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女보좌진의 눈물]① 성희롱 사각지대..성차별도 심각

김종일 기자 입력 2015. 1. 27. 09:01 수정 2015. 1. 2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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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이 세상에서 가장 말조심하는 사람이 기자죠? 그런데 여기자 앞에서도 종종 성추행이나 성희롱해서 논란이 되잖아요. 그런 분들이 슈퍼을(乙)인 저희에게 어떻게 대할지는 대충 상상이 되시죠?"

여성 보좌진들은 '국회에서 성희롱이나 성차별을 당한 적이 있냐'라고 물은 기자를 '바보' 취급했다. 법(法)을 만드는 주체들인 의원과 보좌진들이 높은 도덕성으로 무장한 채 업무에 임하고 있을 것 같았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여성들의 목소리는 완전히 달랐다. 밖에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의원이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소(小)왕국'과도 같은 의원실 시스템과 권위적·남성중심적 문화가 겹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속살은 곪고 있었다. 여성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넘쳐나는데도 국회는 이를 제대로 예방할 시스템도, 사후 처리할 제도도 갖추지 않고 있었다.

◆ 여전한 슈퍼甲 의원들의 성희롱·성추행

'여자라서' 겪는 대표적인 고통은 성희롱·성추행과 같은 악질적인 추태였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의원들의 성희롱·성추행에 여성 보좌진들은 제대로 된 항의 한 번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여성 인턴, 비서들은 자신이 어떻게 성적인 피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꺼렸다. 신분이 노출돼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했다. 의원 이름과 본인의 이름을 이니셜로 기사화 하겠다는 다짐을 여러 차례 받았다. 소속 정당이 기사에 나가는 것조차 꺼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1. A 의원은 지난해 연말 자신의 지역구 행사에 여비서를 자주 동행시켰다. 의원은 진한 화장과 치마 정장 차림을 요구했다. 술자리에서는 '러브샷'을 시켰다. 그리고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제 맛이지"라며 자신이나 지역 유력 관계자 옆자리에 앉아 술시중을 들게 했다. 술자리가 끝나면 의원은 여비서의 그날 화장과 치마 스타일 그리고 술자리 접대 실력을 평가했다.

# 2. B씨는 얼마 전 의원실 남성 보좌진들이 자신이 포함된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야한 사진과 동영상의 링크를 공유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남성 보좌진들은 저마다 후기를 올리며 B씨에게도 감상평을 요구했다. 불쾌한 느낌에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좋은 건 나눠 보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3. C 의원실의 한 여비서는 지난해 보좌관과 애인이라는 소문이 나서 사표를 쓸 것을 요구받았다. 소문의 근원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찌라시'였다. 사실이 아니었기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문의 확산을 우려한 의원은 단호했다. 이 여비서는 끝내 의원실을 나와야했다. 같은 당 여비서들은 기자에게 "이상한 소문이 나면 늘 여자 보좌진이 손해를 보고 쫓겨난다"고 입을 모았다.

이밖에도 여성 보좌진들은 ▲안마를 해달라는 요청 ▲근무 시간 외에 따로 사적으로 식사를 하자는 요청 ▲야한 농담 등의 상황에 맞닥뜨릴 때 곤혹스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 사전 예방조치 없고 제대로 된 항의 시스템도 안 갖춰

이처럼 국회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은 각종 성범죄에 노출돼 있지만, 피해 여직원들이 쉬쉬하고 넘어가거나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여직원들은 "파리 목숨 값도 안 되는 게 우리"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의원 보좌진의 해임이나 징계 절차는 국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국회의원이 면직요청서를 제출하면서 보좌진의 해임은 즉각 이뤄진다. 한 마디로 의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것이다. 여직원이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다고 인사권자인 의원에게 제대로 된 항의를 할 수 없는 구조다.

예방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국회에서 열린 성희롱·성매매 예방교육에 참석한 의원은 300명 중 단 6명(2%)에 그쳤다. 인터뷰에 응한 한 여비서는 "일부 의원들의 성평등 의식 부재는 심각한 수준인데도 입법부 내에서 이들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단은 사실상 전무하다"라면서 "여직원들끼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서로 공유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 바뀌지 않는 고정관념…"여비서는 커피 타라고 뽑은 거야!"

정책비서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국회를 첫 직장으로 택한 D씨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정책 관련 업무를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D씨는 의원의 개인 회계 업무와 지역구 행사를 쫓아다니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을 맡아 질의서를 작성하겠다고 해봤지만 의원은 "여자가 무슨 질의서냐. 자기는 지금처럼 커피 잘 타면 돼"라고 면박을 줬다.

의원회관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성희롱만큼 성차별이라는 유리천장에 힘들어 했다. 무엇보다 '미래가 안 보이는 노동'에 승진 등이 정체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여비서는 "주변에 보면 요새 여비서들은 남성 보좌진들에 비해 학력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도 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라면서 "남성 보좌진들이 쭉쭉 승진해서 비서관·보좌관 자리를 꿰차는 모습을 보면 제대로 된 기회도 잡아보지 못하고 같은 일만 반복하는 우리의 삶이 너무 서글프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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