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볼 PM 6:29]강정호가 본 '500만2015달러'의 가치

안승호 기자 2014. 12. 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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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내놓는 포스팅(비공개 입찰) 금액에는 일종의 쪽지 편지가 달려 있다.

포스팅 금액에 '꼬리'를 살짝 붙여 응원 메시지를 곁들인다. 류현진이 2012년말 LA 다저스에 입단할 때 원소속팀 한화에 전한 포스팅 금액 2573만7737달러33센트에는 동양에서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 7과 3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일본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2006년말 보스턴 유니폼을 입을 때 남긴 포스팅 금액 5111만1111달러11센트도 존 헨리 구단주가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1로 수놓아졌다.

강정호는 소속팀 넥센에 500만2015달러를 남기고 메이저리그로 떠나는 수순을 밟고 있다. '2015'는 내년 시즌 활약을 바라는 '애교 숫자'로 보면 된다.

사실 강정호에게는 포스팅 금액의 몸통 격인 500만달러 자체가 '행운'이 돼 돌아올 수 있다. 강정호는 그 숫자를 놓고 "도전하기 위해 적당한 금액인 것 같다"고 했다.

프로라면 가급적 푸짐하게 받는 게 좋다. 누구라도 조금 더 후한 대접을 받으려 한다. 강정호가 당초 기대값이던 1000만달러를 상회하는 포스팅 금액을 기록했다면 훨씬 더 폼나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채비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다. 타의에 의해 결정된 '강정호 몸값'은 훗날 꽤 절묘한 숫자로 기억될런지 모른다.

장거리 육상선수가 서둘러 맨 앞쪽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가급적 역풍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앞서 달리는 주자를 방패 삼아 바람을 피하다가 승부처에서 앞서 나가는 게 훨씬 현명한 전법이라는 경험을 여러 선수가 공유하고 있다.

강정호는 육상으로 따지자면 두세 번째 주자로 뛰는 느낌이다. 야수로는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1312만5000달러)와 니시오카 쓰요시(532만9000달러)에 이어 역대 3번째 포스팅 액수를 기록했고, 내야수로 대상을 좁히면 니시오카에 이어 2번째에 해당한다.

그 정도 수치를 두고 강정호가 '적당한'이란 표현을 먼저 쓴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도 전혀 무리가 아닌 액수인 데다 메이저리그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액수도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니시오카가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것은 기회 부족 탓이 아니었다.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에서 2010년 타율 3할4푼6리에 206안타를 때리고 미국프로야구 미네소타에 입단한 니시오카는 본래 포지션인 유격수를 내놓고 2루수로 전향해 2011년 개막전에 데뷔했으나 고작 일주일만에 왼쪽 정강이뼈 골절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후 6월 중순에야 복귀했으나 흐름을 돌리지 못하고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돈'은 종종 '독'이 되기도 한다. 프로선수에게는 몸값이 곧 기대값이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자유계약선수(FA)로 1억3000만달러에 이르는 대박을 터뜨리고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첫 시즌인 올해 부상을 꾹 참고 뛰느라 악순환을 거듭해야했고, 이승엽 역시 2006년 4년간 총액 30억엔의 초특급 계약으로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은 뒤 그만큼 큰 짐을 짊어지고 뛰어야 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강정호를 두고 '스폰지 같은 선수'라고 했다. 새로운 것을 잘 흡수하는 능력을 빗댄 것이었다. 스폰지는 비어있을 때 제기능을 잘 발휘한다. 강정호 또한 구색은 갖추되 가급적 가볍게 가는 게 좋을 수 있다. 스폰지처럼.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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