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월드컵, 도전, 러시아..박은선 부르는 '서른즈음에'

권태정 2014. 12. 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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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권태정 기자= 박은선(로시얀카)은 새해가 되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다.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나이"라고 박은선은 말했다.서른을 앞둔 박은선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이다. 12년 전인 '2003 미국 여자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 월드컵 출전을 기다리고 있다. 열여덟의 박은선과 서른의 박은선은 얼마나, 또 어떻게 다를까?박은선에게 2014년은 새 출발의 해였다. 성별 논란의 상처를 이기고 4년 만에 대표팀에 합류했으며, 지난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참가해 득점왕을 차지했다. 러시아로의 첫 해외 진출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지난 8월 러시아 여자 프로축구리그로 진출한 박은선은 10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하며 로시얀카의 챔피언십라운드 진출을 도왔다. 4개월 간의 생활을 마치고 이달 초 귀국한 박은선을 만났다. "마침내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박은선은 휴가를 즐길 틈도 없이 서울의 한 재활센터에서 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박은선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지만 자신감 있게 그간의 러시아 생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방황과 아픔의 시간을 지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박은선은 자신의 경험이 스스로뿐 아니라 월드컵에 함께 나설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대의 막바지에 새 출발을 시작한 박은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러시아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생각했던 것 보다 좋은 나라다. 왠지 모르게 날카롭고 차가운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부드러운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 보면 좀 무뚝뚝해 보여도 알고 지내다 보면 친절하다. 한국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러시아로 가기 전에 주변 친구들이 '인종차별 당할 수도 있다'며 걱정했는데 그런 일도 없었다. 걱정한 것 보다 훨씬 좋은 나라다." -WK리그 시즌 중에 이적을 해서 갑작스럽다는 반응이 있었다. 러시아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경험을 위해서다. '네 나이에 무슨 경험이냐' 하는 분들도 있는데(웃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더욱이 내년에 월드컵이 있기 때문에 유럽 선수들을 미리 경험하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리그에서 뛰던 선수들도 있고, 그 선수들의 경험을 이야기로 듣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러시아는 월드컵에 안 나가긴 하지만 유럽 예선을 거치면서 했던 경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월드컵에 나가는 스웨덴 출신 선수도 있다. 막상 와보니 동료 선수들을 통한 간접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팀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나?"다들 잘 대해준다. 은선의 '은' 발음이 어려워해서 이름을 잘 못 말하긴 하지만(웃음), 대신 '팍'이라고 부른다. 특히 마리나(20), 카리나(21)와 친하게 지낸다. 훈련 중에는 감독님이 바로 바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는데, 두 친구가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해 준다. 쉬는 날에도 같이 놀러 가자고 연락이 많이 온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 보니 러시아의 관광명소들을 구경시켜준다. 모스크바에 있는 붉은 광장에도 가봤다." -타지 생활이 힘들진 않나? 날씨도 매우 춥다고 들었다."정말 춥다. 11월이 되니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더라. 물 뿌리면 그대로 언다고들 하지 않나.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 원래 추위에 약한 편이라 고생을 많이 했다.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멋모르고 두꺼운 옷도 많이 챙겨가지 않아서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이제 다시 들어갈 때는 옷을 많이 챙겨갈 생각이다. 독감 예방 주사도 맞고……(웃음)" -음식은 잘 맞나?"안 맞는다. 러시아 특유의 향신료를 쓰는 음식이 많아서 좀 힘들다. 팀에서 먹는 점심은 조금밖에 못 먹는다. 숙소 주변의 한인 교회 집사님께서 한국 음식을 많이 챙겨주신다. 특히 이번에 김치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꼈다. 김치 없이 보름 정도 지냈는데, 4개월 중 가장 힘든 보름 이었다. 그야 말로 김치가 아니라 금치다." -워낙 넓은 나라다 보니 원정 경기도 힘들 것 같다."기차, 버스, 비행기 등으로 원정을 다닌다. 기차가 정말 힘들더라. 침대칸에서 뒤척거리며 자다가 내려서 잠깐 쉬고 바로 경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교적 가까운 곳은 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가는데, 버스에서 내린 지 한두 시간 만에 경기를 하더라.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러시아 선수들은 이미 그런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수백 킬로미터씩 이동할 일이 없으니 처음에는 좀 신기했는데, 신기한 건 잠깐이더라. 나를 포함해 스웨덴, 포르투갈에서 온 선수들만 어리바리하게 있었다(웃음)."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함께 하지 못해서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본인은 어땠나?

"많이 아쉬웠고 화도 났다. 당연히 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적을 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팀에 출전 의사를 몇 차례 전달했지만 결국 할 수 없었다. 괜한 선택(이적)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올해까지 WK리그에서 시즌을 마치고 천천히 준비할 걸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나 하는 후회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너무 잘 해줬고 좋은 성적을 냈으니 기뻤다. 모든 경기를 다 챙겨보진 못했지만 대표팀 아이들이랑 SNS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분위기를 많이 전해 들었다. 동메달을 따낸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내년 열리는 월드컵은 차출 걱정이 없다. 기대가 많이 될 것 같다."물론이다. 선수들 모두 무척 설레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내게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지난 번에 나갔을 때(2003년)는 잔뜩 얼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나왔다. 이제는 다르다. 한국 여자축구도 많이 성장했다." -12년 만의 월드컵 출전인데 한국 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목표는 무엇인가?"주눅들지 않고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유럽 선수들이라고 해서 뿔 달고 나오지 않는다(웃음). 다 똑 같은 사람이고 선수다. 충분히 해볼 만 하다. 러시아에서 뛰면서 느낀 것은 전술이나 팀워크 면에서 한국 선수들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 선수들이 체격이나 힘이 좋긴 하지만 우리가 가진 장점이 있다. 괜히 주눅들어 경기장에 들어가면 일단 지고 들어가는 거다. 겁먹을 필요 없다. 어깨 피고 해야 한다. 목표도 이왕이면 크게 잡는 게 좋지 않겠나. 우승을 목표로 하고 싶다. 그리고 일단 1승이 중요하다. 지난 번 대회에서는 장렬히 굴욕을 당했는데(웃음), 차근차근 도전해 나가고 싶다. (골 욕심은 없나?) 어릴 때는 골 욕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개인적인 것 보다 팀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내가 골을 넣지 않아도 팀이 이기는 게 좋다." -연말이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어떤가?"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성별 논란)을 겪은 뒤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해서 아시안컵을 치렀다. 어린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대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러시아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도전도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타지 생활이 힘들긴 하지만 모두 경험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땐 멋모르고 방황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있고 좋아도 참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많이 단단해 진 것 같다.) 단단해질 수 밖에 없다. 힘든 일로 인해서 단단해지지 않고 멈춰 있거나 무너졌다면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지 못했을 거다(웃음). 전처럼 어디로 도망쳐 나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 마음에 '다 때려 칠래' 이러면서 포기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 스물 아홉이고, 내년이면 서른이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나이다. 아…… 이걸 어렸을 때도 알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더 큰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사진=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주요 기사'중국→태국' 손대호, BEC테로로 이적잘츠부르크, "국제적 경쟁 끝에 황희찬 영입"레알, 크루스아술 4-0 대파…클럽월드컵 결승행[아시안컵 프리뷰] '사커루' 호주, 위협적인 안방의 강자[人사이드] 최용수의 2014년, 텐백 "YES" 새가슴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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