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이제 바둑인생 후반전이다"..정상에서 물러나면 보급·교육에 힘쓸 터

엄민용 기자 2014. 12. 2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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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이세돌 바둑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이세돌 9단이 렛츠런파크배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지난 22일과 23일 제주도 애월읍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벌어진 결승1·2국에서 강동윤 9단과 1승1패를 주고받은 뒤 27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의 한국기원에서 치러진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이9단이 162수 만에 백불계승을 거두며 종합전적 2승1패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날 승리로 이9단은 2014년의 마지막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TV바둑아시아, KBS바둑왕, 맥심커피배에 이어 국내 최다인 4관왕에도 올랐다.

더욱이 올해에만 벌어들인 상금이 14억1000만원에 이르면서, 이창호 9단이 2001년 세운 한 시즌 최다상금액(10억2000만원) 기록도 갈아치웠다. 한마디로 2014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이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 원동력으로는 '가족의 힘'을 꼽았다.

하지만 이9단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한두 개의 세계대회에서 정상에 서고 싶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의 바둑을 두겠다"고 약속(?)했다. 올시즌 가장 아쉬운 승부로는 중국랭킹 1위 스웨 9단과 맞붙은 삼성화재배 8강전을 꼽았다.

렛츠런파크배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대국장을 빠져나와 맛있게 담배 한 모금을 마신 이9단을 만나 2014년을 뒤돌아보며 2015년의 각오를 들어봤다.

-축하한다. 이런 때의 담배 맛이 어떤가.

△정말 맛있다. 어려운 승부 끝에 승리한 뒤의 담배 맛은 더욱 좋다. 이런 게 담배 맛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렛츠런파크배 결승3번기를 정리해 달라.

△힘든 승부였다. 특히 제주도에서 치른 결승1·2국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전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운 좋게 1승1패로 끝낸 것이 오늘 우승까지 하게 된 원동력이 된 듯하다. 3국도 쉽지 않았는데, 강9단이 막판에 실수를 해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결승1·2국 때 딸(혜림양)과 부인(김현진씨)이 응원을 왔다. 응원 덕을 좀 봤나.

△당연하다. 당시 컨디션이 정말 엉망이었다. 그런데 딸과 아내 덕에 조금은 밝은 기운을 찾을 수 있었고, 1승1패로 위기를 넘겨 오늘 승부에 올인할 수 있었다. 가족은 나에게 가장 큰 에너지원이다.

-올해 정말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14년 '이세돌 바둑'을 총평한다면.

△올해 무엇보다 가치 있던 일은 구리 9단과의 10번기에서 승리한 일이다. 사실 그것 빼놓고는 다른 기전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삼성화재배는 무척 아쉽다. 당시 구리 9단과의 승부에서 이겨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8강전 중국랭킹 1위 스웨 9단과의) 바둑 내용도 좋았는데, 역전패하면서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 최대 규모인 렛츠런파크배에서 우승하면서 그나마 70점 정도의 만족도를 얻은 듯하다.

-그러면 내년 승부에 임하는 각오는.

△내년에도 서너 개의 세계대회가 열린다. 그중 최소 한 개, 욕심 같아서는 두 개 정도의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두겠다.

-2013년 '암흑기'를 보낸 한국바둑이 2014년에는 좀 나은 성적을 거뒀다. 여기에는 국가대표팀 구성이 큰 힘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객하나.

△지금 국가대표팀을 평가하는 것은 좀 이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대표팀이 중국을 따라가는 식으로 운영돼서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할 것 같다. 중국에서 '어린' 세계대회 챔피언이 많이 나왔지만, 다들 '1회성' 우승자들이다. 오래 가는 선수가 없다.

-그러면 이9단이 평소에 강조하는 대로 선수들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대표팀이 운영돼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어떤 분위기는 만들어야겠지만, 획일적인 훈련보다는 대표팀 선수들의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연구들이 필요하다.

-최근 문을 연 연구실도 그런 목적, 즉 바둑영재들의 창의성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한 것인가.

△아니다. '한국바둑을 위해 이 한몸 바쳐' 하는 거창한 뜻은 없다. 나 스스로 공부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사실 집에서 공부에 매달리기는 쉽지 않다. 연구실은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한 공간이다.

-요즘에는 바둑의 전성기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고들 얘기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객하나.

△그것은 좀 더 지켜봐야 분명해질 것 같다. 나도 2013년에는 정말 엉망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구리 9단과의 10번기와 다른 기전에서도 나름대로 성적을 냈다. 따라서 한두 해 더 지나봐야 그런 것에 대해 좀 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한 2년 전에 "김지석 9단은 25세가 되는 해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예언'대로 김9단이 올해 삼성화재배 우승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건 김9단만의 얘기는 아니다. 다른 선수들도 그 나이가 돼야 경험이 쌓이고,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전성기를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ㅡ현재 한국랭킹 1·2위인 박정환 9단과 김지석 9단을 보면, 올해 국내에서는 박9단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반면 국제대회에서는 김9단의 성적이 더 좋다.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박9단과 김9단 사이에는 천적관계가 형성돼 있는 듯하다. 김9단이 박9단에게 약하다. 그런데 김9단은 자신만의 특색이 뚜렷하다. 반면 박9단은 전체적으로는 강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강점이 없다. 이 때문에 중요한 고비에서 자꾸 실족하는 듯하다. 박9단은 자신만의 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구리 9단과의 10번기 승리 후 '2014년으로 이세돌 바둑의 전반전이 끝나고, 2015년부터 이세돌 바둑의 후반전이 시작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큰 틀에서는 별다른 변화는 없다. 여전히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싶고, 그렇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하지만 바둑 보급이라든지, 영재 교육이라든지 바둑 전반에 걸친 여러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나이가 됐고, 시기도 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다.

-이9단의 보면 정상에서 물러날 경우 프로에서 손을 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정말 그런가.

△맞는 얘기다. 최전성기를 지나도 당분간은 바둑을 두겠지만, 더 이상 일류기사로 승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계속 승부사로 남아 있는 것이 좀 뭣하지 않나. 그때가 되면 승부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신경을 쓸 듯하다.

-다른 것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둑보급도 있고, 애들을 키우는 일도 가능할 듯하다.

-그때가 언제쯤이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당연히 최대한 늦출 생각이다(웃음).

-그렇다면 이9단이 생각하는 일류기사의 기준은?

△일단 대회에 나가면 우승후보로 지목되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줘 고맙다. 2015년에 더욱 멋진 모습, 재미난 승부를 기대하겠다.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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