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VIEW] 유가 급락, 非산유국은 좋을 줄만 알았더니.. 逆 오일쇼크

도쿄/차학봉 특파원 2014. 12.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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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하락으로 촉발된 위기가 산유국(産油國)을 넘어 원유를 수입하는 신흥국에까지 충격을 미치는 '역(逆)오일쇼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가가 상승해 세계경제를 강타했던 과거 오일쇼크와 달리, 유가 하락이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터키 리라화는 연일 가치가 폭락하며 16일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도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 통화 가치도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태국은 석유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폭락세를 보였다. 터키와 인도네시아 등은 원유 순수입국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장기적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하지만 유가 하락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현실화되기 전에, 금융시장을 통해 재정과 외환 여건이 취약한 신흥국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역(逆)오일쇼크가 나타나는 이유는 '위험 자산 회피, 안전 자산 선호' 현상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간 이머징마켓에 투자하는 ETF(상장지수펀드)에서는 올 1월 이후 최대 규모인 25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이처럼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하면서 '주가, 국채, 통화'가 모두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여파로 미국의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가 러시아 국채·회사채에 투자한 8억달러가 거의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이 투자자들의 '패닉(공포)'을 부추겨 자금 이탈을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과 '강한 달러' 현상이 신흥국에서의 자금 이탈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1990년대 후반에도 미국 금리 인상과 강한 달러가 신흥국 자금 유출로 이어져 아시아 외환 위기에 영향을 줬다"면서 "현재 상황이 당시와 유사점이 있다"고 했다. 세계은행은 미국이 장기 금리를 1%포인트 인상하면 신흥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반면 미국과 독일의 국채, 일본 엔화 등 대표적인 '안전 자산'들은 강세 랠리를 보이고 있다. 일본 엔화의 경우 지난 14일 총선에서 자민당의 압승으로 약세가 예상됐지만 유가 하락 여파로 강세로 전환했다.

위기가 빠르게 전염되는 양상을 보이자 유가 하락을 반기던 선진국에선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신흥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유가 하락으로 원유 수입국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기대가 깨지고 있다. 산유국에서 시작된 자본 이탈이 다른 국가로 전염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번 위기의 진앙인 러시아는 금리 인상에도 통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애플은 루블화 폭락을 이유로 러시아 내 온라인 판매를 중단했고, 러시아 은행들이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을 우려해 예금 인출 한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미국 금융시장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러시아에 자금을 대출한 미국 등 서구 은행 대출액이 2000억달러에 달해 미국과 유럽 금융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가 급락으로 인해 미국 셰일가스 개발 회사의 주가도 폭락하면서 이 회사들의 회사채(2000억달러)도 손실 가능성이 나온다.

그러나 1997~1998년 아시아 위기 당시와 달리 외환 위기에 대한 안전망이 있기 때문에 '최악의 위기'는 피할 수 있다는 반론도 강하다. 당시 통화 위기를 교훈 삼아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중국과 대규모 통화 스와프(위기 시 통화 교환) 협정을 맺고 있다. 동남아 10개 아세안 국가의 외환준비액이 8061억달러(2013년 말 기준)로 외환 위기 당시의 5배에 달한다. 신흥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40%에서 지난해 26%로 낮아졌기 때문에 외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규제가 강해졌기 때문에 투기 자본이 1990년대와 같이 단기 차익을 노리고 외환시장을 뒤흔들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급속한 유가 하락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일시적 혼란에 빠진 상황이지만, 유가가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면 승자와 패자도 뚜렷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한국·중국·일본은 유가 하락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이 늘어나 경제에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들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국제 유가가 30% 하락하면 선진국의 성장률은 0.8%포인트 높아진다. 유가 하락은 세계경제에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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