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적자가 두렵다면 지하철을 묻어라"

김기중 2014. 11. 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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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지하철 재검토…치열한 찬반 논쟁

광주광역시에 지하철이 개통한 지 올해로 10년째이다.

그런데 1년에 한 번도 지하철을 타지 않는 시민도 많다. 지하철 1호선 수송분담률은 2.7%에 불과하다. 시내버스의 13분의 1이다. 지난 10년 동안 광주광역시가 보전해 준 지하철 적자만 3천백억 원에 이른다. 개통 첫해 165억 원에서 지난해엔 390억 원으로 늘었다. 시민 한 명이 지하철 한 번 타는데 2천 원씩 보전해주는 셈이다. 적자가 늘고 있는 1호선의 시행 착오를 2호선에서도 되풀이하지 않을까? 2호선 재검토 논의가 시작됐고, 2호선 찬반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논란은 광주의 애매한 인구 특성이 반영됐다. 인구 110만 명의 창원은 지난달 도시철도 건설을 백지화했다. 인구 30만 명 안팎의 목포나 순천에 지하철을 건설하자는 사람은 없다. 재정 적자가 만만치 않지만, 감히 서울에 지하철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인구 250만 명의 대구는 2호선까지, 350만 명의 부산은 4호선이 운행 중이다. 인구 148만 명의 광주는 2호선 건설의 갈림길에 서 있다.

■ 지하철 수요 예측 '고무줄'

지난 6월,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인수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는 도시철도 2호선의 투자 대비 효율을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광주시는 이후 도시철도 2호선 재검토 전담팀을 만들었다. 재검토 팀은 지하철 2호선을 만들면 얼마나 많은 시민이 이용할지 검증에 착수했다.

재검토 결과, 지난해 12월 정부 승인을 받은 2호선 계획의 수요 예측이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2025년에 하루 지하철 이용자를 32만 명으로 예측했는데, 재검토 팀은 24만 명에서 27만 명으로 분석했다. 15%에서 23%가 감소한 수치다. 재검토 팀은 광주시민의 평균 보행 속도를 기존 1.38m/s에서 1.1m/s로 더 늦게 걷는 것으로 줄였다. 그리고 시내버스 소요 시간이 승용차보다 1.2배 많이 걸린다에서 1.4배로 바꿔서 수요를 예측했다. 이것은 광주의 교통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요 예측이 줄었으니 예상 적자는 늘 수밖에 없다. 당초 기본계획에서 2025년 한 해 5백억 원대이던 연간 지하철 적자는 9백억 원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요 예측대로 지하철을 타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대구 지하철 1호선은 수요 예측 대비 32%가 타고 있고, 대전 1호선은 예측 대비 42%가 타고 있다. 수요 예측의 절반 정도가 탄다고 가정하면 연간 지하철 적자가 천억 원을 넘는다는 전망까지 덧붙여졌다. 수요 예측은 누가 어떤 의도로 하느냐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교통DB의 정해진 자료를 입력하기 때문에 수요 예측은 정확하다고 한다. 하지만, '변수'를 입력할 때 어떤 의도로 입력하느냐에 따라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사진 2. 도시철도 2호선에 투입될 예정인 두 량짜리 전철>

■ 지하철 한다 안 한다 '오락가락'

새 시장이 취임한 뒤 광주광역시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광주시는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기본계획 변경안'을 정부에서 승인받았다. 이때 2호선 계획안을 심의한 도시교통 정책실무 위원회는 국토해양부와 대통령실, 국무총리실, 국토연구원, 대학, 민간회사 등의 위원 25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11명은 심의결과를 제출하지 않았다. 심의 결과를 제출한 14명 모두는 2호선을 건설해도 좋다고 했다. 이 가운데 3명이 10개의 의견을 냈다.

심의 의견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감안해 철저한 검증과 원활한 재원조달 계획이 필요하다." 등이었다.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광주시는 "시비 조달액은 연평균 473억 원으로 (중략,사진 참조) 재원 조달은 적정한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조치했다. 2호선을 지을 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전혀 다른 재정분석 자료가 나왔다. 광주시가 투자가능재원이 연간 3천억 원 정도인데 2호선을 건설하면 연평균 8백억 원 정도를 쓰게 돼 가용 재원이 줄게 된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복지와 환경 등에 써야 할 돈은 많은데 2호선을 짓게 되면 2천억 원 정도가 부족하다고 했다. 2호선을 지을 돈이 없다는 것이다. 2호선 재검토가 시작되자 있던 돈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사진 3. 도시교통정책실무위원회 심의 의견(좌)과 광주시의 조치(우)>

■ 광주도시철도 2호선 20년째 수정 중

광주시의 지하철 역사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여 년 전 당시 광주직할시는 도시철도를 5호선까지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당초 남북으로 연결됐던 2호선은 2002년 27㎞의 도심 순환선으로 노선을 확대해 정부 승인을 받는다. 그런데 택지개발 등으로 도시가 확장하면서 2011년 41㎞의 확대순환선으로 두 번째 승인을 받는다. 이번엔 건설 방식이 문제, 지상고가 경전철을 저심도로 바꿔 2013년 12월 세 번째 정부 승인을 받는다. 그리고 올해 재정 문제가 떠오르면서 네 번째 수정안을 써야 할 처지다.

2호선을 설계하고 있는 회사는 도시철도 2호선을 5년 만에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돈만 있다면 5년 만에 지을 수 있는 지하철을 재정 부담 때문에 10년에 나눠서 건설한다는 것이다. 재정 상황에 따라 2호선을 5년 더 빠른 2019년까지 완공할 수도 있고, 2029년까지 5년 더 늦출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2호선 건설에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1조9천억 원이 드는 이 사업이 재정적으로 부담이 큰 것만은 분명하다.

<사진 4. 광주 도시철도 5개 노선망 확정(1992년)>

■ "2호선은 무엇과도 못 바꾼다"

2호선 재검토 논의로 연간 수백억 원의 지하철 적자는 상식이 됐다. 2호선을 건설하면 적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500억 원에서 900억 원대로 더 늘어난다는 것도 알려졌다. 이에 찬성 측은 적자를 줄이거나 다른 예산을 끌어와 적자를 메우는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2호선 논의 와중에 김치축제가 사라질 처지다. 20년을 이어 온 광주김치축제를 없애고, 이 예산을 아껴서라도 지하철은 해야한다는 말이 시의회에서 나왔다. 지난 25일 광주시의회는 내년 김치축제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시의원들은 2019세계수영대회가 1회성 스포츠 이벤트라며 이것도 취소해 지하철 예산에 보태야 한다는 말까지 한다.

2호선에 도입될 전동차는 두 량짜리 미니열차다. 적자가 많으니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게다가 지하철 차량을 운전하는 기관사가 없는 무인운전 시스템까지 도입한다. 2호선 찬성 측에게 이제 도시철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광주의 미래가 됐다.

<사진 5. 광주광역시의원 12명,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촉구 기자회견>

■ "적자가 두렵다면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묻어야"

김옥자 시의원이 "도시철도 2호선은 경제성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시민들의 편의를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지금 있는 1호선이라도 차라리 다시 묻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최근 시의회에서 발언했다. 지하철은 교통 복지를 위해서 꼭 필요하고, 여기에 들어가는 적자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해 390억 원의 적자가 아깝다면 차라리 지하철을 묻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발언은 F1 대회 논란 때도 있었다. 연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F1 대회를 계속 하느냐가 전라남도 안팎에서 논란이 됐었다. 당시 F1 대회 찬성 측은 3천억 원을 들여서 F1 경주장을 지어놓고 놀리면 되겠느냐였다. 그러면서 적자는 나지만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했다. F1 대회를 유치했으니 경주장을 지어야 하고, 지었으니 대회를 열어야 하고, 이러는 사이 F1 대회에 들어간 돈만 1조 원에 육박했다.

<사진 6. 광주 지하철 1호선 이용하는 승객>

■ 20년째 지하철을 정당화하는 마법의 주문 "지역경제 활성화", "집값 상승"

"지하철은 광주를 보다 활기차고 쾌적한 도시로 새롭게 바꿀 것이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도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1996년, 광주 지하철 1호선 기공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사말이다. 최근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 19일 김옥자 시의원은 "도시철도 2호선 건설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생산 활동은 아니지만 이로인해 파생되는 시민들의 교통편의, 지역 경제 활성화, 녹색도시, 아시아 중심도시로서의 위상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활동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입니다."라고 말했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하철은 1~2조원이 드는 대형 사업이고 이 예산이 건설 경기를 일으키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쾌적한 도시를 만든다는 논리가 비슷하다. 지난 4월, 광주 지하철 개통 10년을 맞아 광주광역시도시철공사가 보도 자료를 냈다. 이 자료를 보면, 지하철 인근의 아파트값이 10년 동안 두 배나 상승했다고 한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집값이 오른다는데 반대할 시민이 얼마나 있을까?

<사진 7. 광주 지하철역 인근 역세권 아파트값 변화>

■ 도시철도 건설은 미래 선택의 문제

도시철도 2호선을 건설할 돈이 있다, 없다가 논란이다.

광주시 민진기 예산담당관의 답이다. "지하철을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하철을 해서 부도가 나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광주 미래를 위해서 어떤 방안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것은 투자 우선순위 선택의 문제죠."

윤장현 시장은 지난 19일 시의회에서 2호선 논란을 이렇게 정리했다. "(교통) 편리와 복지 매우 중요하지만 정말 지역의 미래에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와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의 약자에 대한 복지문제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2호선 찬성 측에서는 2호선을 건설하지 않으면 광주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윤 시장은 광주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2호선을 재검토하게 됐다고 한다. 도시철도 2호선을 두고 모두가 광주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이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2호선을 건설하거나 하지 않거나 광주의 소중한 역사로 남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진 8.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여부 발표할 광주광역시청사>

시사현장 맥은 '광주 지하철 10년, 2호선 필요한가'라는 제목으로 지난 6월 26일 방송했다. 그리고 '2호선의 운명, 달리나 멈추나'라는 제목으로 오는 29일 속편을 방송한다.

☞ 다시보기 <시사현장 맥> 광주 지하철 10년, 2호선 필요한가

김기중기자 (good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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