을 바꿔 달라"며 금감원에 제기하는 '악성민원'도 근절돼야 한다. 민원평가등급 하락을 우려한 보험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품을 교체하기 일쑤였다. 금감원은 최근 '악성민원'을 민원평가 항목에서 제외한다고 밝혔지만 경미사고에서 '악성민원'이 뭔지에 대해 정의가 없다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이수경 한화손해보험 외제차보상팀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 문화와 인식의 전환"라면서 "가벼운 접촉사고에도 일단 부품을 가는 게 유리하다는 의식,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계속 발생하고, 결국 보험료 인상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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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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