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맞는 게 국방의 의무인가

김은지 기자 2014. 11. 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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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하루 세 번, 아침·점심 2알 저녁 10알을 먹는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탓에 저녁 약 개수가 훨씬 많다. 그래도 잠에 깊이 빠져들지 못한다. 꿈에서 안 아무개씨(20)는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 상대방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정작 그들은 아니다. 결국 또 깬다.

눈을 뜬 곳은 밤 12시면 강제 소등이 되는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5인 병실이다. 같은 공간에는 제각각의 정신질환으로 입원해 있는 70대 노인부터 10대 학생까지 다양하다. 안씨는 9월30일부터 입원 중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진단받았다. 우울·불안·초조·분노·불면 따위 증상을 보인다고 진단서에 쓰여 있다. 그는 '해경판 군대 폭력'의 희생자다.

기왕 치러야 하는 국방의 의무라면 빨리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중어중문학과에 다니며 대학 생활 1년을 마친 지난해, 시간 공백 없이 갈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해양경찰청 의무경찰이 눈에 띄었다. 낯선 환경과 손에 익지 않은 업무가 시작되었다. 선임의 이유 모를 폭행과 가혹행위도 함께였다. 때리는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왜 끌려왔는지 아느냐고 선임이 물으면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유는 맞으면서 눈치 채야 했다. 욕을 한 적이 없지만 욕을 했다고 했고, 일을 잘 못했다고 했다. 일단 죄송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의무경찰로 입대하고 11월 초, 한 함정을 탔을 때였다. 박 아무개 선임이 새벽 4~5시쯤 깨워서 취사장 청소를 제대로 안 해놓았다고 때렸다. 11월 중순에는 보고 없이 편의점에 갔다는 이유로 맞았다. 선임 박씨는 다른 선·후임들에게 안씨를 '샌드백'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군 생활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에게도 구타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몸이 반응했다. 지난해 12월21일 외출을 나간 날 정형외과를 찾았다. 진단 결과 '첫 번째 늑골 이외 단일 갈비뼈의 골절' 등이 나왔다. 지금도 진통이 간혹 있다. 그때마다 진통제를 먹는다.

올해 2월 초 뭍으로 나와 강원도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도, 때리는 사람이 달라졌을 뿐 맞는 건 똑같았다. 이유는 하나같이 '잘 못한다'였다. 가지고 오라는 파일을 제대로 못 가져왔다면서 유 아무개 선임이 손으로 뺨을 때리고 청소 도구로 발바닥을 때렸다. 그의 발에 목이 밟힌 적도 있다. 일상화된 폭력에 익숙해지다 보니 특이하게 맞거나 괴롭힘을 당했던 때만 선명하다.

안씨를 가장 괴롭히는 기억은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또 다른 함정을 탔던 때다. 아침에 씻지 못하게 해서 몰래 씻었던 게 들켰다. 내무반장인 이 아무개 선임에게 얼굴을 서른 대쯤 맞았다. 후임 관리도 문제 삼았다. 안씨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분위기가 싫었다. 자기만이라도 후임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태도를 선임이 문제 삼으며 '이렇게 후임을 교육시키는 것'이라며 안씨에게 걸레를 물라고 했다. 함정의 기름을 닦는 웨이스라는 천이었다. 그날 '교육을 받은' 안씨는 후임에게 머리 박기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이 아무개 내무반장이 후임 장 아무개씨를 시켜 칼을 들고 오게 했다. 상에 올려둔 무 써는 칼을 보며 '네가 찌를래, 내가 찌를까'라고 말하며 안씨에게 10초를 줬다. 순간 그는 죽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손을 뻗어 칼을 쥐려고 하자, 손을 쳐버렸다.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머리가 자주 아팠지만 약을 먹고 싶지 않았다.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선임은 또 때렸다. 약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보다 못한 후임 장 아무개씨가 간부에게 보고를 했다. 자초지종을 캐묻는 간부에게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가 커지는 것도 싫었고 버틸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6개월간 승진·호봉 승급 누락'이 징계?

결국 쓰러졌다. 8월28일 속초의료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안씨는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당일 진료기록부에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어서 왔다'고 쓰여 있다. 이후 휴가를 나와서 혼자 9월2일 속초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갔다. 진료기록부를 보면, 당시 안씨는 자신을 때리고 스트레스를 주던 상관에 대해 언급했다. 계속 참기만 하니 지쳐가고, 머리가 아프며,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밤잠도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추후 자해·자살의 위험에 대해 강조했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24시간 관찰을 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권유했다'고 기록했다. 휴가 후 복귀해 9월15일 다시 소대장과 함께 속초의료원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관리 책임자들이 뒤늦게 나섰지만 안씨의 상태는 이미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9월26일 내원한 서울경찰병원은 이렇게 진료 기록을 남겼다. '입대 전 정신과적인 문제가 의심되지 않는 환자로, 입대 이후 현저한 가혹행위 이후 동반된 감정적 고립, 충동적 성향 등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양상. 최하 1개월 이상의 정신과적인 관리 요구되며 추후 재진단 요구됨.' 입대 전에 멀쩡했던 안씨가 선임들의 괴롭힘으로 신경·정신 질환을 얻었다는 뜻이었다. 이후부터 그는 청원휴가를 받아 계속 병원에 입원 중이다.

안씨의 가족은 이 같은 사실을 9월 휴가 기간에야 알게 되었다. 10월에 뒤늦게 실시된 해경 자체 감찰조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의경 5명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다. 사법 처리가 아닌 자체 징계에 불과했다. 관리 책임을 져야 할 경찰관 18명 중 3명이 '6개월간 승진·호봉 승급 누락'이라는 가벼운 징계를 받았고, 14명은 근무평점 감점이 감찰기록부에 남았다. 1명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안씨의 부모는 11월15일 춘천지방검찰청 속초지청에 아들을 대신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의 어머니 오 아무개씨는 '때린 애들도 누군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좋게 좋게 넘어갈 생각도 했는데, 아들이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사고소를 결심했다. 제대로 가해자를 처벌하고 지휘·관리관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해야 내 아들 같은 피해자도, 또 다른 가해자도 나오지 않을 거다. 아들은 다행히 극단적 상황까지 가지 않은 채 아슬아슬하게 발견되었지만, 아들과 같은 경우가 다른 데서 없다고 누가 장담하나'라고 말했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발생한 해양경찰청 의무경찰 사건·사고 111건 중 76건(68%)이 구타·가혹행위였다. 안씨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업무 미숙·소홀(25건), 군기 확립(21건), 행동이 느리고 답답하다(6건) 따위가 구타·가혹행위의 이유였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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