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여탕보고서'로 주목 받는 마일로 "목욕탕에선 인생의 민낯 보여요"

2014. 12. 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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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 소소한 재미 포착 회당 댓글만 8000개 달려 "재밌는 작품 하는 게 꿈"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길어올리는 생활툰('생활'과 '웹툰'의 합성어)이 웹툰의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연애('윌유메리미'), 회사생활('가우스전자'), 싱글 라이프('아랫집 시누이') 등 웬만한 소재는 다 나왔다. 이런 과포화 상태에서 기발한 소재로 틈새시장을 노린 생활툰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금남(禁男)의 공간인 여탕이 주무대인 '여탕보고서'다. 목욕탕이란 특수한 공간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의 공감을 얻는다. 지난달 초 네이버에 정식 연재된 후 요일별 웹툰 2위로 올라섰고, 회당 댓글이 8000개 넘게 달린다. 목욕탕으로 '대동단결'을 이끈 마력의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최근 서울 홍대 인근 한 카페에서 '여탕보고서'를 쓴 작가 마일로(24)를 만났다. 펄펄 끓는 온탕에서 "시원하다"고 외치는 아줌마를 예상했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지난 8월 대학을 갓 졸업한 아가씨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여탕은 여자들만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남성 독자들의 반응도 크더라고요. 어렸을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목욕탕 한 번쯤은 가보잖아요. 남성 독자들은 모르는 공간을 알아가는 재미, 여성은 공감하는 재미가 큰 것 같아요."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 언니와 목욕탕에 간다. "30·40대 주부들은 보통 '달 목욕'(한 달치 요금을 미리 내고 이용하는 것)을 해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목욕을 하는데, 인생의 대부분을 탕 속에서 보내는 거죠. 목욕탕에선 누구든 다 벗잖아요. 정말 솔직한 상태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게 돼요. 가족, 육아, 교육…. 목욕탕에선 다양한 인생의 민낯이 보여요." 이 만화의 재미는 날카로운 관찰력에서 나온다. '접이식 방석'은 위생적이고 간편해서 목욕 마니아들의 필수 아이템이지만 가끔 앞뒤가 구분이 안돼 남감해지곤 한다. 각얼음을 수북하게 채운 목욕탕 커피. 명쾌한 시원함과 진한 달달함을 맛보려 목욕탕에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별미다. 그러나 가끔 목욕탕 아줌마가 커피가 반이나 남았는데도 커피통을 수거해 화가 나기도 한다. 작가는 이처럼 목욕탕에서만 발견되는 소소한 풍경을 정확하게 짚어내 웃음을 준다.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오다 자동으로 끊기는 '자폐식 샤워기'에 관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목욕탕에서 흔하게 본 이 버튼 샤워기 때문에 머리를 감거나 샤워하는 중에 짜증난 경험은 한 번쯤 있을 터. 작가는 갑자기 물이 끊겨 더듬으며 버튼을 찾는 모습, 짜증 나서 버튼을 마구 눌러대는 모습을 깨알같이 그려냈고, 독자들은 "내 얘기"라면서 무릎을 쳤다.

"때밀이 편 때는 부모님이 때밀이를 하는 독자가 만화 덕분에 엄마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해서 뿌듯했어요. 부항 편 때는 한의사 독자가 무자격자가 목욕탕에서 부항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항의해서 새로 배웠죠." 남성 독자들은 이 만화를 통해 여탕을 배운다. 여탕에선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하려면 동전을 넣어야하고, 여탕 때밀이들은 주로 검은색 속옷을 입었다는 사실에 이들은 놀란다. 요즘엔 남성 독자들로부터 여탕 말고 남탕도 그려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 "초기 기획은 30회였는데 이젠 50회까지도 생각 중이에요. 여탕과 남탕의 차이는 매우 흥미롭지만 제가 남탕에 가본 적은 없으니 그릴 수 없죠." 여탕이 배경인 만큼 등장인물이 모두 나체인데 귀엽게 느껴지는 점은 신기하다. 그는"원래는 전부 살색을 칠해봤고, 모자이크도 해봤는데 모두 야하게 보이더라. 몸의 형태만 남기는 식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동안 만화에서 여성의 몸은 섹시함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제 만화에선 알몸은 성적인 의미를 벗어나 있어요. 여성의 신체를 자유롭게 해석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죠." 중학교 시절부터 웹툰을 봐온 그는 지난 8월 부경대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부산에서 강화도로 이사했다.

"생활툰 말고 긴 스토리로 이어가는 장르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사극, 로맨스, SF 등 다양한 작품을 구상 중이에요. 미친 듯이 재밌는 만화를 그릴 거예요." [이선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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