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로 가격 표시, '영어'로 주문 받는 식당, 왜?

입력 2014. 12. 25. 16:50 수정 2014. 12. 2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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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AS]

'미국산 전량 수입' 강조 마케팅에 재미 더했다고하지만

'영어 사용=고급'으로 등치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얼마전 '제2 롯데월드 씨푸드 뷔페 허세'라는 제목의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 ▶ 관련 글 링크 ) 뷔페 입장 가격을 'Adult 성인 $100'라고 달러로 표기했지만, 정작 달러로는 결제할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원화만 받을 거면서 이 식당은 왜 달러 표기를 고집한 걸까요? 뉴스를 애프터서비스해드리는 '한겨레 뉴스 AS'에서 조목조목 취재해 봤습니다.

문제의 식당은 제2롯데월드타워에 있는 '바이킹스워프'라는 랍스터 뷔페입니다. '바이킹' 뷔페 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아시안키친'에서 랍스터를 주력으로 새로 개장한 식당입니다. 마성룡 바이킹스워프 지배인은 "미국산 랍스터다 보니 환율에 따라 수입 전량이 변동한다. 처음에는 1인당 10만원이나 12만원 선에서 고민했지만, 그보다는 환율이 고객들에게 재미를 줄 것 같아서(달러 변동 환율로 가격을 받기로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들쑥날쑥한 환율에 따라 음식의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 원산지를 강조하는 것에 더해 고객들의 흥미도 자아낼 것이라고 본 겁니다.

달러 표기하고 원화 결제받아도, 관련 법 저촉 아니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가격, 그래도 법적인 문제는 없는 걸까요?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부가세를 포함한 최종 지불 가격을 입장 전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음식점 '옥외 가격 표시제' 위반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옥외 가격 표시제를 계도하는 서울시청 식품안전과는 "가격 표기를 원화로만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날 그날의 변동 고시환율에 따른 최종 가격을 입장 전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크게 표기만 한다면 괜찮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환율로 인한 상가의 손실 위험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소비자기본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검사는 "해당 행위를 직접 규제하는 구체적인 고시는 없지만, 환율 리스크를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는 발상 면에서 물가안정법과 소비자기본법 제13조 '소정의 사업자의 부당행위'로 제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달러 가격 표기가 환율에 좌우되는 원가 때문이라면, 달러로 지불은 왜 안 되는 걸까요? "상거래법상 달러 결제가 안된다"는 식당 쪽 해명을 보도한 매체도 있었습니다만, 일단 '국내에선 원화로만 거래해야 한다는 법'같은 것은 없습니다. 한국은행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우선 상거래법이라는 법은 없고, 또 국내에서 이뤄지는 거래가 반드시 원화여야 한다는 규정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즉, 결제 수단은 식당 주인이 정하는 대로라는 얘깁니다.

<바이킹스워프> 쪽은 23일까지는 '앞으로도 달러 결제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달러로 받을 계획은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면세점, 백화점 등지에서 외화 결제를 받고 있지만, 저희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또 최종적으로 받는 가격도 전날 기업은행 고시환율 기준으로 계산해서 원화 기준으로 식당 안에 전광판으로 크게 안내하고 있습니다."(마 지배인)

하지만 '한겨레 뉴스AS'에서 기사가 보도된 뒤, "내부 회의 끝에 고객편의를 위해 식당 내 달러 결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25일 직접 <한겨레>에 밝혀 왔습니다.

일종의 마케팅… '미국산 전량 수입' 강조

그렇다면 당초 받을 생각이 없었던 '100달러' 표기를 한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아무래도 '100000원'이라고 쓰여있는 것과, '100달러'라고 쓰여 있을 때의 '체감 차이'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최근 작은 커피숍 등에서 메뉴판에 가격이 1만2000원이라면 1.2 하는 식으로 표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셨을 텐데요. 실제로 코넬대학교 연구 결과, 음식점에서 가격을 표기하는 방법 가운데 '$12.00'라고 쓴 것보다 '12' 라고 숫자만 짧게 쓴 경우 매출이 더 높아졌다는군요. 이런 연구 결과를 보면, '100000원'보다 '100달러'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미국식 기준'을 강조한 일종의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겨레>의 맛 전문기자인 박미향 기자는 "달러 표기와 환율 계산을 통해 미국산 전량 수입임을 강조함으로써 신선하고 고급스럽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박 기자는 또 "식음료의 경우 이런 식의 마케팅을 즐겨 한다. 이태원 '크래프트웍스' 같은 경우도 한국어 주문이 안되고 영어로만 주문을 받고 있는데, 재미를 넘어 거슬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외국의 느낌을 강조한 차별화 마케팅이 주는 '재미'가 때론 누리꾼들에게 '허세'라는 비아냥으로 이어진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최근 이태원에서는 크래프트웍스같은 '영어 전용 가게'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 ▶ 관련 기사 링크 ) 크래프트웍스는 '크래프트비어'라고 부르는 외국식 수제 생맥주를 파는 가게인데요,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고 토로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면서, 외국식 맥주라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로만 주문을 해야 하는 '불편'조차도 가게의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찾는 사람들이 주로 외국인이라서 그렇다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 사람들이 부쩍 몰려드는데도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조차 찾기 어려운 것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는군요.

오직 영어로만 주문을 받는 이태원 크래프트웍스의 경우 최근 판교와 을지로에 3호점까지 내며 체인을 확장했습니다. 블로그 등에서는 '외국에 온 느낌', '영어를 쓰고 싶으면 추천', '공짜로 영어회화할 수 있는 가게'라는 평이 돕니다. 물론 불만도 나옵니다. 한 커뮤니티 카페에서는 "영어로만 주문을 해야 한다. 하지도 않은 주문이 들어갔는데 취소가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음식점들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고 하니 우리는 한국 가게가 아니라고 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영어' 사용이 '차별화'·'고급' 인식 탓

이런 마케팅이 효과를 거두는 것은, 영어를 쓰는 것이 보다 '고급스럽다'는 일반의 인식도 한 몫을 합니다. 지난해 청담동에 한국 1호점을 낸 아베크롬비의 경우도 미국 교포들을 점원으로 고용해 영어로 말을 걸고 고객을 응대했던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 ▶ 관련 기사 링크 ) 영어 사용이 소위 '고급화 전략'이기도 하다는 얘깁니다.

달러로 가격을 표기하지만, 원화로 결제를 받는 식당. '한라 마운틴 비어'를 팔지만 한국말로는 주문할 수 없는 맥주집. 고객 불만조차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내어 더욱 유명해지니, 이름을 알려야 하는 가게들 입장에서는 마다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상품의 질적 가치 유무와는 전혀 관계없이 이뤄지는, 그래서 그저 허상에 불과한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전략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참, 정작 '100달러 뷔페' 논란의 불똥은 제2롯데월드 쪽으로 튀었습니다. 롯데에서 하는 직영 뷔페가 아닌데도 '제2롯데월드 뷔페'라는 식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불만을 가진 누리꾼들은 '역시 롯데월드는 갈 곳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롯데그룹 홍보팀에서는 "입점업체로 우리는 임대만 해주기 때문에 가격 표시방식 등이 논란을 빚더라도 운영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제2롯데월드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롯데 뷔페라는 식으로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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