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사라지는 시대, 삶이 망가지는 인간..

박동미기자 입력 2014. 11. 28. 14:41 수정 2014. 11. 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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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종말 /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우린 늘 '못산다'. 점점 더 못살게 되는 것 같다. 이유는 명백하다. 무엇인가를 끝없이 생산하고 누리라는 암묵적 명령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피곤하다. 직장인들은 마음 놓고 푹 자 보는 게 소원이다.

한국인은 조금 더 불행해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8개 국가를 대상으로 영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평균 수면 시간은 꼴찌를 기록했다. 그뿐인가. 2013년에는 OECD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로 꼽혔다. 아, 참으로 '못살고 있다'.

조너선 크레리(예술사·고고학) 컬럼비아대 교수는 우리의 삶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잠'이 사라지는 현실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시대는 이미 '잠의 종말'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고 경고한다.

정보 통신상의 극단적 테크놀로지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제약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다. 잠과 휴식은 불필요한 것이 됐고, 체제의 안정과 영속을 좀먹는 이단적인 것으로까지 치부되는 상황이다.

지은이는 후기자본주의사회의 살풍경과 더욱 심화 된 현대인의 소외 현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데, 예술을 기반으로 인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답게 잠과 꿈, 비전을 다룬 영화나 문학작품에 관한 논평을 통해 책의 시선을 더욱 풍성하게 확장한다.

예를 들면, 영국 화가 조지프 라이트의 1782년 그림 '아크라이트 방적공장 야경'에 대해 "하늘을 비추고 있는 만월의 빛이 가스등 불빛으로 점점이 빛나는 방적 공장 창문들과 공존하는 섬세한 야경 묘사가 불편하다"고 말하고,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 '전망대'(1962)와 앨프리드 히치콕의 '사이코'(1960)를 바탕으로 역사적 시간의 틀이 어떻게 교란되는지 설명한다.

무엇보다 책은 24/7 체제와 잠의 충돌을 논하면서,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나 모바일 기기를 손에 쥐고 메시지와 정보를 확인하는 현대인들의 행동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즉, 사람들은 완전하게 꺼진 상태가 아닌 '수면 모드'에 들어갔던 모바일 기기와 동일하게, 일종의 '절전 대기 상태'에 있다가 문득 잠에서 깨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보통신의 바다로 뛰어든다는 것. 지은이는 "그 무엇도 결코 근본적으로 '꺼지지' 않으며, 실제적인 휴식 상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잠은 끝내 이 24/7 체제에 저항해 그 명맥을 유지할 일말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잠은 그것을 대체하거나 더 나아가 통제하기 위한 모든 과학적 연구와 결과물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소멸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역설적이지만 잠은 권력이 정치적 저항을 가장 덜 받으면서 작용을 미칠 수 있는 주체성의 표상인 동시에 전 지구적 소비사회의 요구를 회피하거나 좌절시키는 상태의 표상이다"라고 정의한다.

책은 얇은 듯하지만 지식의 '밀도'가 매우 높다. 예술, 철학, 역사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기 때문에 애초에 술술 읽는 책은 아니다. 게다가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어색한 '번역 문체'가 가독성을 더욱 떨어뜨린다.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차라리 영어 원서를 찾아 읽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 잠이라는 원초적인 소재를 과학·철학적으로 풀어낸 책의 기획은 훌륭하다. 늘 '불행한' 것 같은 현대인들에게 실질적인 원인을 알려주고, 이 24/7 체제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한 번 쯤 고민하게 한다. 그러나 아쉬운 번역 탓에 좋은 의도가 살짝 바래지는 느낌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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