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내 아이] [6] 집에 혼자 남겨진 아이.. '母情 공백'이 극성 엄마보다 더 문제

최경운 기자 2014. 11. 27.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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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에 사는 은행원 A(여·38)씨는 민서(가명·10)를 출산한 직후부터 아파트 이웃 동(棟)에 사는 친정 엄마(58)에게 맡겼다. A씨의 친정 엄마는 민서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도 학교 학부모 회의에 딸 대신 참석한다. 민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엔 몇 차례 엄마와 살겠다며 A씨를 따라나서더니 이제는 엄마를 거의 찾지 않는다. A씨도 처음엔 이런 민서가 마음에 걸렸지만 최근엔 퇴근 후 민서를 보러 친정에 들르는 것도 거를 때가 잦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 이름을 모른다"는 A씨. 그의 친정 엄마는 "나는 지금 딸 둘(딸과 외손녀)을 키우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7세 이하 아동의 주(主) 양육자는 92.4%가 여성이다.

하지만 '워킹맘(Working mom)'이 늘어나면서 A씨처럼 아이 육아를 친정·시가에 맡기고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딸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조손(祖孫) 가정'도 증가하면서 아이 양육에서 빚어진 '엄마의 공백(空白)'이 아이에게 새로운 독(毒)이 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강도형 교수(정신과)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 엄마와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감정을 형성하는데 어린 시절 엄마의 공백은 모정 결핍에 따른 우울증, 위축감, 분노 등 아이들의 정서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엄마와 떨어져 사는 아이

30대 여성 홍모씨는 강원도 강릉에서 피부미용실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세 살배기 아들이 눈에 밟히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아이를 본다. 빠듯한 살림 탓에 맞벌이에 나서면서 아이를 한 가정집에 맡긴 탓이다. 이 집에는 홍씨 아들 말고도 두세 살 된 아이 3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모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는 부모들의 아이다. 아이를 맡기고 한 달에 80만원을 낸다는 홍씨는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아이를 보육원에 맡긴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조모(여·37)씨는 서른이 넘어 어렵게 얻은 아들(3)과 생이별 중이다. 경기도 평택의 친정에 아이를 맡긴 탓에 주말에 면회 가듯 아이를 만나러 간다. 조씨는 "남의 손보단 부모님한테 맡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나를 보고 외할머니 뒤로 숨는 걸 보니 어떻게든 입주 도우미를 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중국 동포가 키우는 아이들

지방에 근무하는 한 여군 장교 B씨는 얼마 전부터 '이모님'이라 부르는 중국 동포 출신 육아 도우미를 구해 부대 관사에서 같이 살고 있다. 육아 도우미를 찾지 못해 애를 먹던 다른 여군 동기생 두 명도 B씨네 '이모님'의 소개로 그의 친척 여성들을 육아 도우미로 고용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중국 동포 출신 육아 도우미는 9만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동포를 고용해본 엄마들은 "신원 등에 대한 불안감이 작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2012년 서울 대치동에서 입주 육아 도우미로 일했던 중국 동포(당시 63세)가 특수강도 전과자 신분을 세탁해 입국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여성가족부에서 대안으로 '아이 돌봄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손가정 아이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절반 정도가 조손 또는 결손가정 아이"라고 했다. 대개 부모의 별거나 이혼, 사망 등으로 생존한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살거나 친척집에 얹혀사는 경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전국 조손 가정은 11만9200여가구로,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사이 0.24%에서 0.67%로 배 가까이 늘었다.

1998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실직 등으로 부모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연쇄적으로 이혼율이 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이렇게 엄마와의 정서적 교감 없이 방치된 아이들은 애정 결핍에서 비롯된 정서적 문제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13 전국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엄마가 사랑한다는 말이나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아이들이 22.6%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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