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그들은 왜 이자스민 의원만 공격할까?..대통령 선거 공약인데

심영구 기자 입력 2014. 12. 19. 09:21 수정 2014. 12. 1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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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했고 3년째 의정활동 중인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 다른 의원이 제출했는데도 그가 했겠거니 오해와 맹비난을 받기도 했던 의원, 그 이자스민 의원이 문제의 법안을 드디어 발의했다.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이다.

이 의원 외에 국회의원 22명이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 강창희 전 의장을 비롯해 주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많지만 박영선, 우상호, 김성곤, 김태년 등 새정치연합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서명했다.

-이 법은,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한국 국적이 아닌 18세 이하 아이들을 이주아동으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국적이거나, 외국 국적이라도 등록된 이주아동이라면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혜택을, 모든 이주아동이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즉 등록되지 않은 불법 체류 상태인 이주아동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안 내용을 보면 먼저 이주아동은 출생 등록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했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부모가 불법 체류자라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 출생 뒤 한국으로 들어온 아이들과는 달리 이 애들은 무국적 상태, 서류상으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걸 막자는 취지다.

다음엔 특별체류자격의 부여다. 법무부 장관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면 시행령에 따라 특별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게 한 건데 특별한 사정이란 아래와 같다.

1. 한국에서 태어나 거주하고 있는 이주아동

2. 건강이나 안전에 위해가 발생해 치료 및 진료가 필요한 이주아동

3. 한국에 입국한 뒤 5년 이상 거주했으며 연속적인 교육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주아동

4. 그밖에 인도적 사유로 한국 거주를 보장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이주아동

이번 법안에 새로 추가된 내용은 '부모와 함께 살 권리'다. 이주아동이 특별체류자격을 부여받으면 시행령에 따라 특별체류기간이 종료할 때까지 부모의 강제퇴거를 유예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법무부 장관이 취하도록 했다.

이외에 이주아동과 그 부모의 신상정보를 취득한 공무원은 이를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 통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도 넣었다. 출입국관리법의 '고지 의무'를 겨냥한 조항이다.

-핵심 쟁점은 특별체류자격 부여, 그리고 부모의 강제퇴거 유예 조항이 될 것 같다.

이 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이 국내 체류 자격을 좀더 쉽게 얻기 위해 원정 출산을 하거나 18세 이하의 자녀를 데리고 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체류 자격을 편법으로 얻게 되는 사례가 급증할 것이라고 일각에선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있는 불법 체류자가 2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런 불법체류자들이 이주아동 권리보장법을 악용해 사실상의 합법 체류자가 될 것이고 그 숫자도 크게 늘어날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보진 않는다.

중소기업의 인력난 때문에 산업연수생 제도부터 시작해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러 사정 때문에 불법 체류자가 된 것 외에도 브로커를 통해 위조 여권 등으로 신분을 속여 밀입국한 불법 체류자들도 제법 될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오원춘이나 박춘봉의 사례처럼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가 발각되기도, 혹은 그랬는데도 밝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불법'인 상황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편법으로 인정하는 건 썩 합리적인 발상은 아니다. 아동의 기본권, 인권 보장을 위해서라고 해도 널리 용인되긴 쉽지 않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정리될 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주아동에게 특별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조항도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담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해서 이자스민 의원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을 망하게 만드는 법을 저 필리핀 출신 여자가 만들려고 하고 있다", 대체로 그런 식이다. 국회의원들이 갖은 로비를 받아 특정 단체나 기업에 노골적으로 유리한,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들거나 그런 시도를 했더라도 이렇게 비난하진 않았다. 이자스민 의원실 전화번호를 공유하며 항의전화하자고 선동하고 'xx 년' 운운하며 욕설을 퍼붓고. 법안이 문제일까? 이자스민 의원 자체가 문제일까?

후자라면, 이자스민 의원이 19대 국회 들어 발의했던 여러 다른 법안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이었어야 했을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전자의 비중이 아무래도 큰 듯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래는 새누리당의 18대 대통령선거 다문화 공약 중 일부다. 이자스민 의원은 당시 '박근혜의 세상을 바꾸는 10가지 약속지킴이단'의 일원이었다.

1.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제정하겠습니다.

* 새누리의 진단

- 현재, 부모의 불법체류 등으로 미등록상태에 놓인 이주아동의 수가 1만 7천명으로 추산(2011, 국가인권위원회)

- 200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를 보장하라'는 권고

-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권, 건강권, 사회권 등 기본권 보장 필요

* 새누리의 약속

-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 보장

* 새누리의 실천

-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 제정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 제정은, 무상보육이나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보장 등처럼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다. 이 의원은 이 공약에 따라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마련해 이번에 발의한 것이다.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자, 의지에서 나온 법안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이라고 해서 이 법안이 꼭 통과돼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려고 하는 건 자연스럽다. 당시 대선 캠프에서 다문화 정책을 담당했던 이 의원이 대선 이후 2년이나 지나 법안을 발의한 건 오히려 늦었다고 할 만하다. 이자스민 의원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그들이 생각하기에 말도 안되는 법안 내용 때문이라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지난번 취재파일에도 적었듯이, 18대 국회에서 거의 같은 내용의 법안을(이름도 비슷하다,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 당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발의했다. 그때는 여야 합쳐 43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그 법안은 한나라당의 중점처리법안 목록에도 올라갔다. 비록 논의 진행 중 결론을 내지 못한 채 18대 국회가 막을 내리는 바람에 자동 폐기됐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이주아동 권리보장을 위한 법 제정에 비교적 또렷한 의지를 보였다. 이때 이자스민 의원은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영향을 행사할 만한 위치도 아니었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주아동 권리보장 법안'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그 후신인 새누리당, 그리고 당에서 배출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의지를 갖고 추진해온 법안이다. 이자스민 의원은 그런 의지를 따랐을 따름이다.

-이제 발의된 법안은 해당 상임위인 법사위에 회부된다. 이후 위원장이 상정하면 법안소위에서 논의한 뒤 위원회 차원의 심사를 거쳐 상임위를 통과해야 한다. 그 뒤에도 본회의에 올라 표결로 통과 여부를 가늠해야 한다. 이 많은 과정 중에 어느 한곳에서라도 제동이 걸리거나 관심받지 못하면 그대로 그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19대 국회에 12월 18일 현재까지 접수된 법안은 12497개다. 이중에 가결, 부결, 대안반영 폐기 등등 처리된 건 3791건, 미처리는 8706건이나 된다. 가결된 것만 따져도 1513건, 단순하게 보면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안이 가결 즉, 통과될 확률은 12.1%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엔 수정안 통과도 포함돼 있다.

-소박하게는 '아이들이 마음놓고 학교갈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게 법의 취지다. 논의 과정에서 강하게 비판받는 조항은 조정이 될지언정 우리 사회가 이 정도는 받아들을 수 있지 않나 하고 기대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공약 실천을 위해 조금 더 힘을 보탰으면 좋겠고.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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