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부양책이 매번 실패로 끝난 이유

박종훈 입력 2015. 1. 15. 06:03 수정 2015. 1. 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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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④

정부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며 걸핏하면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그 경기부양책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입해 공을 들이는 것이 바로 대규모 건설사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천문학적인 국가재정을 건설경기 부양에 쏟아 부었지만, 우리경제의 급속한 둔화 현상을 반전시키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건설 경기 부양에 의지해 경제를 살려보려다 참담한 실패를 겪은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부동산 버블이 급속도로 꺼지던 1992년부터 3년간 일본은 우리 돈으로 700조원에 이르는 돈을 건설경기 부양에 쏟아 넣었다. 하지만 엄청난 세금을 퍼부었던 건설사업도 이미 시작된 경기 하강을 막지는 못하였고, 결국 일본은 25년에 걸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게다가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무려 245%를 기록해 국가부채비율 세계 1위라는 오명만 안겨주었다.

사실 우리나라나 일본과 같이 이미 사회간접자본이 포화상태에 이른 경우에는 추가적인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득이 그리 크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일본의 지방정부연구원은 국가재정 1조 엔을 건설경기 부양에 쓸 경우 1.37조 엔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같은 금액을 교육에 투자했더라면 1.74조 엔의 경제 부양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 섞인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2009년 우리나라 산업연구원의 연구 결과에서도 건설투자의 소득창출효과는 1.47로 교육보건의 1.62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경기 부양과 빚더미에 의지한 지금의 경제 정책기조는 결코 우리의 잠재 성장률을 높일 수 없다. 단지 시간만 벌 수 있을 뿐, 추락하는 우리 경제를 되살릴 장기적인 비전 없이 이 같은 임시방편 조치만 끝없이 반복하게 되면, 남아 있던 재정 여력만 탕진한 채 경제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이미 성숙된 경제에서의 건설경기 부양책은 잠시 통증을 잊게 하는 마취제이지 환부를 직접 치료하는 수단이 되기 어렵다.

(이 글은 2015년 1월 12일 게재한 '[취재후] 당신이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바로가기 [취재후] 당신이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가장 강력한 투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렇다면 꺼져가는 우리나라의 성장 엔진을 다시 움직이게 할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유럽의 선진국들은 그 열쇠를 '사람'이라고 보고, 미래를 책임질 청년과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로 핀란드를 살펴보자. 핀란드는 전체의 15%에 이르는 이주민 자녀를 평가대상에 포함하고도 각종 국제 학력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교육 철학은 물론 전체 교육비 지출 대비 성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온갖 선행학습과 사교육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와 달리, 핀란드는 오직 공교육 만으로 우리와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비밀은 바로 강력한 공교육 시스템에 있다. 핀란드의 초등학교에는 1명의 교사 외에 2명의 보조교사가 있다. 교사가 전체 학생들을 지도하는 동안,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서 낙오되지 않고 따라오도록 보조교사들이 학생 하나하나를 지도한다. 그래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은 방과 후에 선생님과 함께 1대1 맞춤형 지도를 받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 철학의 차이다. 물과 나무 외에 특별한 자원이 없는 핀란드에서는 '사람이 최고의 자원'이므로 '단 한 명도 버릴 인재가 없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각자의 적성 차이로 인해 당장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 중에서도 얼마든지 뛰어난 학생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학생들 하나하나의 특성에 맞춘 '특수 교육'을 강화하였다. 이 때문에 선행학습은 물론, 자녀가 학교 수업에 뒤처지는 것을 걱정해 사교육을 할 필요도 없다.

이 같은 교육철학 덕분에 핀란드는 공교육만으로 학생들을 세계 최고의 인재로 키우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육성된 인재들이 '앵그리 버드(Angry Bird)'를 만든 로비오(Rovio)사나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인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의 슈퍼셀(Supercell) 등 수없이 많은 벤처기업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이 무너진 것과 같은 충격을 준 '노키아의 위기' 속에서 핀란드 경제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게다가 핀란드의 교육이 더 싸고 더 효율적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핀란드의 교육비 부담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에서 공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5%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공교육비 부담이 4.9%이니, 단순히 정부지출만 놓고 보면 핀란드가 높아 보인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민간 가계의 공교육비 부담이 0.1%로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반면, 우리나라 민간 가계는 공교육비 부담이 무려 2.8%나 된다. 결국 한국의 민간과 정부의 공교육비 부담을 모두 합치면 GDP의 7.6%로 핀란드보다 훨씬 높다. 여기에 통계로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사교육비가 최소 18조원 이상 추가로 더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과 핀란드의 교육비용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계의 교육비 부담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모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을 꿈꿀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이 이미 계층 이동의 장벽이 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달리, 모든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부모의 수입이 자녀의 수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부모의 소득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이전된다는 뜻이고, 0에 가까우면 자녀의 소득이 부모의 소득과 거의 연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핀란드는 0.18을 기록해 영국의 0.5에 비해 훨씬 낮았다.

혁신의 주체가 될 청년에게 '역전의 사다리'를 놓아라!

이렇게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 처음부터 자신에게 꼭 맞는 직장을 찾아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처음 사회 진출에서 실패를 겪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사회진출 초기에 낙오된 청년들이 당장 먹고 살기조차 어렵게 되면, 결국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곳에서 일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어 미래세대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제 성장 동력도 약화되게 된다. 이 때문에 유럽 선진국들은 국가재정으로 이런 청년들의 패자부활전을 돕는 '실업부조'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기 구직 활동에서 탈락해 당장 생활비가 급한 청년들이 시간제 계약직 일자리에 내몰리는 현상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들은 아무리 오래 일해도 생산성이 향상될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시간제 계약직에 내몰린 청년들은 나중에 높은 임금을 받기도 어렵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생산성 향상이 더뎌져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혁신적인 생산주체, 경제력이 있는 소비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어야 우리 경제 전체가 다시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청년들을 줄 세워 솎아 내고 남은 이들만으로 돌리는 반쪽짜리 엔진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서 돌려봐야 이미 멈춰가는 한국 경제의 엔진을 다시 돌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경제 전체의 성장 동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실업부조의 도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경기 부양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사람'에 대한 소중한 투자를 그저 '돈 낭비'나 '퍼주기'로 치부한다. 심지어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해야 할' 청년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키는 것이라며 시도조차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에 발달한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서 그들의 우려는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넛지(Nudge)』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것처럼 청년들의 구직 노력과 재교육 기간을 실업부조와 잘 조화시키는 합리적인 제도설계(Mechanism Design)가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여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기적을 낳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를 주장하는 관료나 정치인이 있다면, 수십 년 전에 배웠던 경제학 책만 고집하지 말고 최신 경제학을 조금만이라도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선진국들은 앞에서 제시한 공교육 시스템과 실업부조 뿐만 아니라, 아동수당과 공공보육, 공공주거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미래세대에 대한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이 21세기 가장 소중한 자원인 '사람'에 대한 투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 우리나라만 뒤처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부 경제 관료들은 청년에 대한 투자가 포퓰리즘적인 '퍼주기'라며 우려하지만, 사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건설사 사주에게 퍼주는 천문학적인 건설경기 부양 예산이다. 콘크리트에 투자되는 돈이야말로 그 유착관계 때문에 좀처럼 감시를 하기가 어렵고, 전방위적인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위대한 민족'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좌절할 것인가?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미사 중에 "위대한 민족은 과거의 전통을 물려받아 새롭게 도전하는 그들의 젊은이를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람에 대한 가치를 잊어버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정말 소중한 지혜와 통찰이 담긴 말이었다. 우리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투자는 교량이나 댐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고 '미래세대'라는 것을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최고의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사람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면 도대체 어디서 우리나라의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제 희망의 불씨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지금이 '위대한 민족'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는 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주 2회 연재됩니다.

☞바로가기 [뉴스9] "역전의 사다리를 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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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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