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과 통화중인데 낯선 여자가 "여보세요?"

채석원ㆍ천선휴 기자 입력 2014. 11. 28. 09:47 수정 2014. 11. 2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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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통신사도 학계 전문가도 정부도 원인 모르는 '휴대폰 혼선'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지만 도·감청 문제와 맞물려 이용자 '불안'통비법 개정안 통과해 '합법 감청' 가능해지면 불안감도 가중할 듯

"응,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27일 오전 7시30분 휴대전화로 남자친구랑 통화하던 J(30ㆍ여)씨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화들짝했다. 저녁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있는지 확인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든 것이다. 자기보다 어린 듯한 여성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잠시 남자친구를 의심할 뻔했다.

네티즌 H씨는 친구와 통화하다 소름이 돋았다. 어떤 여자가 갑자기 "여보세요?"라고 말하며 통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정말 겁나더라"면서 휴대폰 통화 중에도 혼선이 발생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네티즌 R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아예 상대들이 나눈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 "업무적인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자와 남자의 통화가 혼선이 됐네요. (여자와 남자가) 돈 문제를 얘기하는데 신기해서 조금 듣고 있다가 다시 (원래 통화하던 사람에게) 전화했어요. 마치 네 명이 통화하는 것 같았어요."

한국은 이동통신 강국이다. 이미 지난해 휴대폰 가입자 수가 5,000만명을 돌파해 보급률 100%를 넘어섰다. 이처럼 휴대폰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통화 중 혼선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선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도청,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가 이슈화하면서 '혹시 내 전화가 도청되고 있진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이도 있다. 통화 중 "오빠 때문에 너무 힘들어"라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는 한 네티즌은 "혼선 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도청 아닌가"라면서 "'(휴대폰) 도청은 불가능하다'는 말은 어처구니없다"고 주장했다. 의도했든 않았든 간에 누군가 내 통화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들켜서는 안 될 통화 내용이 누군가에게 알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휴대폰 통화 중 혼선이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 취재진이 정부, 이동통신사, 학계에 문의한 결과 접촉한 이 중 누구도 혼선의 원인을 시원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이동통신 주무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에 문의했더니 "우리도 원인을 알 수 없다"면서 이동통신 분야에 정통하다는 SK텔레콤 관계자를 소개해줬다.

그러나 이동통신회사도 현재로선 혼선이 왜 발생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SK텔레콤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통신전문가는 "이동전화는 기술적으로 혼신(신호 혼합)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날로그 이동전화 시절엔 주파수가 맞으면 그렇게 들리는 경우가 있었다"며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혼신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휴대폰과 유선전화 간의 통화에선 혼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기자가 "J씨의 경우엔 휴대폰끼리 통화에서 혼선이 발생했다"고 말하자 이 관계자는 "기술적으론 전혀 불가능하다. 나로서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당황스러워했다. 이 관계자는 "신호가 유선형 교환기를 거치는 경우가 있다"면서 "유선형 교환기에서 혼신이 발생했을 수는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요즘은 유선형 교환기도 대부분 광통신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 또한 현저하게 낮다"고 강조했다.

통화품질 문제를 상담하는 SK텔레콤 직원은 혼선 원인을 사실상 찾기 어렵다고 했다. 이 직원도 혼선 문의는 처음 받는 듯했다. 이 직원은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건가"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 혼선을 겪은 사람의 번호를 알고 있나" 등의 질문을 던지더니 "해당 기지국 쪽에 문의한 후 알려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전화를 걸어온 그는 "기지국 쪽에선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일시적인 현상인 것 같다"면서 "현재로선 혼선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 혼선으로 인한 문의를 접수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KT 입장도 비슷했다. 한 통화품질 상담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혼선 문제로 인한 클레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유선전화의 경우엔 합선 등으로 인해 이런 증상이 발생할 수 있지만 휴대폰의 경우는 기지국이 신호를 쏴서 휴대폰과 연결하는 구조다. 그래서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특정 이용자가 혼선을 겪었다면 휴대폰을 사용한 장소와 가까운 기지국에 문제가 있는지, 그래서 고객의 휴대폰에 신호 값을 정확하게 쏘지 못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KT 직원은 "어떤 원인 때문에 혼선이 발생했는지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게 KT의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이 직원은 "원인을 알려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원인을 모르긴 학계도 마찬가지였다. 무선통신망 설계에까지 관여한 한 대학 교수는 "휴대폰 혼선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면서 "주파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무를 담당하는 이동통신사에 문의하라고 했다. 이동통신 분야의 권위자인 또 다른 교수는 "유선과는 달리 이동통신은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기자가 "이 문제에 대해 잘 알 만한 교수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그런 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혼선이 발생하는 게 사실이라면 휴대폰 실시간 도ㆍ감청도 가능하지 않을까? 수사기관이 수사 목적으로 통신 서비스의 통화 내용을 합법적으로 취득하는 게 감청이고, 감청을 불법적으로 하는 게 도청이다. 휴대폰 이용자로선 통화 중 혼선이 발생하는 만큼 통화 중 도ㆍ감청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드는 게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술적으론 휴대폰 도ㆍ감청은 가능하다. 다만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해야 한다.

이런 점은 정부도 인정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전 장관은 휴대전화 도ㆍ감청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자 2005년 직접 기자간담회를 갖고 감청에 대해 "통신망은 감청이 불가능하게 돼 있지만, 전국 200여개의 이동전화교환기에 감청 장비를 추가로 설치하면 감청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지국 장비 개발업체도 감청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와이드밴드 코드분할 다중접속기술(WCDMA) 같은 기술도 감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진 전 장관은 도청에 대해서는 "기지국에 준하는 설비를 갖춰야 하므로 국가기관 수준의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일상적 수준에서의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 전 장관은 국가안보나 테러방지 등의 공익적 목적을 위해 합법적으로 감청이 허용된다면 감청 기능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진 전 장관의 말을 종합하면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막대한 돈을 들여 장비를 마련하지 않으면 감청이든 도청이든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동통신사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2014년 상반기 통신제한조치(감청), 통신 사실 확인자료(접속 일시ㆍ장소 등의 로그 기록) 및 통신자료(가입자 정보) 제공 현황'을 보면 수사기관들이 휴대폰을 실시간 감청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앞서 기자와 통화한 SK텔레콤 통신전문가는 "과거 아날로그 쪽 장비를 담당한 적이 있는데 그 시절엔 휴대폰 도청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면서 "하지만 그땐 아날로그 장비의 특수성 때문에 도청이 가능했지 현재는 휴대폰을 엿듣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홍인기 경희대 전자ㆍ전파공학과 교수 역시 "휴대폰 도ㆍ감청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단히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법 감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이 상정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24일 전기통신사업자들이 감청장비 구비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상정됐다. 서 의원은 현재 휴대폰 감청은 특정 회선을 분리하는 협조 설비가 없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전기통신사업자들이 수사에 필요한 감청장비 등을 의무적으로 구비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위반 땐 20억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1년에 1회 내야 한다. 단 장비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이동통신사는 감청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수사기관의 실시간 감청이 가능해지고, 휴대폰 이용자들의 도ㆍ감청 우려 또한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 통화 중 혼선의 원인을 알고 있거나 휴대폰 도ㆍ감청 문제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는 전문가는 02-6388-8047로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후속 취재를 약속드립니다.)

채석원ㆍ천선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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