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백승호 일기①, '바쁘고도 피곤한 투잡 생활'

홍의택 2015. 1. 2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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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바르셀로나(스페인)] 상황이 복잡해졌다. 만 18세 미만 유소년 영입 규정 위반에 따라 경기 출전을 금지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 여기에 2016년 1월까지 전 연령층 선수 영입 금지라는 추가 징계까지 덮쳤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 한 구절 마냥 '우리 애'가 제대로 뛰지 못한다는 생각에 지켜보는 시선에도 안타까움이 그윽했다.

현지 사정은 우려한 만큼 절망적이지 않았다. 백승호가 만 18세가 되는 3월 17일에 맞춰 취할 수 있는 카드를 다방면으로 알아보는 중이다.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간 부분도 있다. 본인을 둘러싼 환경에 싱숭생숭할 법도 하나, 운동에만 전념한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 개인의 몸 상태, 정신적인 태도임을 굳게 믿기 때문. 축구장과 학교를 오가는 백승호(17, 바르셀로나 후베닐A)의 치열한 일상을 전한다.

:: [오전 8시 15분] 어슴푸레한 아침, 졸린 눈 비비며 기상

식구 중 가장 늦게 일어난 백승호가 꾸벅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구름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아침, 해가 늦게 뜨는 편이었다. 멀리 바다 쪽으로 탁 트인 시야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연신 들어온다. 8시간씩 푹 자고 나와 식탁에 앉았다. 식빵, 베이컨, 계란 프라이와 우유.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TV 채널은 축구에 맞춘다. 토레스의 이적에 별칭 '엘 니뇨(El Nino·스페인어로 남자아이)'가 쉼 없이 튀어나온다. 제라드의 미국행 역시 전파를 탔다. 키가 크지 않아 고민이었던 백승호가 대뜸 "제라드도 키가 갑자기 컸대요."란다. 이어 "23살부터 주장을 했는데, 리버풀에선 가장 어린 기록이래요."라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전 9시에는 출발해야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엄한 소리를 낸다. "승호야, 벌써 45분이다.".

:: [오전 9시 5분] 라 마시아(La Masia)로 출발, 첫 번째 직업 '축구 선수'

공항 방향으로 10km 남짓한 거리를 달린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저기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원정 오면 숙박하는 호텔이에요. 팬들이 차 유리를 깨 놓기도 하고, 새벽에 잠 못 자게 소음 일으키고 난리에요."라며 설명한다. '라 마시아'라고 적힌 건물 앞에 도착하기까지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녀올게요.". 차에서 내리면서 첫 번째 직업 '축구 선수'의 삶이 시작된다.

전술 미팅, 피지컬 훈련에 1시간 반가량을 할애한다. 징계 탓에 경기를 뛰지 못한 백승호도 동료들과 함께한다. 지난 주말 에스파뇰과 붙었던 경기를 돌려보고, 다음 상대 바달로나 선수들에 대해 지켜봤다. 이후엔 보강 훈련이다. 발목이 약한 선수, 골반을 다쳤던 선수 등 개인 사정에 맞춰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병행한다.

:: [오전 11시 25분] 필드로 출격, 장난스러움과 살벌함의 공존

가벼운 운동으로 시동을 건 뒤에야 필드에 올랐다. 러닝, 5:2 볼 돌리기, 패스 및 포제션 게임 등 구체적인 훈련 프로그램은 국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동장을 반으로 잘라 20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몰아넣은, 실 상황에 맞춰 행해지는 훈련이 많았다. 상대팀 페널티박스로 진입할 때 활용하는 지역이 운동장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음을 감안해 일부러 좁은 공간을 연출했다.

후베닐A 소속 선수들은 한국 나이로 대개 18~20세. 훈련이 잠시 멈춘 동안 몇몇은 서로 껴안고, 잡아끌고, 매달리고, 팀 조끼를 내팽개치는 등 여느 고등학교 체육 시간과 같은 광경을 풍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매년 5~8명씩 팀을 떠나는 잔인한 경쟁을 전제로 한다. 훈련 곳곳엔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묻어났다. 특히 시즌 중반을 넘어가는 현재, 불꽃은 점점 더 강렬하게 튄다.

체지방 수치가 높게 나온 이들은 마무리 운동으로 러닝을 서너 바퀴 더 뛴다. 각자 몸에 맞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선수들도 있다. 마침 1군 훈련도 비슷한 시각에 끝났다. 챠비가 차 속도를 낮추더니 손을 흔들고 간다. 이니에스타가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동안, 베르마엘렌은 정문 앞에서 기다리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다.

:: [오후 3시] 학교 수업 시작, 두 번째 직업 '학생'

바르셀로나는 학업에 대해 상당히 엄격했다. 선생님들을 라 마시아로 초청해 수업하고, 운동에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밀도 있는 교육을 추진하는 등 신경을 많이 쓴다. 중학교 교육 과정을 의무화했으며, 그 이후에는 선수 본인의 선택에 맡긴다. 10명 중 8명 정도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이마저도 완주에 성공하는 이는 많지 않다.

3시부터 5시 45분까지 수업, 6시까지 짤막한 간식 시간을 가진 뒤 한 시간 더 수업을 받는다. 수학, 과학, 까탈루냐어 등 여러 과목을 배우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해당하는 시험도 본다. 오직 운동에만 매달리는 풍토와는 거리가 먼 모습. 선수들 역시 이 과정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는다. 지금껏 동료들일 줄줄이 학업을 포기한 가운데, 백승호는 "수학을 잘하긴 했는데, 요즘 좀 힘들어요."라면서도 앞길을 근근이 헤쳐가고 있었다.

:: [오후 7시 20분] 집으로 복귀, 오늘은 경기 보러 가는 날

오전 9시에 시작한 하루가 오후 7시가 돼서야 끝났다. 집 소파에 앉아 휴대폰부터 잡는다. 한국 소식을 접하고, SNS를 쭉 둘러본다. 오전 운동으로 쌓인 피로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잠깐 쉬면서 푼 게 전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다. 드물게나마 지역 내 각종 행사에 초청이라도 받는 날이면 더 늦게 돌아오기도 한다.

밤 10시에는 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8강 1차전이 잡혀 있었다. 스페인에 정착하던 해, 깜 노우 옆에 붙어 있던 라 마시아(이듬해 현 위치로 이사) 때문에 경기장 근처에 둥지를 튼 지 5년째다. 경기가 자정에 끝남에도 도보로 오갈 수 있기에 부담은 없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매번 찾아가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글, 사진=홍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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