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윤성빈 "매일밤 평창서 금메달 따는 상상하며 잠들죠"

양준호기자 2014. 12. 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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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아니었으면 아르바이트하고 있었을 것"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켈레톤 사상 최고인 16위를 기록한 윤성빈(20·한국체대). 그는 당시 취재진의 축하에도 "금메달을 따지 않는 한 어떤 선수도 만족 못할 것"이라는 강력한 한마디를 남겼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 지난 20일, 윤성빈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월드컵 2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2차 레이스 합계 1분52초23의 기록으로 한국 썰매 종목(스켈레톤·봅슬레이·루지) 사상 첫 월드컵 메달. 소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매튜 앙투안(미국)을 0.33초 차로 따돌렸다.

한국 스켈레톤은 지난 2000년에야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이 생길 만큼 역사가 짧다. 윤성빈의 선수 경력은 더 짧다. 2012년 여름 처음 썰매를 만졌다. 그런 그에게 2018 평창 올림픽 금메달 기대가 쏠리고 있다. 월드컵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큰 무대. 윤성빈은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인 지난 12일 1차 대회에서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부정 출발로 실격했지만 두 번째 대회에서 역사를 썼다. 국제연맹과 해외언론은 썰매 불모 한국에서 온 신성의 무서운 성장세를 신기해하며 '아이언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최근 귀국한 윤성빈을 29일 인터뷰했다. 그는 "2년 전 스켈레톤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윤성빈은 서울 신림고 3학년이던 2012년 여름 체육교사의 권유로 대표선발전에 나갔다. 운동이라곤 취미로 축구와 농구를 했을 뿐 동계 스포츠는 전혀 몰랐다. 스키장에도 가본 적 없었다. 선발전은 3수 끝에 합격했다. 썰매를 한 손으로 잡고 달리는 스타트 동작만 평가했는데 배구선수 출신 아버지와 탁구선수 출신 어머니를 둔 윤성빈은 육상선수 출신들과의 경쟁을 이겨냈다.

스켈레톤의 최고 시속은 130㎞에 이른다. 머리를 앞에 두고 엎드려서 타기 때문에 더 무섭다. 윤성빈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도전한 거였는데 사정없이 얼음벽에 부딪히니 무서웠다"고 돌아봤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내 무서움을 느낄 틈도 없어졌다. "정말 주야장천 썰매를 탔어요. 하루에 9번 슬라이딩 트랙을 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강도죠." 스켈레톤 선수들은 보통 하루 3번을 타면 체력의 한계를 만난다. 길이 1,000m 이상인 트랙에 20개에 가까운 커브 구간이 있어 이곳을 돌 땐 중력의 4~5배 가속도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성빈은 "3번 탄 이후로는 집중해서 탄다기보다 그냥 내려가는 느낌"이라고 돌아봤다. 지난해는 가속도를 늘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2~3주 만에 몸무게를 12㎏이나 늘리기도 했다. 하루 8끼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지옥의 시간이었다. 윤성빈은 "지금은 85㎏인데 내년에는 더 찌울 계획이다. 스타트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몸무게를 또 늘려야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윤성빈은 지난 1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대륙간컵 6차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월드컵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대회였지만 한국 스켈레톤 사상 첫 금메달이었다. 소치 올림픽을 통해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수확했다. "출전하기 전에는 올림픽 하면 뭔가 벽이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런 벽은 없었어요. 다른 대회들이랑 똑같았어요." 영국에서 공수한 '귀한' 썰매도 한몫 했다. 한 대에 1,000만원 정도인 이 썰매는 조인호 대표팀 감독이 발품을 팔아 지난해 1월 들여온 것으로 세계 3대 썰매로 손꼽힌다. 스타트가 최대 강점인 윤성빈은 새 썰매에 적응하면서 드라이빙 기술도 능숙해져 날개 단 듯 비상을 거듭했다.

윤성빈은 평창 올림픽 얘기가 나오자 "매일 밤 시상대 꼭대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상상을 하고 잠든다"고 했다.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썰매 종목이 예정대로 평창에서 열리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논란이 됐던 썰매 종목의 타국 분산 개최 가능성에 가장 초조해했던 것은 바로 선수들이었다. 썰매는 홈 어드밴티지가 유독 큰 종목이기 때문이다. 코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이 타보는 게 최고다. "이번에 동메달을 딴 것도 가장 많이 타본 트랙이어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중위권 선수들도 홈 트랙에서 타면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어드밴티지가 큽니다." 1~4차 레이스 합계로 순위를 가리는 올림픽은 4번을 기복 없이 타야 메달권에 들 수 있는데 윤성빈은 "홈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많이 타볼 수 있을 테고 그러면 4번을 다 괜찮게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근 헬멧을 아이언맨 디자인으로 도색한 윤성빈은 다음 달 2일 독일로 출국, 10일부터 알텐베르크에서 열리는 월드컵 3차 대회에 출전한다. 이렇다 할 꿈도 없이 살다 우연히 접한 썰매에서 재능을 확인한 윤성빈. 그의 머릿속에는 3년여 뒤 누빌 평창 올림픽 트랙만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평창 올림픽 이후 계획이요?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양준호기자 migue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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