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예비군이 확 달라졌다..훈련장에 무슨 일이

김정현 주간조선기자 2014. 11. 2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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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육군 ○○사단의 '강동·송파 예비군 훈련장'. 정문 풍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눌러쓴 군모 사이로 삐져나온 긴머리를 하고 꽉 끼는 군복 상의를 입은 예비군들로 붐볐다. 그러나 이들과 섞여 6시간짜리 '향토방위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어슬렁어슬렁 정문을 통과하자 훈련장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기존의 향방예비군 훈련 입소는 군기가 바짝 든 현역 군인들이 껄렁껄렁한 예비군들을 통솔해 줄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뒤 동대별 개인 화기 및 장비를 지급한다. 이번 훈련 입소 과정에서는 이 과정이 모두 생략됐다. 개인별 소총도 지급하지 않았고 줄을 맞춰 대기시키지도 않았다. 대신 오는 순서대로 개인 신분을 확인한 뒤 한 10명씩 조를 편성해 분대를 구성한 후 즉시 훈련을 시작했다. 덕분에 훈련 시작 시간을 1시간 정도 앞당길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예비군 자체 통솔 체제였다. 10명으로 구성된 분대원 중 가장 빠른 군번의 예비군이 분대장으로 임명됐다. 그 후 모든 훈련 과정을 이 분대장 예비군이 통솔했다.

각 조의 분대장에게는 시험 항목이 적힌 종이 한 장이 주어졌다. 나도 얼떨결에 분대장 직위를 부여받고 건네받은 종이를 확인했다. 총 6개 항목으로 나뉜 시험과목 각 하단에는 합격과 불합격 항목이 별도로 있었다. '예비군 훈련 중에 이런 것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대원 중 앞서 훈련을 경험한 대원이 있어 물어보니 "모든 훈련 과목을 통과해야 조기 퇴소가 가능하고 한 종목이라도 탈락하면 합격할 때까지 재시험을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탈락할 경우 늦게 퇴소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간조선 2320호 커버스토리에서 소개한 미군과 카투사의 EIB(우수보병휘장) 시험 시스템과 흡사한 형태였다.

나이 어린 조교의 통솔을 따르지 않는 예비군의 특성을 감안해 그 안에서 통솔자를 뽑아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하게끔 훈련 시스템이 바뀐 것이다. 또한 훈련 시간만 채우면 되던 방식에서 합격·불합격에 따른 인센티브(조기퇴소)를 도입한 것이다. 그 결과 훈련 분위기가 전과는 딴판으로 달라졌다.

불과 몇 달 전에 참가했던 예비군 훈련에서는 그 누구도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조교, 예비군 할 것 없이 모두가 '좀비'처럼 늘어져 있었다. 정신교육 시간에는 잠자는 인원이 대다수였고 예비군들은 힘 빠진 작은 목소리로 훈련에 임했다. 집합시간조차 지키지 않아 훈련이 지연되기 일쑤였다.

새롭게 바뀐 훈련 방식은 예비군들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잠자느라 조용하던 정신교육 시간은 청소년 서바이벌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을 연상케 할 만큼 시끌벅적했다. 이론 교육 후 시험을 봐 교육 내용의 80% 이상을 맞히지 못하면 불합격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집합시간을 지키지 않던 예비군들은 오히려 집합시간보다 일찍 모였다. 일찍 모여야 다음 훈련과정이 더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본 한 예비군은 "이야~ 이렇게 하니까 진짜 잘 모이는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냈다. 형식적으로 임하던 '페인트볼 시가지 전투'는 '페인트볼 시가지 전투 깃발 뺏기' 훈련으로 바뀌었다. 여기서도 깃발을 뺏는 팀은 합격, 뺏지 못한 팀은 불합격을 받았다. 시가지 전투에서 지면 이길 때까지 반복해서 훈련에 임해야 했다. 때문에 예비군들은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했다. 훈련을 지휘하던 동대장이 "긴장감을 유발하는 훈련 과정 탓에 부상자가 속출한다"며 "의욕을 앞세우지 말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훈련에 임하라"는 지시를 할 정도였다.

내가 속한 15조는 첫 시가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분대원 모두가 똘똘 뭉쳤기에 가능했다. 어떻게 해야 깃발을 먼저 탈취할 수 있을지 분대원들과 토론을 하고 작전도 짰다. 훈련과정에서 서로 말을 트니 자연스럽게 점심식사도 같이하게 됐다. 통상적인 6시간짜리 향방예비군 훈련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다. 시스템이 바뀌자 비실비실하던 예비군이 정규군 못지않게 변한 것이다. 평소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한 탓일까. 오후 3시 조기퇴소를 했음에도 온몸이 뻐근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했다. 훈련을 마친 뒤 도대체 어떻게 예비군 훈련이 이토록 변모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군 당국에 연락했다.

육군 ○○사단 정훈공보 참모의 설명에 따르면 육군본부의 방침으로 예비군훈련 내실화 및 성과위주 훈련을 위한 훈련체계 개선 노력이 몇 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고 한다. 그는 "모든 사단에서 현재와 같이 바뀐 형태의 훈련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사단마다 다르게 시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경험했던 훈련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지난 9월 5일이라고 한다. '예비군훈련대식 측정식 합격제'가 이 훈련 시스템의 명칭이다. 정훈공보참모가 주간조선에 보낸 자료에 따르면 훈련 시스템이 바뀜에 따라 지역 예비군을 훈련시키는 예비군 훈련대도 올해 5만2000명에서 내년에는 8만7000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향방예비군 훈련장 분위기를 탈바꿈시킨 새로운 훈련 시스템의 주요 내용은 내가 경험했다시피 측정식 합격제, 조기 퇴소제 등이다. 대기시간을 훈련시간으로 활용하여 실제 훈련시간을 확보하는 방안도 도입됐다.

특히 예비군 내에서 분대장을 뽑고 자발적인 통솔을 유도한 방안은 새 시스템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는 게 군의 자체 평가다. 새 훈련방식을 도입한 육군 제○○보병사단은 새로운 훈련 시스템 시험 적용 기간인 2014년 후반기 훈련 종료 후 성과분석을 통해 훈련 시스템을 보완할 예정이다. 예비군들이 자체적으로 훈련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간판 설치 등 훈련장 정비도 진행한다. 공정한 평가 시스템 구축을 위한 교관 및 조교 집체교육(한꺼번에 모아 실시하는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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