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문서 유출로 발칵 뒤집힌 평창 조직위

권종오 기자 2014. 12. 2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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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에 이어 이번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문서 유출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조양호 조직위원장은 이달 초 모나코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에 참석했습니다. 조 위원장과 평창조직위 핵심 간부들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마련한 올림픽 개혁안 이른바 '어젠다 2020'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듣고 평창 동계올림픽 썰매 종목을 다른 나라에서 분산 개최하는 방안을 제의받았습니다. 조위원장과 평창조직위 간부들은 귀국한 뒤 'IOC 집행위 참가보고서'란 문건을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건이 지난 15일 강원도의 한 신문에 그대로 보도됐습니다. 평창 조직위는 "누군가 문건을 해당 언론사에 고의로 유출했다"고 판단하고 감사원 출신 감사를 통해 강도 높은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평창조직위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그 문건은 조직위에서도 국장급 이상 몇 명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강원도의 한 신문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거의 그대로 보도했다. 신문 보도가 문건의 주요 내용을 다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담당 기자가 직접 취재해서 쓴 것 같지 않다. 누군가 해당 문건을 통째로 줬거나 아니면 이메일로 보낸 게 틀림없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조직위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나면 며칠 안 돼 유독 강원도의 모 신문사에만 관련 내용이 보도됐다. 그런데 강원도에 불리한 내용은 쓰지 않고 자신들에 유리한 내용만 보도되고 있다."

평창 조직위 외에 이 문건을 공유할 수 있는 기관은 강원도 동계올림픽추진본부와 문화체육관광부입니다. 조직위는 기밀 사항이 강원도의 신문에만 보도되는 정황을 감안해 일단 강원도 동계올림픽추진본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문체부와 강원도 지역 언론이 '앙숙'인 상황에서 문체부 직원이 유출할 가능성은 '0'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원도 동계올림픽추진본부는 "평창 조직위가 해당 문건을 보내온 적이 없다. 전혀 모르는 사항"이라며 일축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로서는 의심만 할 뿐 물증은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누가 무엇 때문에 문건을 유출했는지는 단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창 조직위에 파견된 강원도 출신 간부가 한 것인지, 아니면 비(非)강원도 출신 간부가 한 것인지, 아니면 강원도 동계올림픽추진본부인지, 구체적인 증거 없이는 함부로 예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평창 조직위도 강제 수사권이 없어서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문건 유출과 별도로 조직위의 보안 능력은 낙제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서울 사무소는 그나마 낫지만,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 있는 평창 사무소는 한마디로 보안 사각지대입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평창 조직위 직원의 말은 이렇습니다. "1층은 사무실이고 2층은 일반인이 거주하는 콘도인데 마음만 먹으면 외부인이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올 수 있다. 가끔 중국 관광객도 기웃거린다. 다른 나라의 경우 조직위 직원도 자기가 쓰는 공간 외에 다른 곳은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저도 평창 사무소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점심시간에 컴퓨터를 켜놓은 채 자리를 뜬 직원도 꽤 있었습니다. 외부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주요 기밀이 누설될 수 있을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문서 유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유능한 직원들이 조직위를 떠나려는 움직임입니다. 올림픽 유치와 준비에 핵심 역할을 했던 중앙 부처 출신 공무원 A 씨를 비롯해 경험 많은 강원도 출신 고위 공무원도 '원대 복귀'를 신청했습니다. 조직위에 있어봤자 경력에 도움도 안 되고 인사고과는 주로 낮은 등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조양호 위원장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0월 30일 평창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평창 조직위로 파견된 공무원들이 인사상 큰 불이익을 받고 있어 근무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빨리 떠나기를 바라고 있다. 이래서는 올림픽 준비가 제대로 되기 힘들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의 반응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실제 경기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인 경기부장 자리도 장기간 비어 있습니다. 조직위는 공모를 통해 후임 경기부장을 선임하려 했지만 4명의 신청자가 모두 부적격이어서 뽑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발하지 못한 이유를 놓고도 여러 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4명의 공식 신청자 외에 특정인을 이미 내정했다는 설, 4명 중 상당수가 정치인이나 힘 있는 인사의 후원을 받는 이른바 '빽'이 있는 사람이어서 어느 한 사람을 쉽게 선정하지 못했다는 설 등이 그것입니다. 조양호 위원장 장녀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문건 유출'을 비롯해 각종 악재까지 겹친 평창 조직위가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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