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단역 연기자들, 떼인 출연료 받을 길 열렸다

조원일 인현우 2015. 1. 2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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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방송연기자도 근로자" 판결, 연기자노동조합 단체교섭권 인정

출연료 미지급 외주사에 떠넘기며 협상 기피한 방송사 관행에 제동

지난 2012년,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원들이 KBS 출연료 미지급 13억 원의 해결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도망자 플랜비(B)', '프레지던트', '공주가 돌아왔다' 등 한때 안방극장에서 선보였던 한국방송공사(KBS) 드라마에 출연한 단역 연기자들 400여명은 3년 넘게 밀린 출연료 12억여원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는 외주제작자에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를 건네주고, 외주사는 출연료가 밀리면 배째라 식으로 대응하거나 부도를 내고 도망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생활고를 버텨온 연기자들은 노조를 만들어 그동안 간헐적으로 방송사와 단체교섭을 진행해오며 이런 불합리를 시정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2013년 중앙노동위원회가 "KBS와 연기자들은 사용종속 관계가 아니어서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결정하며 방송사와 협상을 진행할 자격조차 박탈당했다.

하지만 법원이 방송연기자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처음 나오면서 이런 관행이 개선되게 됐다. 서울고법 민사7부(부장 민중기)는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이 "연기자들도 근로자에 해당하며 분리교섭(KBS노조와 별개로 사측과 교섭)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며 중노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연출감독이 대본연습 때부터 연기에 관여하는 등 연기자들이 업무 수행과정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지휘ㆍ감독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고정된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 장소가 없지만 기본적으로 방송국이 결정한 시간과 장소의 구속을 받는다"며 "연기자의 출연료는 연기에 의한 예술적 가치를 평가한 것이라기보다는 노무 제공 자체의 대가로 정액의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한연노는 방송연기자들이 조직ㆍ가입한 노조법상의 노조이고 KBS와 계약을 체결해 연기 등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기간 중에는 원고 소속 조합원들은 참가인의 지휘ㆍ감독을 받는 사용종속관계에 놓여 있다"며 "원고에게 KBS 사업장 내에서의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할 적격이 없다고 본 (중노위) 재심 결정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연기자들이 자유계약을 맺고 근로소득세도 내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개인 사업자에 해당한다며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연히 분리교섭을 신청할 자격도 없다고 판단했다.

탤런트, 성우, 코미디언, 무술연기자 등 4,3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연노는 지난 1988년 노조 설립을 마친 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차례에 걸쳐 KBS와 단체교섭을 진행해 왔다. 한연노는 출연료 인상률, 교통비ㆍ식비 등 각종 수당 인상 등 열악한 연기자 처우 개선을 위 논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연기자에 대해 근로자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와 한연노가 단체교섭권 등 노동법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지를 놓고 늘 법적 논란이 제기돼왔는데 이번에 이런 걸림돌이 사라진 셈이다. 법원은 상당수 드라마 연출감독들이 방송국에 소속된 직원인 동시에 단역 연기자들에게는 사실상 업무 지시를 내리는 '갑(甲)'이었기 때문에 별도로 사측과 단체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는 연기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송창곤 한연노 사무차장은 "그동안 단체 교섭이 이뤄지긴 했지만 법적인 근거가 취약해 뚜렷한 주장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KBS와의 교섭이 중단돼 조합원들의 고통이 컸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송 차장은 이어 "잦은 출연료 미지급 문제 해결, 4대 보험 적용, 촬영장의 안전사고 방지 대책 등 연기자들의 기본적 권익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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