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웹툰·드라마로 대히트..'미생' 신드롬 일으킨 만화가 윤태호

입력 2014. 12. 20. 03:03 수정 2014. 12.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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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삶만 성공이 아니다..하루하루 버티는 미생의 삶, 소중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린 아직 다 미생(未生)이야." 올 한 해 이 땅의 직장인들은 이 한마디에 전율했다. 하루하루 발등만 바라보며 사는 삶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드라마 '미생'(tvN 방영)은 말했다. 대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고졸 출신 장그래가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내 얘기"라고 했다. 드라마 속 대사는 콕콕 마음에 박혔다. 퇴근길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운 날엔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는 대사가 떠올랐고 어깨가 축 처진 날엔 "부끄럽지만 내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대사에서 위로를 받았다. 드라마 '미생'의 평균 시청률은 8%까지 치솟았다. 방송 한 달 만에 만화 단행본은 100만부 넘게 팔려나가 누적 판매 200만부를 돌파했다. 작년에 드라마의 원작이 된 웹툰 '미생'이 조회수 10억건을 넘어서며 한 차례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었다.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가 올해는 토네이도급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스토리의 흡입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원작을 그린 윤태호 작가(45·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살면서 한번도 직장을 다녀본 적 없다고 하니, 취재와 관찰만으로 직장생활의 정수(精髓)를 짚어낸 이야기 솜씨에 감탄이 쏟아진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만화 에이전시 누룩미디어에서 '이 시대의 이야기꾼'을 어렵사리 만났다. 달떠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눈은 퀭하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지난 5일까지 연재했던 웹툰 '파인' 작업과 외부활동을 병행하느라 이틀에 한 번 잠을 잔다고 했다. 무리한 스케줄로 건강이 악화돼 '파인'은 한 달간 휴재를 결정한 직후였다.

"너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약간 무기력해지네요. 인기를 얻어봤어야 편하게 누려보지 학습된 바가 없어서 낯설고 적응이 어려워요." 웹툰에 이어 드라마도 직장인들에게 큰 위로를 줬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고졸입니다. 대기업 다니는 분들보다 못 배웠어요. 제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스펙'이 아니에요. 애당초 누구를 위로한다, 누구의 멘토가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부자의 삶만 성공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견디며 사는 것도 가치 있다고 생각했고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세상은 그가 만든 '미생'으로 난리법석인데 그의 관심은 신안 앞바다 도굴꾼들의 이야기 '파인'과 내년에 선보일 '미생2'에 쏠려 있었다. 그는 '미생2'에 대해 "소재가 비슷하면 지겨우니 다른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라며 걱정했다. 인기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에서 "완생은 없다. 완생을 위해 나아갈 뿐"이라는 '미생'의 대사가 떠올랐다.

데뷔작 '비상착륙'(1993)부터 사회 고발적인 '야후'나 스릴러 '이끼' 까지 소재와 장르는 달라도 모든 작품의 저변에는 항상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놓인 '미생들'의 몸부림이 깔려 있었다. '미생'은 바둑에서 집이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는 "꿈을 꾸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만화에서 추구하는 것은 다른 지점이다. 요즘 우리들은 이 사회를 꿈꿔볼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꿈꾸는데 왜 세상은 이런지, 왜 꿈꿔볼 만한 세상이 아닌지를 만화를 통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윤태호 작가와 일문일답.

-웹툰에 이어 드라마의 인기도 뜨겁다. '미생'이 이 시대와 소통하는 지점이 어디인가.

▶IMF 이후 직장인의 보호망이 약해졌다. IMF 사태는 직장인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피해는 그들이 다 받았다. 취직이 어려워졌고, 임시직은 더 늘어났다. 직장인이 자부심을 갖기 너무 어려운 상황이 됐다. 현실이 이러한데 드라마는 판타지만 그렸다. 우리의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나 '미생'은 시시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다뤘다. 어마어마한 일로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라 사소한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게 우리의 일상 아닌가. 사소한 지점이 울림을 줬다. 독자나 시청자들은 울 준비가 돼 있었다. '미생'이 그들의 뺨을 툭 건드려준 격이다.

-직장 경험이 전무한데 회사생활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어느 정도로 취재했나.

▶지인들의 소개로 상사맨이나 대기업 직장인을 만나 그들을 취재했다. 한 번 만나면 6시간씩 이야기하곤 했다. 차장이 높은지 과장이 높은지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까지 귀찮게 물어봤다. 노트북은 회사에서 주는지, 탕비실엔 뭐가 있는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잘하는 건지…. 현장에서 '리스크(Risk·위기)'와 '크라이시스(Crisis·위험)'를 달리 사용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적용해서 만화를 그리다가 뜻이 혼동됐다. 명확하게 알기 위해 그 사람(취재원) 회사 앞에서 출근할 때까지 기다려서 물어봤다. 사소한 단어 하나도 확인받으면서 그렸다.

(그의 관찰에 대한 집요함은 유명하다. '파인' 때는 취재를 위해 전남 신안과 부산을 오갔으며, '내부자들' 때는 주인공들이 태어날 때부터 해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엑셀로 정리했다.)

-만화는 상상력의 영역 아닌가. 관찰을 중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자들이 만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 내가 저렇게 살고 있구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 나 또한 취재하면서 대상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그 상태에서 만화를 그리면 독자들과 더 큰 공감대가 형성된다. 언제 한번 '그것이 알고 싶다'나 신문사 탐사 보도팀을 따라다니면서 취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주인공에겐 작가가 투영된다고 한다. 장그래와 닮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드라마에서는 (장그래 역의 임시완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같은 남자라는 것 외에 닮은 점이 전혀 없다(웃음). 사실 장그래는 이름은 긍정적이지만 생각이 많은 캐릭터다. 계속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 닮았다. 장그래가 독백을 많이 하는데 내가 그런 습관이 있다. 나는 후회스럽거나 반성할 생각이 들면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문장으로 되새긴다. 평소 머릿속에 남는 생각들을 휴대전화나 노트에 메모하곤 한다.

-자기 성찰을 거쳐 장그래는 성장한다. 장그래가 크게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닌데, 현실 모순에 부닥치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이 묘한 성취감을 주는 것 같다.

▶세상 사는 게 힘든 것은 악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내적 모순 때문일 때가 많다. 자기 한계, 내 생각의 편협함 때문에 힘든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돌아보면서 발전하는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데뷔 후 21년간 슬럼프는 없었나.

▶2001년 '로망스'부터 2008년 '이끼'가 나올 때까지 공백이 길었다. 슬럼프였다. 무가지 신문에 연재하고 교양 만화 한 편 그린 게 전부였다. 기획안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내도 다 거절당했고 신문 만화를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스토리도 확 나오지 않았다. 한번도 놀았던 적은 없는데 돈을 못 벌었다. 아내가 빚내와서 살았다. 가장 잘하는 게 이거(만화)니까, 여기서 답이 안 나오면 죽어버려야 한다는 오기로 버텼다.

-웹툰 수출이 물꼬를 트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만화작가 조합이 생기고, 한국 웹툰 중 북미 시장에 번역되는 작품이 늘고 있다. 웹툰의 해외 진출을 어떻게 전망하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잘 모른다. 이럴 때는 우선 나가봐야 한다. 지금 선구자 역할이 필요하다. 안갯속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정답처럼 보인다. 정부 지원, 자본이 도와주면 실제 가서 노크해봐야 한다. 현지의 말을 들어보는 게 우선이다.

-웹툰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만화산업 발전을 위해 개선할 점이 있다면.

▶원고료가 올라야 한다. 만화업계는 지금보다 더 제작비를 들여야 한다. 신인부터 허리층 작가들은 확실히 더 올라야 한다. 원고료는 월급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만화가가 한 달 원고료 500(만원)받는 것은 사업자의 수입이다. 스태프 인건비, 취재비 등 만화 제작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작가가 부담하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서 6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차세대 주자들의 실력은 어떠한가.

▶나를 밀어낼 애들이 내 학생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그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옛날처럼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시스템과 달리 요즘 친구들은 학교에서 자기 작품을 꾸준히 그릴 수 있다. 오리지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일찍 구축하기 때문에 개성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만화가를 꿈꾸는 후배들이 많다. 만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유명한 소설가들을 보면 영감이 떠오를 때 일하고 아닐 땐 일을 접고 쉬지 않는다. 항시 일을 한다. 허영만, 이현세 선생님도 끊임없이 일하셨다. 힘든 일은 힘든 일이다. 설령 세상이 받쳐줘도 자신이 (창작을) 못 버티면 될 수가 없다. 나한테 언제 때가 올 지 모르는 거다. 그래서 계속 그려야 한다. 솔직히 만화판엔 선수들이 많다. 조금 더 잘 그린다고 우위를 점하는 게 아니다. 깡다구 있게 버티는 게 재능이다.

고졸…20대 노숙…빚으로 생활…내 삶도 미생의 연속

1969년 광주 출생.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그는 고1 때 가세가 기울면서 방황을 시작했다. 명랑하고 싹싹한 성격으로 '까불이'가 별명이었던 그는 당시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며 내면으로 침잠한다. 대학 미술교육과 낙방 후 무작정 상경한다. 만화학원이 있는 서울 대치동 근처에서 노숙을 하다 허영만 작가가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끈질긴 요청 끝에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으로 화실에 들어간다.

허영만 작가 밑에서 기본기를 배운 그는 데생을 직접 하는 허 작가를 떠나 2년간 조운학 작가 밑에서 그림을 배운다. 윤태호는 "허영만 선생님이 (만화의)피와 정서를 가르쳐 줬다면 조운학 선생님은 뼈와 근육을 길러 줬다"고 한다. 1993년 '비상착륙'으로 데뷔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1998년 사회 고발성 만화 '야후'로 존재감을 알렸다. 10여 년간 긴 슬럼프를 겪던 그는 웹툰 시대가 도래한 후 웹툰 '이끼'로 유명세를 탄다.

치밀한 스토리와 완성도 높은 작화는 호평을 받았다. '미생'부터 '파인'까지 연달아 히트작을 만들었다. 취미는 자전거 타기. 그린란드처럼 "황량한 곳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을 수십 년간 지지해준 아내와 중1 아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있다.

[이선희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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