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의 휴먼터치] 이순철 해설위원, '그래도 독설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4. 12. 26. 07:03 수정 2014. 12. 2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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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53)은 야구 해설계의 '독설가'로 통한다. 직선적인 비판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위험수위' 에피소드를 투척하기도 하면서 그의 해설은 '일회성'이 아닌 후폭풍을 일으킨 적도 꽤 된다.

"살살 좀 해달라고 말하는 선수들이 있죠." 섭섭함을 표현하는 감독들은 거의 없다는데 선수들에게는 좀 항의를 받는 편이다. 예전에는 개의치 않았지만, 이제는 이 위원도 가끔 표현에 신경을 쓴다.

"선수의 주변 분들이 마음 아파했다고 할 때 아차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선수 본인들이 풀죽었다는 말에는 여전히 끄떡없다.

"프로야구는 보는 경기잖아요. 보는 사람들이 신랄하게 분석하고 맛보는 야구죠. 하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들의 해석과 평가에 담대해야 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감독의 선택과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볼 때, 이 위원은 철저하게 '보는 사람'의 입장이다. 현장의 심경을 잘 아는 처지지만, 현장을 향한 말은 냉정하다. 덜 이해해준다고 억울해할 것도 없단다. "어차피 프로는 완벽을 추구하는 게 의무"라고 잘라말한다. 기대치가 '완벽'이니 그의 해설은 역시 독설의 이유를 갖고 있다.

"감독이었을 땐 매 순간 결과에 집중하는 결정을 했죠. 순발력 있고 과감하게 선택하려면, 아무래도 변수는 배제하고 시야를 좁히게 됩니다. 해설자로선 같은 상황에 변수와 선택지를 더 많이 따져볼 수 있습니다. 결과보다 상황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여러 선택과 가능성을 비교하게 되죠." 가끔 해설을 하면서 답이 더 쉽게 보이는 상황을 발견하곤 한다. 결과의 중압감을 짊어져야 하는 벤치에서였다면 "경기가 모두 끝나고 복기할 때 비로소 계산이 제대로 될 듯한" 선택들이다. "그러니까 감독이 야구하기 참 어려운 자리는 맞습니다." 외아들 성곤(22·경찰청)이 올해 초 두산에 입단하면서 이 위원은 부자(父子)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아들에게 야구를 권하지 않았던 스타로 알려져 있지만, 아들은 스스로 야구를 선택했다.

'야구 선수가 너무 힘들어서' 말렸던 게 아니라, "나를 별로 안 닮은 것 같아서 굳이 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혹시 아들에게 마저 '독설'? "체격도 그렇고... 운동 신경이 아무래도 승마선수였던 엄마를 더 닮아보여서 야구보다는 승마를 시켜볼까 했었죠."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왔다. 프로야구 선수가 된 아들에게 아직도 '잘한다'는 칭찬은 인색한 이 위원이지만, 스스로 야구에 매달린 이성곤의 의지는 내심 대견해하고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열정만큼은 저보다 나은 선수죠." 따지자면 이 위원은 '재능형' 선수였다. 100m를 11초4에 끊었던 학창 시절부터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육상부를 비롯, 각종 구기 부서에서 탐을 냈던 학생이었고, 연세대에 입학한 뒤에도 축구부 감독에게 전향 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 빠른 발과 악착같은 승부 근성이 어지간히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선수 이순철'의 으뜸 재능이었던 스피드는 화끈한 마인드로 성취한 기술이라는 게 스스로의 분석이다. "나보다 키가 큰 선수들과 비교해서 보폭은 내 쪽이 클 때가 많았다"는 이 위원은 '뜀박질'을 '땅따먹기'로 이해한다. '보다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진'이라는 그의 공격형 달리기는 줄곧 그를 결승선의 선착자로 만들었다. 그는 '주력'이 신체적 능력 만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비슷하게 '해태야구'에 대한 세간의 평이 그저 '야구천재들의 집합체'로 표현될 때는 반감을 드러낸다. 80~90년대 최강의 명성을 쌓았던 타이거즈(현 KIA)는 해태 시절, 한국시리즈에서만 9번 우승했다. 선동열 김성한 이순철 조계현 이종범 등 '시대를 쥐락펴락했던' 굵직굵직한 스타들이 이끌었던 팀이다. 덕분에 '가을호랑이의 전설'은 조직력이나 세밀한 경쟁력 보다는 대형스타들의 '천재성'으로 평가받을 때가 많다. "9번 우승하는 동안, 4번은 정규시즌 1위 팀이 아니었죠. 그런데 한국시리즈에만 올라가면 반드시 이겨냈습니다. 단순히 스타들을 모아 놓았다고 나올 수 있는 기록이 아닙니다. 그 시절 해태야구에는 실체가 있는 경쟁력이 있었죠. 응집력의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내년은 해설자에게도 두근두근 기다려지는 시즌이다. 역동적인 변화가 기대되는 팀들이 너무 많다. 이 위원은 "SK, LG, 두산, NC의 변화가 특히 재미있을 것 같다"고 궁금해 한다.

그러나 그 어떤 팀보다 한 팀. 이번 겨울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화는 이 위원 역시 2015시즌 그라운드의 '주역'으로 점치는 막강 캐스트다.

"해설자로서 내년에 맞장을 떠야 할 최강 상대는 '김성근 야구'죠." 야구는 화면 없이 라디오 중계로 들어도 승부의 스릴감을 온전히 맛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로 꼽힌다. 그만큼 퍼포먼스에 대한 시각적 감탄보다 작전과 선택에 대한 분석이 더 큰 재미를 줄 때가 많다. '보는 야구'의 특권, 이 위원의 거침없는 '입야구'는 새해에도 주저 없는 한판을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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