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두살, 영어는 세살부터" 선행학습 부추기는 학습지

조용석 2014. 12. 26.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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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상태 학습지 업체들 영유아 공략 나서
불안한 엄마들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봐"
"과도한 선행학습, 공부 거부감 줄 수도"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학습지 전문업체들이 영업 대상을 영아(만3세 이하)까지 낮추며 선행학습을 부추기고 있다. 포화 상태인 교육시장과 출산율 감소로 위기를 만난 학습지 업체들의 생존 전략이 엄마들의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하는 불안 심리와 맞물리면서 빠른 속도로 영유아 대상 학습지 시장에 먹혀들고 있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경쟁 지향적인 사회가 자신의 아이가 뒤처질까봐 겁나는 엄마들의 마음을 부추겨 과도한 선행학습을 조장하고 있다"며 "너무 빠른 선행학습은 자칫 학습에 대한 거부감만 키워 진짜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학습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포화상태 학습지 업체 '아래로 아래로'

학습지 업체 '빅3'로 꼽히는 대교·교원구몬·웅진씽크빅은 최근 몇 년 사이 영아 관련 학습 상품을 앞다퉈 출시했다. 대교는 24개월부터 시작하는 '눈높이놀이 똑똑', 교원구몬과 웅진씽크빅은 13~30개월에 맞춘 '베이비구몬'과 '깨치기 아기유치원'를 각각 내놨다. 한글교육 중심이지만 영어가 포함된 상품도 있다. 그간 만3세 이상 유아에 집중했던 한솔도 지난 8월 영아 대상 프로그램인 '핀덴베베'를 출시했다.

일선 영업점들은 더 공격적이다. 만3세 이상을 대상으로 출시된 한 영어 프로그램을 3세 미만 아이 부모들에게도 구매를 권유하기 일쑤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영어에 노출돼야 영어 습득에 유리하다는 논리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학습지 업체 영업점 직원은 "영아 때 영어를 가르치면 영어를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처럼 받아들인다"며 "상품이 만3세 이상을 대상으로 나오긴 했으나 많은 학부모들이 24개월 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 영업점에서는 "호기심이 왕성할 30개월 때가 영어학습을 시작할 적합한 시점"이라고 권유했다.

기존 만5세 이상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에 집중했던 학습지 업체들이 대상 연령을 대폭 낮춘 이유는 실적 악화 때문이다. 학습지 업체 1위인 대교는 지난해 3분기까지 306억원이던 누적 영업이익이 올해 같은 기간 258억원으로 15.7%(48억원)가량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학습지 시장의 포화, 출산율 저하, 불경기가 겹치면서 대부분 학습지 업체들이 대상 연령을 낮추는 추세"라며 "0~6세는 엄마들의 교육열이 높아 상품 반응도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불안한 엄마들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봐"

영유아 학부모들은 학습지를 시작하는 이유로 '불안감'과 '낮은 초기 비용'을 주로 꼽았다.

영아 학습 상품을 최근 구입한 최모(33·서울 강남구 학동)씨는 "'또래 아이들이 모두 하는데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영유아 학습지를 시작하는 학부모도 많다"며 "교육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지만 아무 것도 안하면 불안감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황모(34)씨는 "몬테소리나 프뢰벨 같은 교구업체들의 영유아용 상품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 게 대부분"이라며 "학습지는 과목당 월 3만~4만원으로 비용이 낮아 실패해도 큰 부담이 없어 쉽게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너무 이른 선행학습은 교육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업체들이 '창의력 발달'을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한 창의력은 강제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고 표현하고 부모와 스킨십 하는 가운데 생긴다"며 "너무 이른 선행학습으로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 진짜 학습할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영유아기 반복 학습을 통한 지식 습득은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동물도 반복 훈련을 시키면 주인의 말을 알아듣고 시킨 일을 한다"며 "영유아들도 당연히 반복 학습을 통해 한글과 알파벳을 인지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조용석 (choju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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