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수사 딜레마.. 불가피한데 법규는 없어

입력 2014. 11. 28. 03:03 수정 2014. 11.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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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女 투신' 경찰 함정단속 논란

[동아일보]

#25일 오후 10시경 경남 통영시 광도면의 한 모텔

"아까 전화 드린 ○○○입니다. 601호로 오세요." 40여 분 뒤 벨이 울렸다. A 씨(24·여)가 들어오자 기다리던 B 형사가 15만 원을 건넸다. A 씨는 말없이 곧장 샤워실로 들어갔고, B 형사는 눈치를 살피며 휴대전화를 꺼내 '도착'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남성 3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들은 경남지방경찰청 풍속단속팀과 통영경찰서 생활질서계 소속팀 형사로 구성된 특별단속반. "성매매하러 오신 거죠?"라는 질문에 A 씨는 "옷 입고 나갈 테니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라고 답했다. 단속반은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문고리를 잡은 채 대기했다. 당시 현장에는 여경이 동행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5분 뒤 조용하던 방 안에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단속반이 급히 뛰어갔지만 한 발 늦었다. 약 12m 높이(6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과다 출혈 등으로 26일 오전 3시 37분 숨졌다.

경찰의 '함정 단속'으로 성매매 여성이 사망한 사건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성매매 용의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도 여경을 대동하지 않은 데다 탈출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일부 누리꾼은 "경찰이 자신들의 실적을 올리려다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무리한 함정 단속'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청 생활안전국 관계자는 "범행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유도하는 건 불법이지만 이번 사건에선 숨진 여성이 처음부터 성을 팔려는 의사가 있었다"면서 "이러한 '기회제공형' 수사는 '범의(犯意)유발형' 수사와 달리 법원에서도 합법적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기회제공형 수사란 범죄를 저지를 의사를 이미 가진 사람에게 범행 기회를 준 뒤 예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면 검거하는 것을 말한다. 성매매 함정수사는 주로 여기에 포함될 때가 많다. 이는 수사기관이 범행을 저지르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해 검거하는 범의유발형 수사와 구분된다.

경찰은 특히 마약 범죄 수사처럼 개인 간에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행을 적발하기 위해선 기회제공형 함정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마약 공급처를 캐기 위해서는 실제 마약을 구입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마약 투약자를 검거하더라도 공급자를 모르는 경우가 많거나 알고도 입을 다물 때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마약 전담 수사경찰관은 "블로그 등 인터넷에 '짝대기 하나 사실 분' '커피 한잔 사실 분'이란 마약 관련 은어가 게재되면 연락을 취해 접촉을 시도하는 게 마약 수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마약 공급책들은 거래를 약속하고도 접촉 전까지 장소를 여러 번 바꾸거나 차량을 이용해 아예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사에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함정수사까지 허용되지 않으면 마약사범 단속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함정수사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더라도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구체적 행동 지침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함정수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법조항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이와 관련한 법원 판례들이 기준이 돼 왔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최근 온라인상에서도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매매가 많아 이런 범죄를 캐기 위해서는 함정수사의 필요성이 높은 건 사실"이라며 "다만, 함정수사의 개념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법으로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성명 smkang@donga.com·강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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