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중국에서 여자 아나운서 되는 법..한국보다 험난한 길?

임상범 기자 2014. 11. 27. 15:4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西施)의 고향 항저우(杭州)는 오늘날까지도 미녀의 도시로 꼽히는 곳입니다. 항저우의 상징인 서호 주변 카페 촌에서는 연예인 급 미모를 뽐내는 아리따운 여대생들과 직장여성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이 항저우에 수 만 명의 미녀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방송전문학교인 항저우전매대학(杭州傳媒學院)이 개최한 '문화창의인재 동계채용박람회'라는 행사였습니다. 행사명이 좀 생소한데 한마디로 아나운서 등 방송인력 현지 채용 박람회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홍콩에 본사를 둔 봉황위성TV을 비롯해 4백 곳이 넘는 방송국이 부스를 마련하고 즉석에서 테스트를 해가며 쓸 만한 인재들을 놓고 입도선매 경쟁에 나섰습니다. 수 만 명의 지원자 가운데 2천6백 명 정도가 각 방송국으로부터 임시 채용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저 첫 걸음일 뿐입니다. 수천 만 명, 수억 명의 시청자 앞에 서는 정식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앞으로 거쳐야 할 관문이 한 두 개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아나운서를 파음원(播音員)이라고 부릅니다. 아나운서들 가운데 특히 텔레비전 방송에서 뉴스를 전하는 우리식의 앵커는 주파(主播)라고 부릅니다. 전파에 소리를 실어 대중에게 전파하는 직업이란 뜻입니다. 워낙 큰 나라라서 그런지 중국에는 방송국도,아나운서도 참 많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말고도 중앙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궁벽한 지방 도시에도 빠짐없이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사회주의 중국이 선전 공작을 얼마나 중시하는 지 이해하신다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방송 뉴스가 공산당과 정부가 정해서 내려 보낸 지침과 가이드라인에 맞춘 관방 뉴스 일색이긴 하지만 조금씩 사회부조리 고발 뉴스나 다양한 시각을 담은 심층 뉴스가 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중국 TV 뉴스 보는 재미가 생겼다는 게 중국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여기에 더해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앵커들이 보여주는 완벽에 가까운 방송 진행 능력을 보는 것도 즐거운 관전 포인트가 됐습니다. 실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그 어려운 성어와 문어체 범벅인 딱딱한 원고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빛의 속도로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TV 여성 앵커들의 미모와 스타일도 날로 세련되어 가고 있습니다. 휴가 때마다 서울 압구정이나 명동에 들러 원-포인트 쁘띠 성형을 받고 가는 게 앵커들 사이에서 유행이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중국 미인들은 항저우 서호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지만 요즘엔 서울 압구정동 카페 골목이나 가로수길에 다 몰려 있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습니다.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당당하게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 앵커 자리는 당연히 야망에 불타는 여대생들의 로망입니다. 우리나라도 수천 대 일의 경쟁이 기본이지만 중국에도 수십 만 명에 달하는 아나운서 지망생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전매대학 이라고 방송인력양성 특화 학교 출신들이 주류였지만 아나운서에 대한 인기가 올라가면서 요즘엔 베이징대 칭화대 등 최고 명문대 출신 여대생들도 앞다퉈 방송가로 몰리고 있습니다. 보통화 능력시험 A플러스 자격증은 기본 소지품이고 재학 중에 이런저런 대회 입상 등의 스펙 취득도 필수적입니다. 카메라 테스트에 대비한 다양한 자기 관리는 물론입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단 번에 CCTV 등 전국구 중앙방송국 입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보니 각급 지방 방송국에서 경력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겁니다.

그곳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뒤 한 단계씩 올라가 대망의 중앙 무대까지 오르려면 짧게는 5년,길게는 10년이 넘는 수련 기간이 필요합니다. 수련 기간 동안 하루엔 몇 시간씩 자지도 못하고 발음 교정과 패션 익히기, 시사와 당 정책 학습 등에 시간을 할애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보니 꿈에 그리던 중앙에 진출하더라도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30대 중반을 맞는 게 다반사라고 합니다. 실제로 CCTV 등 메이저 방송국에는 혼기를 놓쳐 화려한 싱글로 남아있는 '에이스' 아나운서들이 상당수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 CCTV에서 간혹 수습 아나운서들을 뽑아 시청자들이 잘 안보는 새벽 시간대에 실습 방송을 시키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지만 이들을 곧바로 정식 아나운서로 채용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이런 가파른 사다리 오르기를 통해 살아남은 소수가 모인 CCTV 등 메이저급 방송국의 아나운서 진은 그야말로 하나같이 방송의 달인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송 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관시'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공개채용 방식이 아니라 이런저런 줄을 통해 내부 심사를 거쳐 입사가 밀실에서 음성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눈에 확실히 들어야 등용문을 통과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렇다보니 지방 방송국에서 근무할 때 인연을 맺고 사귀어 두었던 지방 실력자가 나중에 중앙으로 영전하면, 그 힘을 배경삼아 중앙방송국으로 진출하는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소속 방송국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 방송국내 실력자들의 술 시중이나 각종 접대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앓이 할 때가 부지기수였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을 좇는 부나방 같은 여성 아나운서들과 권력자들 간의 은밀한 거래가 심심치 않게 이뤄지곤 했습니다. 그 결과가 요즘 반부패 사정 국면을 맞아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는 '권-언 유착'형 성추문들입니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국회의원이 아나운서 지망생을 옆에 앉힌 채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망언을 쏟아내 국회에서 퇴출됐던 일이 떠오릅니다. 중국식 황색 '권-언 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고 보다 상식적이고 건강한 방식의 방송인력 수혈이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채용방식부터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국에서 높아지고 있습니다.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