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요즘 잘 나가는 '갑과을', '을'을 울리다..보육교사 매도에 시청자 눈살

김현섭 입력 2015. 1. 26. 15:44 수정 2015. 1. 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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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케이블 채널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에 '갑과을'이라는 코너가 최근 인기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못 봤을 땐 다시보기로 찾아가며 챙겨볼 정도로 좋아합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연속적으로 뒤바뀌는 과정에서 주는 통쾌함과 날카로운 풍자는 최근 다른 코미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신선함을 안겨 주기 때문입니다. 대다수가 을일 수밖에 없는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함께 알게 모르게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갑과을'이 25일 방송에서 무리수를 뒀더군요.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시청자들이, 특히 '아무 죄 없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고 제작진과 출연진 역시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작의 소재가 된 '백화점 주차장 갑질녀' 사건에선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주차장 아르바이트 요원들을 상대로 "죄송하면 무릎 꿇어"라는 등 온갖 갑질을 해대던 외제차 주인이 사고를 낸 탓에 '복수'를 당하는 장면은 시원스런 느낌이 살아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갑과 을의 위치를 오가며 주차요원과 실랑이를 하던 외제차 주인이 뜬금없이 "자꾸 이러면 우리 누나 부른다. 우리 누나 무서운 사람이야. 어린이집 교사야"라고 외친 겁니다. 그러더니 최근 4세 아이의 뺨을 때려 입건된 인천 송도 어린이집 교사로 분한 남자 코미디언이 포장 김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남동생인 외제차 주인이 먹여준 김치를 뱉자 "너 지금 김치 뱉었어?"라며 냅다 뺨을 때립니다.

비록 코미디지만 어린이집 교사는 순간 심기가 뒤틀리면 손부터 올라오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됐습니다.

인천 사건이 터진 이후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마녀사냥'입니다.

최근 서울대 교수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지만 '서울대 교수들=성추행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판사가 사채왕에게 뇌물 받았다고 모든 '판사=사채업자 파트너'라고 여기는 사람이 없듯이, 아이 때린 어린이집 교사가 적발됐다고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 폭행을 일삼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일반화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특정 사건으로 해당 직업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한꺼번에 매도해 버리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더구나 코미디란 장르는 미디어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자체 제어나 분별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들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인천 사건 이후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그들이 감내하며 살았던 열악한 근무환경이나 급여 수준 등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 걸까요. 여러 가지 면에서 철저히 '을'이었던 어린이집 교사를 둘러싼 처우나 관련 제도 문제가 곪고 또 곪아 터져 나온 각계의 우려가 순간적 익살이란 목적 앞에 가려졌던 걸까요. 아님 알고도 그것들을 다루면서 재미있게 만들 내용을 꾸미지 못했던 걸까요.

프로그램 관계자는 비난이 빗발치자 "보육교사 전체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우리 역시 보육교사 여러분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또 일선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계신지 알고 있다. 사과드린다"고 전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풍자'란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이더군요. 만일 성추행 교수, 사채왕에 돈 받은 판사, 항상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들 속 썩이는 정치인 등이라면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왜냐면 권력층은 일부 사례만으로도 풍자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고, 당연한 이유는 권력층은 제도의 열악함이나 그로 인한 희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뺨을 때리고 학대한 교사들이야말로 일벌백계로 다스려야함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학부모들도 알고 나선 깜짝 놀랄 정도의 낮은 월 급여를 받으며 아이 수십명을 혼자 돌보는 '어린이집 교사'가 '무서운 사람'으로 그려지며 풍자의 대상이 되고 '비웃으며 공격당해야 할' 대상이 돼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결국 '갑과을'이 '을'을 울린 꼴이 돼 버렸습니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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