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男과 성관계한 여중생, 성적주체인가 보호대상인가

박소연 기자 2014. 11. 2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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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19세 청소년 '성적 자기결정권' 도마에..사회적 논의 필요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13세∼19세 청소년 '성적 자기결정권' 도마에…사회적 논의 필요]

최근 대법원이 15세 여중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40대 남성에 대해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재판부는 문자메시지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27세 연상인 피고인을 사랑했으며 둘 사이의 성관계가 합의하에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만으로 처벌해야 마땅하다는 일부 국민정서와 배치돼 13세 이상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중생도 사랑할 수 있다 vs 정상적인 감정 아니다

이번 판결에서 주된 쟁점은 여중생 피해자가 40대 피고인에게 보낸 접견서신과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내용에 드러난 애정표현에 대한 판단이었다.

1·2심은 "편지에 적힌 내용만 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지 않은지 의심이 간다"면서도 △임신한 상태에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웠고 △피고인이 화를 냈기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나 드라마 대사, 노래 가사 등을 참고해 마음에 없는 내용을 적었다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강간 피해를 당하면서 동시에 연민·애정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어리고 미숙했던 피해자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보지 못한 범죄 피해를 당해 피고인의 아이를 임신까지 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감정이 정상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편지와 카카오톡 메시지의 내용은 피해자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는 피고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판시했다.

1·2심은 피해자가 당시 15세라 판단능력이 미숙했고 몸이 아파 저항이 어려웠으며 가정상황이 어려웠다는 점 등을 고려했지만 대법원은 피해자가 주체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봤다. 피해자의 진술 외에 피고인이 만남을 강요했다는 근거가 없고, 이 진술에 따르더라도 협박이나 폭행은 없었다는 것도 무죄의 이유가 됐다.

◇왜 13세? 초등학생은 안 되고 중학생은 되는 이유?

대법원의 판결은 피해자가 13세 이상이라 가능했다. 현행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했을 경우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된다(의제강간죄). 반면 13세 이상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어도 강요·폭력이 있었거나 대가가 오갔음이 증명되지 않으면 강간죄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

의제강간죄 기준연령을 16세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성적 판단능력이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악의를 가진 성인으로부터 아동을 폭넓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 해바라기 여성아동센터 상담팀장은 "13세 이상도 아직 성적 주체성에 대한 판단이 미숙하고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이용하는지 예뻐해 주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며 "이를테면 청소년기에 학교 선생님을 존경하는지 사랑하는지 헷갈리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성인은 이를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심리적으로 취약해 동의하지 않은 스킨십이 발생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동참한 것 같은 마음에 적극 신고하기 어렵고, 이를 계기로 상황에 말려들기 쉽다"고 설명했다.

'아동성폭력 및 아동학대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관계자는 "요즘 중학생들이 발육상태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생각이 성숙한 건 아니다"라며 "오히려 13세보다 성적으로 위험한 연령대가 중학생이다. 16세로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 개정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2012년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연령을 16세로 높이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는 △사회환경 변화에 따라 청소년의 성의식 수준이 발달했고 △15세 청소년들끼리 서로 동의하에 키스를 해도 무조건 처벌해야 하는 등 실무적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 몇세부터? 사회적 논의 필요

아동의 성적 경험과 발달 정도, 판단능력은 개인·사회마다 다르기에 절대적인 의제연령 기준은 없다. 전문가들은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적절히 보호할 수 있는 기준연령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부지법의 한 국선변호사는 "정상적인 이성교제를 하는 청소년들, 심지어 초등학생 일부도 성관계를 갖는데 의제강간 연령을 높이면 초등학생이 죄인이 되는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며 "극소수지만 14세 청소년이 가출팸에서 만나 교제하던 오빠들을 고소하는 등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연령을 높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3세 미만은 생물학적으로도 대개 2차성징이 나타나기 전이라 무조건적 처벌이 설득력을 갖는 반면 중학생은 일부 자발적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음란물이나 술, 담배의 규제 기준이 19세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지만 고등학생에게 술 팔아도 처벌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형식적인 상한선을 높이는 것보다 나이를 최소한으로 규정하되 엄격하게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동의 성적 자율권 보장에 앞서 사회적·심리적 돌봄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해바라기 여성아동센터 상담팀장은 "현재 많은 초중등생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건강한 이성관계나 성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임되다 성인의 꾐을 애정으로 오인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며 "건전한 성의식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보호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된 후에야 제대로 아동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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