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를 보라, 야비한 사람들은 오래 못 가지"

2015. 1. 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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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생태학자 최재천

▶ 이진순 언론학 박사. 전직 교수. 살림하고 애 키우는 오십대 아줌마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열혈시민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와 럿거스대 커뮤니케이션스쿨을 졸업했다.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조교수로 인터넷 기반의 시민운동을 강의했고 그 전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다큐멘터리 작가로 다양한 인물을 취재했다. 세상의 새 지평을 여는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500만년 전, 지구라는 푸른 별에 침팬지와 조금 다른 영장류가 분화되어 나왔다. 25만여년 전에는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하고 정교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좀더 진화된 종이 출현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이라 부르는 영장류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일으켜 지구의 먹이사슬 최고 정점인 ‘알파포식자’의 지위에 오른 인간이란 종은 과연 축복받은 생명체일까? 오늘날의 문명을 가능케 한 인간의 과시욕과 지배욕은 진화의 산물일까, 재앙의 전조일까? 인간적인 것은 고등한 것일까. 인간이란 과연 어떤 동물일까?

진화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인 최재천(61)은 요즘 충남 서천에 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인 그는 교수직을 잠시 휴직하고, 2013년 12월 개원한 국립생태원의 초대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축구장 92개 면적에 해당하는 30만평의 국립생태원 부지에는 현재, 세계 5개 기후대를 재현한 에코리움과 습지생태원, 고산생태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13일, 국립생태원 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간 유전자 1.6%는 어디로 갔나?

-얼마 전 만난 김중배 선생은 “박근혜 정부 최고의 인사는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임명”이라고 하시더라. 생태원 설립 과정부터 인사권자와 무슨 교감이 있었나?

“전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원래 산업단지 예정지로 묶여 있던 땅에 대안사업으로 국립생태원을 건립하기로 했는데 2008년 1년간 그 기획 과정에 참여했다. 그 뒤 실제 지어지는 과정에서는 내가 4대강(사업)에 반대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서 배제되어 일체 관여하지 못했고. 초대 원장직은, 생태학회 분들이 하도 권유를 해서 맡게 된 거지 (행정부와) 무슨 교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개원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국립생태원은 비교적 성공적인 안착을 한 걸로 평가받는다. 개원 1년 만에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생태학 전시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입지를 굳혔고, 작년 10월엔 세계 192개 나라가 참여한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회의의 대체의장을 최재천 원장이 맡아 국립생태원의 국제적 명성을 높였다. 최재천은 장기적으로 국립생태원에 생태학 전문 대학원을 만들어 “대한민국 생태학 교육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구상도 가지고 있다.

-국립생태원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굳이 이런 간척지에 5대 기후대를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전시관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이 지역에 자생하지 않는 동식물을 가져다 실내에 전시하는 건, 아무리 교육 목적이라지만 생태원 취지에 어긋나는 일일 수도 있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도 하시고, 돌고래 제돌이 야생방류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던 분으로서 어떻게 보시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말하자면, 만일 나더러 ‘국립생태원을 어디다 지을래?’ 물어봤다면 여기는 안 왔을 거다. 지리산이나 한라산, 낙동강 하구로 갔겠지. 외국의 생태학 연구소들은 로키 산맥에 있거나 열대 한가운데 있다. 이런 인공생태계에선 사실, 무슨 귀뚜라미 연구라면 모를까, 생태 연구를 한다는 게 어불성설인데, 여기 생태원을 짓기로 한 건 우리(생태학자)가 정한 게 아니다. 그래도 더이상 갯벌 건드리지 말고 생태로 먹고살아보라고 제안을 한 노무현 정부의 그때 그 분위기가 (생태학자로선) 엄청나게 고마운 일이다. 그런 대안사업으로 진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100년 안에는 못했을 거다. 앞으로 이곳을 본부로 삼고 전국에 현지 연구소와 분원들을 만들어 나가야 된다. 지리산 분원, 오대산 분원, 낙동강 분원 이런 식으로.”

-최재천 원장이 있는 국립생태원에 오면 영장류관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없어 좀 아쉬웠다. 사실 여기 찾아온 목적은 ‘인간이란 동물’에 대해 묻기 위해서다. <인간과 동물>이란 책도 쓰셨는데 인간과 침팬지 유전자의 98.4%가 동일하다고 들었다. 그럼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게 하는 1.6%란 뭔가?

“글쎄… 인간이 동물 세계만큼도 못한 짓을 자꾸 하는 걸 보면 도대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 난감하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사실을 소름 끼치게 절감했다.”

-세월호와 관련해서 악몽처럼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잔뜩 기울어진 세월호 선실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선창을 두드리던 모습, 바로 그 앞에 구명정 몇 척이 있었는데도 아무 조처 없이 총총히 떠나는 장면이었다.

“아, (놀라며) 그런 게 있었나?”

-그 뒤 배는 급격히 기울어졌고 선창을 두드리던 아이들은 아무도 살아오지 못했다. 코끼리도 무리지어 이동할 때는 새끼 코끼리를 가운데 세워 집단으로 보호하고, 돌고래도 새끼들을 집단적으로 돌본다고 하는데. 그것이 성공적인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라면, 인간한테도 그런 유전자가 있을 거 아닌가?

“있다.”

25만년의 인류역사를 볼 때
야비한 사람들 성공기간은 짧아
인간의 본성은 물고기 시절 등
이전의 종으로부터 넘어온 것
인간은 도덕적 추구 멈출 리 없어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은 인간, 개미, 흰개미, 꿀벌
모두가 고도의 협력 할 줄 안다
바퀴벌레·모기한텐 그게 없어
혹시 ‘꿀단지 개미’라고 아는가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어린 새끼들을 돌보는 본성이 우리에게 있다면, 후천적으로 학습된 사회적 욕구, 예를 들어 돈벌이 같은 욕구 때문에 그런 본성이 억제될 수도 있는 건가?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가?

“좋은 지적이다. 이 세상 모든 종을 학습능력순으로 일렬로 쭉 늘어놓는다고 하면 박테리아는 학습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그냥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만 하는 거고, 쭉 오다가 반대편 제일 끝에 인간이 있다. 인간도 본능의 지배를 받지만 학습의 역할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동물이다. 분명히 우리에게도 그런(새끼나 약자를 돌보는) 본능이 있는데 우리의 학습능력으로, 우리의 이 기가 막힌 머리로 그걸 내리누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난 다윈 선생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윈이 인류 2천년 역사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은 위대한 인물인 건 틀림없지만, 지나치게 경쟁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 그게 사람들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서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믿게 했으니…. ‘적자생존’의 영어 표현에 최상급을 쓰는데(the survival of the fittest), 다윈 본인의 생각은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가장 적응 잘한 한 종만 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비교적 적응 잘한 것들은 살아남고 비교적 못한 것들은 사라진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다윈 지능>이란 내 책에서 감히 다윈 선생 비판을 했다.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the survival of the fitter)을 썼으면 좋았겠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든 살아남으려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든 끊임없이 자기가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욕망을 재생산한다. 동물 중에 먹을 만큼 먹어서 배가 부른데 더 먹어서 탈이 나는 경우도 있나?

“양이 그렇다. 금년이 양의 해인데 그래서 좀 걱정이다.(웃음) 양은 식탐을 조절 못한다.”

-(놀라서) 그런가? 온순한 동물인 줄 알았는데.

“온순하고 조절능력이 없다. 그래서 목초지에 양을 풀어놓으면 계속 먹고 찐다. 창자가 막혀 죽을 때까지 먹는 양도 있다. 그래서 목동이 하는 일이, 적당히 먹인 뒤 더 못 먹도록 양을 모는 일이다. 개미는 많이 먹진 않지만 필요 이상으로 축적하는 동물이다. 뱀은 토끼 한마리를 삼키면 소화되는 한달 내내 꼼짝도 안 한다. 우리는 토끼 한마리 먹으면 다음달에 먹을 토끼 열마리를 옆에 갖다 놔야 안심하지 않나?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서 인간하고 개미만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축적한다. 먹이를 보면 무조건 집어다 쌓아놓는다. 모자라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옆 나라 개미가 가져가기 전에 먼저 가져오려고 그런다. 그 점은 인간이랑 똑같지 않나?”

도덕과 협력은 진화의 산물

최재천은 <통섭의 식탁>이란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언급하며 모든 생명의 역사는 성공적인 자기 복제를 위한 디엔에이(DNA)의 일대기이며, 인간의 몸은 디엔에이의 자기 복제를 위한 그릇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본성과 의식, 문화 등 우리가 인간적인 특성으로 간주하는 모든 것들이 유전자가 정해준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데, 인간의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행위도 더 효율적으로 디엔에이를 복제하고 확산하려는 이기적 유전자가 시킨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적어도 디엔에이의 관점에서는 자기희생적 이타성은 자기중심적 이기성과 상충되지 않는다.

-도덕성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왜 도덕적이지 않은 인간들이 지배자가 될까? 도덕적인 룰을 무시하는 인간이 권력자가 되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그건 일시적인 거다.”

-일시적이라고?

“우리가 이 순간 사회가 썩었다고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로 끊임없이 도덕을 얘기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우리가 도덕적인 조상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더 잘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후손으로 여기 살아남은 거다. 우리가 야비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면 지금쯤 우리는 도덕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 살고 있을 거다. 이걸 우리는 돌고래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돌고래의 도덕은 뭔가?

“수컷 돌고래에게 제일 힘든 점이 뭐냐면, 혼자서는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망망대해에 무슨 막다른 길도 없고 암돌고래가 도망가면 혼자서는 잡아 세울 도리가 없다. 그래서 수컷 두세마리씩 짝패를 만들어서는 한마리 암컷을 놓고 양쪽에서 방향을 제어하며 쫓아간다. 몇 시간 지나서 암컷이 더이상 도망가기를 포기하면, 둘 중에 한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다시 새로운 암컷을 찾아 나서는데, 그때는 아까 못한 수컷의 차례다. ‘아까는 네 차례고 이번엔 내 차례야’ 그런 계약이 딱 되어 있는 거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의 샤크 베이에서 연구한 결과 신기한 게 발견되었다. 간혹 얌체 같은 놈이 있는 거다. 자기가 먼저 짝짓기를 하고는 계약을 깨고 도망가버리는 수컷이 있다.”

-먹고 튀는, 먹튀 돌고래?(웃음)

“맞다. 근데 그런 얌체 짓을 몇 번 하다 보면 돌고래 사회에 그놈에 대해 평판이 돈다. 얼마나 웃기는 일이 벌어지냐면, 팀에는 넣어준다. 두마리가 쫓아가는 것보다 세마리가 쫓아가면 더 유리하니까. 근데 암컷에게 다가갈 순서가 되면 그놈을 탁 쳐낸다. ‘넌 안 돼! 팀에는 끼워주지만, 너 같은 놈은 우리 사회에선 안 돼.’ 이렇게 사회적 평판이 중요하다. 인간도 씨족사회, 부족사회처럼 옆집 숟가락 개수도 알던 사회에서는 평판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했다. 25만년 인류의 역사에서 야비한 사람들이 성공한 기간은 길지 않다. 25만년 중에 우리가 농경을 한 게 최근 1만년인데, 농경사회로 접어들고 산업사회가 되면서 야비한 사람이 득세를 하기 시작한 거지만, 이런 권력은 그리 길지 않다. 인간과 같은 사회성 동물이 도덕적인 추구를 멈출 리는 없다.”

동성애는 동물 세계에도 존재한다

-지구의 역사가 46억년이고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 20~25만년 전이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만 따지면 불과 1만2천~1만3천년 전인데, 인간의 본성과 생태를 규정하기에는 인간이라는 종의 역사가 너무 짧은 것 아닌가?

“아니,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인간의 본성이 인간 존재의 역사에서만 만들어진 건 아니고, 인간 이전의 종에서 만들어진 게 넘어온 거니까. 우리 본성을 규정하는 유전자는 25만년 동안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옛날 물고기 시절의 본성도 그대로 있는 거다. 그래서 나 같은 진화생물학자들이 다른 동물들을 연구하는 건 인간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동물행동학이나 진화생물학으로 인간 사회를 설명하려고 하면 부딪히는 딜레마가 있다. 자식을 낳을 능력이나 조건이 안 되는 개체는 삶의 의미가 없는 건가? 비혼 남녀나 동성애자처럼 생물학적으로 자기 유전자를 번식시킬 조건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인간 생태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동성애자가 왜 진화했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도 생물학계의 수수께끼다. 하지만 가장 막강한 이론 중 하나는 ‘동성애자가 필요했다’는 가설이다. 사냥을 가야 하는데 동네 남자들이 다 같이 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남은 놈이 내 부인을 겁탈할까봐. 그래서 다 끌고 가면 옆 동네 남자들이 쳐들어온다. 그런데 동성애자를 남겨놓고 가면 걱정할 게 없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인간 사회에는 동성애자들이 일정한 비율로 존재하고, 동물 사회에도 존재한다.”

-동성애 하는 동물이 있다는 얘긴 처음 듣는다.

“갈매기가 평생 해로하는 새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연구를 해보니까 이혼율이 30% 넘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작년에 새끼를 키우면서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을 놓고 애를 먹인 배우자와는 다시 안 사는 거다. 그리고 갈매기는 대개 2개의 알을 낳는데, 어떤 둥지에는 알이 4개가 있었다. 짝짓기는 다른 수컷과 하고 암컷끼리 레즈비언 커플이 돼서 사는 거다. 통계를 내 보니 갈매기 사회에 그런 둥지의 비율이 일정하게 있었다.”

최재천은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연구에서는 철저하게 암컷의 계보를 따른다”는 증언으로 부계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호주제 폐지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바 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도 어쩌면 자연의 섭리에 대한 과학적 이해로부터 재출발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에서 고대 노예제 시대의 협력이나 민주주의 시대의 협력은 진화론적으론 같은 레벨인가? 인권이나 사회민주화는 진화생물학 차원에서는 어떻게 설명되나?

“협력은 진화적인 관점에서 철저하게 자발적인 것이기 때문에 노예제도는 협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이 누구냐? 인간, 개미, 흰개미, 꿀벌… 이 모두가 협력을 할 줄 아는 동물들이다. 바퀴벌레나 모기한텐 그게 없다. 고도로 협력할 줄 안다는 게 우리 행복의 근원이다. 협력엔 희생이 따른다. 누군가는 더 희생하고, 누군가는 자기를 죽이고 이랬기 때문에 협력 관계가 유지된다. 올 4월에 우리가 개미전시회를 할 때 꿀단지 개미를 가져올 건데….”

-꿀단지 개미?

“개미가 식물이나 진딧물 같은 데서 단물을 채취해 오는데 그걸 담아둘 항아리가 없어서 ‘살아 있는 꿀단지’를 만든다. 개미 중 일부가 천장에 올라가 매달리는 거다. 그 개미 뱃속에 다른 개미들이 꿀을 집어넣으면 배가 100배 이상 커진다. 먹을 게 없으면 게워내고, 아니면 또 담고, 그렇게 몇 달을 견딘다. 실험을 위해 천장의 꿀단지 개미 몇 마리를 빼냈더니 다시 몇 마리가 자발적으로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 매달리는 게 관찰되었다. 한번 생각해 봐라. 매달려 있는 개미는 눈을 뜨고 있다. 저 밑에 친구들이 잠을 자거나 지들끼리 툭툭 치고 놀 때에도, 천장의 개미는 그 무거운 배로 매달려 있는 거다. 이런 협력은, 인간 사회에선 절대로 불가능하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모두가 같이 희생을 감내하면 참을 수 있지만, 지나치게 불균형적으로 일방의 희생이 계속되면 협력 시스템은 깨진다. 내가 볼 때 민주주의는 효율이 가장 높은 제도는 아니지만 인류가 선택한 가장 합리적인 제도다. 희생을 평준화해서 골고루 나누고 어느 일방이 혼자 손해 보지 않게끔 하는 것, 그것이 협력을 촉진하는 기반이다. 민주주의는 진화의 결과물이다.”

꿀단지 개미도 아닌데 너무 오랫동안 너무 일방적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삶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이들이 있다. 희생의 몫을 함께 나눠 지지 않는 한, 우리가 25만년 생명의 역사를 통해 전수받은 협력의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다. 그런 미래는 참담하다.

녹취 함규원(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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