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자신감 잃은 日本人, 한국이 중국으로 쏠리자 嫌韓(혐한) 감정 거세져"

최원석 기자 2014. 11. 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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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재특회(在特&#20250·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로 대표되는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증오 발언) 세력과 혐한파(嫌韓派)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은 엄연히 다릅니다. 헤이트스피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통 일본인들 사이에서 혐한파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오구라 기조(小倉紀 ·55) 교토(京都)대 종합인간학부 교수는 24일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재특회 중심의 헤이트스피치 세력은 언행이 저급하고 과격해 이들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거의 없고 한·일 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제한적"이라면서도 "일본에 일반인 혐한파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도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날 서울대 일본연구소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23일 한국을 찾았다.

―혐한파의 주장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면 '한국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50년간 양국이 우호 관계를 맺어 왔는데, 일본인 시각에서 보면 '일본과 더 이상 사귀지 말자'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을 배척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한국의 중국 쏠림 현상을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본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매력이 많은 중국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일본이 지금까지 한국과 우호적으로 지내온 오랜 과정이 있는데, 어떻게 한국이 중국 쪽으로만 가버리느냐는 서운한 마음이 일본인들에게 생기는 게 사실이다. 그것이 혐한 감정을 더 부추긴다."

―계속 확산되고 있나?

"자신을 혐한파라 부르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혐한파로 분류할 수 있는 일본인들이 꽤 많아졌다."

―왜 늘어나나?

"일본 사회가 심리적으로 좁아지고 있다. 타자(他者)를 포용하려는 힘이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 일본과 비교하면 지금의 일본은 완전히 달라졌다. 총체적인 자신감 상실, 고독감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혐한파는 동아시아를 사절(謝絶)하고 싶어 한다. 과거 일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일본이 19세기 중·후반 근대적 통일국가를 형성해나간 과정) 당시의 대표적 정치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가 아시아와 결별하겠다는 '탈아(脫亞)론'을 내세웠을 때는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를 앞서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한국이 앞서가니까 '기세 드센 이들과 엮이지 말고 우리끼리 조용히 살자'는 심리다. 메이지유신 때와 정반대인 '역(逆)후쿠자와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도 혐한 현상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나?

"아베 정권의 경우는 혐한파와 또 다르다. 혐한파는 한국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지는 순진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성향이 달라질 수 있지만,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더 강한 나라로 만들려 하는 확신범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혐일 서적이 눈에 안 띄는데, 일본에서는 왜 그렇게 혐한 서적이 잘 팔릴까.

"한국인들의 경우 일본에 대한 정보가 축적돼 있다. 일본 역시 최근 10년간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됐지만, 보통의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아직 낯설다. 한류가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고, 한국을 제대로 알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일 우호를 주장했던 친한(親韓) 일본인들이 그렸던 모습과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에 대한 존재를 부각시킨 것이 2005년부터 본격화된 혐한파들이었다."

―한류의 반동(反動)인가?

"한국의 좋은 면, 안 좋은 면을 두루 접하면서 종합적인 정보를 흡수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혐한 서적이 거의 모두 비슷한 내용에 수준도 낮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곧 다음 단계의 한국을 보는 과정으로 넘어갈 것이다. 내가 한국에 유학했을 당시인 1990년대 한국에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나왔다. 기성세대로부터 지금까지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말만 들었는데, 직접 접해보니 '그런 일본은 없더라'는 내용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혐한 서적들은 기존의 친한파 일본인들이 말했던 한국은 '실제 접해보니 없더라'는 식의 내용을 좀 더 수준 낮고 과격한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혐한 현상의 다른 성격은 없는가.

"혐한 현상은 한국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전후(戰後) 일본의 헤게모니(주도권·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일본의 혐한은 이 두 가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혐한파들은 전후 일본의 언론·학계 등이 전부 좌편향 혹은 중도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 매스컴의 경우 아사히(朝日)신문을 대표로 하는 한·일 우호 주장 세력이 지금까지 주도권을 잡아왔고, 한국을 연구하는 학계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조선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라고 하는 식의 풍조가 지배해 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사히로 대표되는 좌파 논리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 혐한파의 주된 목표 중 하나다. 최근 '아사히 배싱(때리기)'은 단순히 아사히의 위안부 강제 동원 기사 철회 및 사과 문제뿐 아니라 이 같은 의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이 어떻게 일본에 접근하고 또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물론 일본이 변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도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양국이 함께 축적해왔던 화합의 노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측의 그런 노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제스처를 취한다면, 일본 사회 분위기가 단번에 달라질 수도 있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비판만 한다는 인식을 주면 혐한파와 아베 정권에 성장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주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의 한·일 사회를 보면 일본보다 한국이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다. 혐한파를 친한파로 돌려놓을 수 있는 능력이 한국에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오구라 기조 교수

오구라 교토대 교수(종합인간학부)는 도쿄대 졸업 후 일본 최대 광고 회사 덴츠(電通)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중 한국에 왔다가 당시 일본과 달리 다이내믹한 사회 분위기에 매혹됐다. 1988년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대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석·박사를 수료했다. 1992년 이후 현재까지 한·중·일 관련으로 20여권의 책을 썼으며 10여권을 편저 또는 일본어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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