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 아빠'의 비극.. 흰색 BMW5를 잡아라

전수민 기자 2015. 1. 26.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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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20대 家長 뺑소니 사망.. 네티즌 수사 나섰다

"5시리즈라는 전제 하엔 디젤이 아닙니다. 오른쪽에도 머플러(소음기)가 달려 있는 모델인데, 그러면 순정 535i 또는 듀얼 배기 튜닝을 한 528i로 압축됩니다. 쓸만한 단서가 돼야 할 텐데요…."

최근 자동차 동호회 사이트마다 이런 '분석적인'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 글에서 '5시리즈'는 수입차 BMW 5시리즈를 뜻한다. '듀얼 배기 튜닝'은 자동차 배기음을 묵직하게 바꾸기 위해 원래 하나인 배기구를 둘로 늘리는 작업을 말하고, '535i'와 '528i'는 BMW 5시리즈의 모델명이다. 자동차 동호인들은 이처럼 암호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한 차량을 추적하는 데 열중해 있다. 타깃은 20대 화물차 기사를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뺑소니차.

만삭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들고 귀가하다 변을 당한 '크림빵 아빠'의 사연에 자동차 좀 안다는 네티즌들이 직접 '수사'에 나선 것이다.

지방 사범대를 수석 졸업한 강모(29)씨는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아내(26)와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경제적 어려움에 공부를 포기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화물차를 몰면서 아내의 공부를 뒷바라지했다. 아내는 곧 첫아이를 임신했다. 태명은 '새별'. 온종일 운전해도 힘든 줄 몰라 했다고 한다.

지난 10일에도 강씨는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손에는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아내에게 주려고 한가득 산 크림빵이 들려 있었다. 강씨는 아내에게 전화해 "당신이 좋아하는 케이크는 못 사고 대신 크림빵 샀어. 미안해. 그래도 우리 새별이한테만큼은 열심히 사는 훌륭한 부모가 되자"고 했다.

이 통화는 아내와의 작별인사가 됐다. 전화를 끊고 불과 10분 만인 10일 오전 1시30분 충북 청주시 흥덕구 도로에서 승용차가 강씨를 치고 달아났다. 이 길을 지나던 택시기사가 도로에 쓰러져 있던 강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이 뺑소니 차량이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했는데 해상도가 낮아 자동차 번호는 물론 차종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자 자동차 동호회원들이 나섰다. 이들은 흐릿한 CCTV 영상을 사이트에 띄워놓고 뺑소니 차량의 범위를 좁혀나갔다. 후미등 광원의 폭, 차체 윤곽, 사이드미러 모양, 도어그립(차문 손잡이)부터 벨트라인까지 거리, 배기구 모양 등이 주요 단서였다.

"BMW 특유의 펜더(흙받이) 라인이 보인다" "최신 디젤 세단은 DPF(배기가스 후처리장치)로 인해 한겨울에도 배기구에서 김이 안 나온다" "후미등 폭이 굉장히 넓다" "브레이크등이 측면에서도 많이 보인다" 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내기 어려운 분석이 쏟아졌다. BMW 5∼7시리즈, 기아차 K5·7·9시리즈, 렉서스 LS460 등이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점차 BMW 5시리즈로 좁혀졌다. 경찰도 이런 분석에 동의했다. 청주 흥덕경찰서 관계자는 "흰색 BMW5라는 것까지는 확인됐다"고 말했다.

지난 23일에는 뺑소니범이 인근 문암생태공원 캠핑장에 들렀던 사람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지역 토박이라는 한 네티즌은 "사고 지점은 도로 폭이 좁고 통행량이 적은 곳이어서 인근 캠핑장에 들렀거나 옥산면 방향에서 퇴근하는 차, 혹은 지리를 잘 알아 지름길을 택한 차량일 가능성이 높다"는 글을 올렸다. 또 제2운천교 사거리에서 바로 우회전해 산업인력공단을 지나고 송절로 쪽으로 달아났을 거라며 도주로도 추정했다. 그는 "그쪽이 건물이 별로 없어 어둡고 교통량이 많아 자연스럽게 차량 대열에 합류해 도주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결과 당시 캠핑장에서 나온 차 중에는 용의 차량이 없었다. 하지만 도주 경로는 경찰이 파악한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다만 통행량이 많고 목격자가 없어 행적을 쫓는 데 실패했다.

이밖에도 "CCTV 영상을 확대해보니 번호판이 'XX하19XX' 내지 'XX하17XX'인 것 같다. 인근에 수입차 렌트업체가 있어 렌터카일 수도 있다" "이달 초 천안의 한 차량 외형복원 전문점에 앞범퍼가 부서진 흰색 BMW 5시리즈 차량 한 대가 정차돼 있었다" 등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경찰과 유족은 최근 청주 도심 4곳에 제보를 당부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경찰은 500만원 신고 보상금, 유족은 3000만원 현상금을 내놓았다. 경찰 관계자는 "제보가 20건 넘게 들어왔다. 안타까운 마음에 많은 분이 연락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m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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