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면 까' 정신이 앗아간 두 청년의 목숨

김은지 기자 2015. 1. 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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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2014년 4월3일 특전사령관 주재 회의실.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영화 한 편을 틀었다. 15분으로 편집된 전쟁 영화 <브라보 투 제로(Bravo Two Zero)>였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 투입된 영국 특수부대 SAS(British Special Air Service)의 실화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전인범 사령관이 강조한 부분은 SAS 대원이 포로로 붙잡힌 장면이었다. 안대로 두 눈을 가린 채 무릎을 꿇고 고문을 받는 모습을 가리키며 전 사령관은 회의에 참석한 여단장·작전참모 등 32명에게 물었다. '우리 부대는 포로로 잡혔을 때 살아오는 훈련은 시행하고 있지 않지?' 당시 13여단장이었던 김 아무개 준장이 그의 말을 받았다. '우리 여단에서 발전시켜보겠습니다.'

장면 둘. 2014년 9월2일 밤 특전사 독신자 숙소. 포로 체험 훈련에 동원된 교육생 10명이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고문실과 수용실로 개조된 방에 갇혔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관 4명은 손에 검정 신발주머니나 빨간 줄무늬의 개 목줄 따위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에 헤드랜턴을 낀 이 아무개 중사가 서 있는 교육생의 머리에 신발주머니를 씌운 다음 목줄을 묶었다. 김 아무개 상사는 개 목줄과 케이블 타이로 교육생의 발을 묶고 무릎을 꿇렸다. 이어 김 아무개 원사(진)가 교육생의 양손을 뒤로해 포승줄로 묶고, 남은 줄로 다리를 묶은 개 목줄과 연결해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일명 '고독화 단계'였다(군에서는 진급 예정자에게는 직함에 '진'을 붙인다. 이 경우 현재 상사인데 원사 진급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적진에 포로로 잡혔을 때 대처 방안을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실시된 훈련이었다. 교관 4명, 훈련 인원 10명, 훈련 지원 10명 이렇게 총 24명이 동원되었다. 신문이나 고문을 하기 전 포로를 독방에 두어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이 단계는 하루 종일 밥도 주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채우고 목줄을 묶은 지 5분 정도 지난 다음부터 교육생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 순간,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와중에도 교관 4명 중 가장 선임인 김 원사(진)는 내연녀와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를 했다. 1시간가량이 지나 발견된 교육생 조 아무개 하사(21)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 교육생 이 아무개 하사(23)는 보랏빛 얼굴을 한 채 입에 거품을 물었다. 병원으로 옮겨간 두 사람은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인은 질식이었다.

예고된 참사였다. <시사IN>이 입수한 교관들의 재판 기록을 보면 이번 사고가 인재임을 알 수 있다. 특전사령부 최고 결정권자인 전인범 사령관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훈련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다. 4월에 착수한 훈련 계획은 그해 9월 예행연습으로 이어졌다. 말 그대로 군사작전을 하듯 펼쳐진 훈련 과정을 살펴보면 전인범 사령관의 한마디가 아래로 어떻게 전파되어 사고를 낳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단계를 내려갈수록 문제가 생겼지만 훈련 계획은 계속 진행되었다. 특전사령관→13여단장→참모장→작전참모→교육계획장교→교관으로 내려온 교육훈련 지시 체계 속에서 제대로 된 준비나 안전장치 없이 교육이 실시된 셈이다.

특전사 수사 결과 보고만 봐도 사고 원인은 준비 미흡이 핵심이었다. △면밀한 훈련 준비·현장확인 조치 미흡(훈련 한 달 반 전인 7월21일에야 TF팀 편성, 포로 체험 훈련을 받지 못한 교관과 전날 휴가에서 복귀한 교육생 동원 등) △안전 대책·위험성 인식 결여된 훈련 진행(현장 CCTV 미배치, 안전성 확인 안 된 훈련 보조 재료 사용 등)이라 적혀 있다. 사고를 직접 부른 건 현장 교관의 부주의와 신발주머니 사용이었지만, 이를 통제·감독하는 지휘 라인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뜻이다.

사건 당일 여단장은 진급심사위원으로 육군본부에 가면서 자리를 비워, 참모장이 지휘를 했다. 참모장은 당일 다른 업무로 현장을 찾지 않았다. 대신 밑으로 현장을 지키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작전참모는 허리디스크 때문에 당일 저녁 부대에 없었고, 교육계획장교는 오전에만 현장에 들른 후 '부재중 여단장 업무 보고'를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회계연도 중간에 시작된 훈련이다 보니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았다. 김 아무개 교육계획장교가 CCTV 방송시설 설치 등으로 훈련장 예산 3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사령부에 기안을 올렸더니 2015년부터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훈련장 또한 구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비어 있는 독신자 숙소를 사용하게 되었다. 숙소를 훈련장으로 개조하며 든 130만원도 외상 처리를 해야 했다. 애초 계획한 감시 카메라와 녹음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예산 확보 못해 훈련 재료 외상으로 구입

훈련에 필요한 보조 재료도 사비를 들이거나 외상을 했다. 교관 김 상사는 '예산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8월7일 동네 철물점에서 개 목걸이 10개, 쇠사슬 6m, 앵커 12개를 외상으로 구매했다(9월29일 군 검찰 조사)'라고 말했다. 교관 이 중사는 '그렇게 재촉했는데도 사주지 않아 훈련 시작 전날에 문방구에 가서 개당 2000원 하는 신발주머니 12개를 개인 카드로 결제했다(9월28일 군 검찰 조사)'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보조 재료가 좀 더 일찍 구비되었다면 실습을 해보았을 것이고, 이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원 확보도 잘 되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난 7월이 되어서야 관련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그사이 이 훈련을 나서서 추진해보겠다고 했던 13여단장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원래 특임대에 임무가 부여되었지만 부대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TF가 만들어졌다. 김 상사는 '7월21일 신고 직후 교육계획장교가 교육 내용에 대해 '원래 정찰대에서 맡은 임무였는데 바빠서 못하게 되었다. 급하게 시작해야 되니 집중해서 9월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취지로 설명해줬다(9월29일 군 검찰)'라고 말했다.

TF 팀장이 명시적으로 임명되지 않아 현장에서 혼선이 생겼다. 8월8일 여단장이 현장 지도를 한 다음 지역대장급이나 중대장급으로 통제장교를 붙이라고 지시했지만, 작전참모는 교육계획장교와 토의한 끝에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상부 또한 지시 사항을 꼼꼼히 챙기지 않았다.

게다가 각 부대 사정에 맞추다 보니 훈련 대상자가 될 교육생 선발도 쉽지 않았다. 각 대대가 정해진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며 인원 차출에 난색을 표하자, 훈련 하루 전날 휴가에서 복귀한 특전사 대원들이 내용도 모른 채 포로 체험에 동원되었다. 교관 김 상사는 '8월31일까지만 해도 이 훈련이 실행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교육계획장교는 훈련 인원이 20명이라고 하고, ○○대대에서는 모른다고 하고, 교관 이 중사는 15명이라고 하는 등 (다 말이 달라) 훈련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었다(9월29일 군 검찰)'라고 진술했다.

교관들도 실전 없이 문서로만 훈련을 배운 채 투입되었다. 참모장 주관의 연구 강의 두 번(8월22일, 28일)도 실전 훈련에 임박해서 진행되었다. 교육계획장교와 작전참모는 내용에 대한 지적보다는 PPT 양식이나 글씨 크기 같은 형식에 대한 지적을 주로 했다고 교관들은 입을 모았다.

첫 추진 계획보고서(7월15일 기안)와 달리 연구 강의에서 두건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교육계획장교와 작전참모는 그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건 사용이 질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나마 8월22일 연구 강의에서 이 아무개 참모장이 두건을 헝겊과 같은 바람이 잘 통하는 걸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8월31일 한 번 더 예정되어 있던 현장 사열이 작전참모에게 위임되었지만 실시하지 않았다. 결국 두건 용도로 쓰일 신발주머니가 지휘관의 감독에 걸러지지 않은 채 현장에서 쓰였다.

교관들 역시 급박한 교육 일정에 부담 느껴

포로 체험에 쓰일 두건으로 신발주머니를 사온 교관 이 중사는 첫 계획보고서에 '두건'이 아닌 '안대'가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군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으면서야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첫 계획보고서가 교관 교육 때 강조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급박히 돌아가는 교육 일정에 부담을 느낀 현장 교관들은 일정을 미루면 안 되느냐고 교육계획장교에게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난맥상은 상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여단장은 사령관에게 이메일 보고를 하면서 한 번도 포로 체험 훈련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고 알리지 않았다. 9월2일 훈련 또한 사령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특전사령부가 작성한 자체 보고서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고 당일 훈련은 사령부 통제 시험 적용 훈련이 아닌 여단 자체 예행연습이었다'라고 적었다.

교관 4명은 현장에서 바로 헌병대에 체포돼 조사받았다. 중과실 치사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고 선고만 남은 상태다. 지휘부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김 아무개 교육계획장교와 김 아무개 작전참모 또한 중과실 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았던 이 아무개 참모장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 아무개 여단장은 참고인으로만 조사받고 끝났다. 전인범 특전사령관은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았다.

전 사령관은 10월7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이 사건과 관련해 '사고의 핵심이 두건에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두건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 있냐는 진성준 의원의 문제 제기에 대한 답이었다. 또 그는 '기본적인 훈련의 승인권자는 특전사령관이다. 이외에도 모든 훈련은 저의 책임하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진성준 의원은 '훈련에 대한 통제, 훈련에 대한 준비, 그 이전에 훈련의 계획, 이 단계 모두가 다 제대로 안 됐기 때문에 사건이 났다'라고 지적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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