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는 대형마트 아니다"..정부, 대법원 판결만 기다린다

2015. 1. 18. 1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대형마트 영업 제한 논란

▶ 서울고등법원이 지난해 12월 1심 판결을 뒤집고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대상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 휴업 지정일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판결 이후 규제 기요틴(단두대) 민관합동회의가 관련 규제를 '추가 논의 필요 과제'로 분류하면서 정부는 사실상 발을 빼고 '선택의 공'을 대법원으로 넘겼습니다. 이마트 등은 대형마트가 아니며 여성의 사회 진출과 편리한 장보기를 위해 휴일엔 마트가 문을 열어야 한다는 고등법원의 판결문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규제 기요틴(단두대) 민관합동회의는 지난달 28일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추가 논의 필요 과제'로 분류했다. 이날 8개 경제단체가 제시한 153개 규제 가운데 114개를 폐지 또는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규제는 수용 불가(16개), 추가 논의 과제(23개)로 나뉘었다. 서울 고등법원이 동대문구와 성동구의 유통산업발전법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을 취소하면서 정부가 향후 대법원 판결을 고려해 해당 규제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정부의 의지와 진심은 잘 읽히지 않는다. 청와대가 지난해 3월 규제 완화를 강조하며 부처별 장관들이 참석하는 이른바 '끝장 토론'을 벌이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4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칙 2134건을 폐지·개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관련 내용이 <한겨레> 보도로 비판을 받으면서 당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소상공인·중소기업 등 약자 지원에 관한 조례 폐지를 철회했다. 소상공인들이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고등법원 판결 이후를 주목하는 이유도 정부의 엇갈린 행보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2013년 개정되기 이전의 유통산업발전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당장 현실적인 영향력은 없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실장은 "대형마트 논리를 대폭 수용한 아주 우려스러운, 예외적인 판결이다. 법원이 대형마트 규제를 터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정권에서 대형마트 영업 제한을 완화할 것 같은 다양한 신호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고등법원 판결 이후 전통시장 공생 방안을 강조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판단이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수석부의장과 이현재 정책위 부의장, 산업통상자원부 이관섭 제1차관, 중소기업청 최수규 차장, 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창의산업정책관 등은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열고 공생 방안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사회적 이익이 상충할 때 정부·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등이 신뢰와 대화를 통해 이끌어 내야 할 대타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법원의 판단에서 정당성을 찾게 된다. 갈등을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횟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동력이 부족하다는 뜻과 같다. 그렇다면 정부가 대형마트 영업 제한에 관한 '선택의 공'을 넘긴 법원은 상식적으로 인정할 만한 수준의 판결을 했을까.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이번 판결은 가장 정직하지 못한 판결 중 하나로 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2012년부터 대형마트 영업제한 소송법원의 잇따른 기각과 헌재의 각하고등법원의 판단만은 달랐다1심을 뒤집고 대형마트 영업시간제한 처분 취소를 내렸다2014년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전통시장 상인의 건강을 고려시장 매출 통계도 취사선택이 판결 이후에 정부는 한발물러나 대법원 판결을 기다린다

여성과 시장 상인 건강권을 고려했다는 판결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재판장 장석조)는 지난해 12월12일 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등 유통업체 6곳이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번 고등법원 판결은 대형마트 영업 제한과 관련된 다른 법원 판단과도 다르다. 2012년 4월 서울행정법원이 대형마트가 제기한 의무휴업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데 이어 인천과 부산지방법원에서도 기각이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12월26일 유통산업발전법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합리성을 꼼꼼히 따지기 전에 해당 판결문의 일부를 발췌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육아와 살림에 대한 가정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맞벌이 부부는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주차공간, 편의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기 여러모로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저출산 등의 사회적 문제를 도외시한 채 여성의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더하는 방향으로 처분을 한 것이 과연 정당한 이익 형량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지 강한 의심이 든다.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대규모 점포가 유통질서 개선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국내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소비 환경을 개선하고 구매의 편의성을 높여 소비자의 효용을 증대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처분은 소비자의 선택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인다. 나아가 국내 대규모 점포는 해외자본으로부터 국내 시장의 잠식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는 점에 비추어 이 사건 처분이 과연 균형있는 형량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이 든다.

대규모 점포 근로자의 경우 교대근무나 대체휴무일 선택이 가능하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규모 점포 근로자보다 근무환경이 더욱 열악하여 오히려 건강권 보호의 필요성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의 효과에 관한 시장경영진흥원, 소상공인진흥원 등의 조사 결과는 이 사건 처분에 우호적인 단체가 단기간 조사한 결과이고, 연세대 교수 정진욱, 최윤정이 집필한 대형소매점 영업 제한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거쳐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 방법에 기초한 연구결과로 신빙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헌법상 기본권인 영업의 자유를 제한함에 있어 외형적인 양적 제한은 극히 신중한 심사를 요한다 할 수 있고, 앞서 본 (세계무역기구의)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및 한-유럽연합(EU) 에프티에이(FTA)의 조항은 영업의 자유 제한에 관한 헌법적 한계를 고려한 보편적인 기준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간 합의가 이루어져 국내법적 효력을 갖게 된 이상 피고는 국내 기업의 영업 자유를 제한함에 있어서도 신중한 재량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피고는 이를 게을리하였고, 나머지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준대규모점포에 대한 처분은 (세계무역기구의)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 및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의 조항에 내재된 헌법정신을 간과하여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익 형량의 원칙에서 어디로 기울었나

서울고법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근로자 건강권, 대형마트와 중소유통업 상생 발전 등 공익 달성의 필요성이 크고 영업 제한 시간은 소비자 구매가 뜸한 시간대이므로 대형마트 매출 감소분은 상대적"이라며 원고 패소한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으로 발생하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이익과 피해를 비교한 뒤 대형마트의 자율 영업으로 인한 이익이 높다고 판단했다. 충돌하는 이익을 저울에 달아 더 가치 있는 쪽을 선택하는 '이익 형량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따른 장보기의 어려움, 전통시장 상인의 건강, 해외자본으로부터의 방어 역할 등이 판결문에 등장하는 이유다.

재판부는 이에 앞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강조했다. 해당 대규모 점포가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내용을 판결문 32쪽 가운데 5쪽에 걸쳐 설명했다.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이 대형마트를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 집단'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점원의 도움 여부'가 대형마트를 규정하는 핵심 지표라는 게 재판부의 논리다. 이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원고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은 대규모 점포(매장면적 합계 3000㎡ 이상)의 종류를 대형마트,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 그밖의 대규모 점포 등 6개로 구분한다. 그러나 현행 재판부의 논리를 이 시행령에 들이대면 다른 유통업체들도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이 시행령은 백화점을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대적 판매시설과 소비자 편익시설이 설치된 점포'로 규정한다. 쇼핑센터는 '대규모 점포 또는 소매점포와 각종 편의시설이 일체적으로 설치된 점포로 직영 또는 임대의 형태로 운영되는 점포 집단'이다. 통상적으로 대형마트도 현대적 판매시설, 소비자 편의시설을 갖추고 직영 또는 임대로 운영된다. 따라서 시행령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으로는 실체적 구분이 쉽게 되지 않는다. 이 시행령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무인 대규모 점포'만이 점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소매하는 '대형마트'로 구분되는데 이런 대형마트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법의 모든 조항마다 명확성과 구체성을 담보하지 않는데 일반인이 통상적·상식적으로 인정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문자적 해석'만을 고집하는 것은 논리적일까.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인한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매출 규모를 파악한 통계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취사선택을 했다. 시장경영진흥원, 소상공인진흥원은 피고(영업시간을 제한한 지자체)에 우호적인 단체라고 한 반면 연세대 교수진의 논문은 신빙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논문은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와의 협조로 쓰여진 것이다.

전통시장의 전체 매출 규모는 2010년 이후 줄곧 하락세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자료를 보면, 전국 전통시장 매출 규모는 2010년 이후 매년 1조~2조원씩 줄고 있다. 2010년 23조9000억원이던 전통시장 매출 규모는 2011년 22조1000억원, 2012년 21조원, 2013년 20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유통환경 변화에 따라 전통시장 매출을 증가시킬 근본적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그러나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이 전통시장의 매출 감소 폭을 줄이는 등의 효과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심 재판부가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한 연세대 정진욱, 최윤정 교수도 "대규모 점포의 소비 감소분 가운데 재래시장 또는 소형 슈퍼마켓으로의 전환율이 19.4~22.3%"라고 분석했다. 다만 대형마트에서 시장과 슈퍼마켓으로의 전환율이 미미한 반면 대형마트 매출 감소, 세수 감소, 농어민과 중소협력업체의 손해, 대형마트 감원 등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평가한 것이다.

에프티에이와 세계무역기구 논란

재판부는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이 세계무역기구나 에프티에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원고와 피고는 홈플러스테스코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홈플러스 등이 서비스교역 일반협정과 한국-유럽연합 에프티에이 적용을 받는다는 데는 동의한다. 서비스교역 일반협정은 "서비스 영업의 총수에 대한 제한, 서비스 총산출량에 대한 제한을 채택할 수 없다"(16조 2항)고 규정하면서도 다양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예외조항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GATS 제14조 b호에서 인간, 동물 또는 식물의 생명 또는 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예외의) 그 허용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조례 조항은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구 유통산업발전법 12조 2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것이므로 GATS 제14조 제b호에 따른 시장접근 제한조치 금지의 예외사항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 재판부는 대신 공중도덕을 보호하거나 또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서 예외 범주를 인정하는 GATS 제14조 제a호는 소개하지 않는다.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 2에 대한 판단도 자의적이다. "특별자치시장·시장·군수·구청장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 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여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례 조항의 근거인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 2 가운데 '노동자 건강권 보호'만 판결문에서 인용했다.

해당 재판부는 지난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관련 소송 외에도 기업 관련 소송에서 1심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강남세무서 등 세무서 15곳을 상대로 낸 450억원의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또 구자엽 엘에스전선 회장이 친척간 거래한 주식에 대해 과세당국이 부과한 증여세가 부당하다는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중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보호하는 마트 영업 제한은 정당성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선거철마다 전통시장을 찾아가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면 또다시 달라진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현재 '노출 수위' 가장 높은 웹툰은?이병헌 사건, 이 싸움에서 가장 재미 본 사람들은?[만평] 장봉군의 '한겨레 그림판' 몰아보기…1월 셋째주 '대대손손'[화보] 미스코리아·박정희·김일…현대사와 함께한 장충체육관 재개관[포토] 박근혜·김무성·김기춘, 그들의 수첩엔 뭐가…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