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민 좀 들어줘" 폰팅으로 위로받는 남성들

김관진 2015. 1. 27.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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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 전화' 유료 전화서비스 불구, 최근엔 현실 고민 상담이 30%나

"전문 상담기관은 기록 남아 꺼려"

국내 중소기업 영업부서에서 일하는 김모(43)씨는 고민거리가 생길 때마다 '060-***-****'으로 전화를 건다. 다름 아닌 '폰팅' 서비스다. 지난 23일에도 김씨는 어김없이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가희라는 가명을 가진 낯선 여성과의 통화에서 전날 밤 술자리서 만났던 거래처 사장의 폭언에 대해 성토했다. 김씨는 여성에게 "거래처 사장이 '네 월급에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개처럼 일해야겠다'고 하더라. 순간 내 표정이 굳으니까 '기분 나쁘면 네가 사장 하던가' 라고 빈정거리기까지 했다"며 참았던 감정을 쏟아냈다. 통화는 약 10분간 이어졌고, "얘기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김씨는 조심스레 전화를 끊었다.

폰팅 서비스는 1분당 1,200원 가량 이용료가 청구되는 유료 서비스다. 그러나 김씨는 "통화를 하다 보면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며 "누군가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것이 내가 전화를 거는 이유"라고 말했다.

폰팅을 이용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본래 성인 남성이 낯선 여성과 성적인 대화 등 음란전화를 위해 거는 폰팅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현대인이 일면식이 없는 상대라도 연결해 소통하며 출구를 찾으려는 시도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폰팅 업체에서 4년째 상담원으로 일하는 A(35)씨는 하루 3~4통 이런 고민상담 전화를 받는다. 하루 5시간 근무하는 A씨가 받는 전화는 다 합쳐 10통이 채 되지 않으므로 적지 않은 비중이다. A씨는 "성적인 농담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기 고민만 늘어놓다 전화를 끊는 손님들이 꽤 많다"며 "2~3년 전에는 고민상담을 하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하루 1명 수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폰팅 상담원 B(29ㆍ여)씨는 "고민을 상담하는 손님은 40,50대가 대부분인데, 최근 1년 동안은 20,30대 손님들도 많이 늘었다"며 "나뿐만 아니라 이 일을 하는 동료 모두가 고민상담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폰팅으로 고민상담을 하는 남성들은 하나같이 "각박한 세상에 내 얘길 들어줄 사람 한 명은 필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이나 친구에겐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이야기할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폰팅을 이용한다는 이모(39)씨는 가장으로서 느끼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로 토로한다. 그는 "수입 문제로 고민이 많지만, 아내와 자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자꾸 감추게 된다"며 "친구들에게 털어놓기엔 창피하고 어딘가 하소연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다가 폰팅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부부관계와 같은 성적 고민으로 폰팅을 찾는 사람도 있다. 김모(47)씨는 "발기부전으로 부부관계가 소홀하다"며 "해결책을 찾고 싶은데 병원이나 일반 상담기관은 기록에 남을까 신경이 쓰여 꺼려져 폰팅으로 고민상담을 한다"고 말했다.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폰팅'을 이용해 고민상담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자신의 고민을 드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고민을 얘기하는 남성들에게 '남자답지 못하다'고 실패의 낙인을 찍는다거나 상담기관ㆍ병원을 방문하는 이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걷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민을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면서도 전문적인 '상담'에는 염증을 느끼는 현 사회 세태가 만들어낸 풍속도"라고 분석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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