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엔 '명문대 합격' 대신 '우수 취업' 현수막
지난 24일 서울 성동구의 한 고등학교 정문. '2014학년도 우수 취업자'라는 현수막 아래 지나가던 학생들 발걸음이 멈췄다. 현수막엔 올해 취업에 성공한 동문 선배들 이름과 회사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로펌, 은행, 언론사, 공기업, 대기업 등 모두 '취업 시장'에서 선망받는 직장이었다.
학생들 반응은 엇갈렸다. 3학년 이모(18)군은 "'우수 취업자'라는 표현 자체가 중소기업에 취업한 선배들은 차별하는 것 아니냐. 대학도 안 간 재학생에게 이런 현수막을 보여주는 건 이른 것 같다"고 했다. 반면 2학년 박모(17)군은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꿈이 벌써 9급 공무원인 친구가 많다"며 "좋은 곳에 취업한 동문 선배들을 보면 진로 선택에도 도움이 되고 목표 의식도 생긴다"고 했다. 학교 관계자는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을 격려하려는 목적이지 위화감을 주려는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고교 정문에 '명문대 합격 현수막'이 사라지는 대신 '취업 축하 현수막'이 등장하고 있다. '하늘의 별 따기'인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을 축하해준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름 있는 회사만 현수막에 선별적으로 기재되면서 '취업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김지애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은 "예전엔 고교 교육의 지상 목표가 대학 진학이었는데 이젠 이것도 모자라 취업이 돼버렸다"며 "10대 때부터 취직을 염두에 둬야 하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했다.
취업 현수막이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반응도 있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장은 "대학을 못 갔다고 기가 죽는 학생도 많은데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대기업에 취업한 선배들 플래카드를 보면 아이들이 희망을 갖는다"고 했다. 실제 작년 제주도의 한 특성화 고교는 '경축! 2013년 졸업생 ○○○, ○○산업 취업(최소 연봉 5000만원 이상)'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 특성화고 학생은 "갈수록 취업이 중요해지는 만큼 대학명을 적는 것보다는 실용적 현수막이라 본다"고 했다.
학교에서 게시하는 현수막 내용에 대해 교육 당국의 규제 기준은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대학 합격자 명단을 게시하는 것은 자제하라고 일선 학교에 매년 권고하지만 '우수 취업자' 현수막을 다는 것은 아직까지 논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 합격 현수막이 다른 학생들에게 소외감을 주고 학벌주의를 부추긴다며 자제를 요청했지만 취업 명단 현수막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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