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먹튀.. '한국 직구족' 해외서 경계령

한형직 입력 2014. 11. 25. 04:48 수정 2014. 11. 25.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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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추적 안 되는 배송시스템 악용 "못 받았다" 항의하며 제품 또 챙겨

해외업체 결국 배송수단 바꾸거나 다양한 사은품 행사 없애

'고급 화장품 하나 살 돈으로 두 개를 받는 꿀팁.' 올해 9월 해외 직접구매(직구) 관련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내용은 이렇다. 영국 화장품 러시(LUSH)를 주문할 때 배송 추적이 되지 않는 해외 배송서비스 '로열메일'로 상품을 받고 판매자에게 '못 받았다'며 항의 메일을 보내라는 것. 이 글에는 현재 '진짜 하나를 더 받았다' '감사하다' 등 댓글이 달려 있다. 외국 업체들은 환불이나 반품을 잘 해주고 배송 실패에 대해서도 웬만해선 소비자 책임을 묻지 않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 진상 고객이 늘자 러시는 11월부터 한국 배송 상품에 대해서만 로열메일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러시 관계자는 "유독 한국 고객들이 상품을 못 받았다거나 제품이 훼손됐다는 항의 메일을 많이 보내 어쩔 수 없이 내린 조치"라며 "제품 배송에 정성을 들이는 우리로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이번 조치로 인해 한국 고객은 배송 추적이 가능해 로열메일보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UPS 배송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화물 1~2㎏ 기준 운송료는 로열메일 17.95파운드(한화 3만1,000원 상당), UPS 35파운드(6만원 상당) 가량으로 영국에서 한국으로 배송하는 회사는 이 두 곳뿐이다. 직구로 러시 제품을 써오던 직장인 박모(28ㆍ여)씨는 "배송비가 배로 들어 국내에서 사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고 억울해했다.

일부 극성 직구족은 사은품만 챙기고 판매계약을 취소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일리(illy)는 구매자가 원하는 주기가 되면 커피캡슐이 담긴 캔을 자동으로 배송해주는 까사(Casa)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첫 번째 배송 때 머그잔 세트 등을 사은품으로 주고, 두 번째 배송 때는 주문한 커피 캔 수만큼 덤(최대 6캔)을 챙겨준다. 언제든 프로그램을 취소할 수 있고, 30일 이내에는 환불도 가능하다.

이 점을 악용해 해외 직구 커뮤니티에는 '배달 주기를 한 달 미만으로 설정해 두 번째 배송까지 받고 취소해 환불 받아라' '취소한 뒤 다시 프로그램을 신청해도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 등 경험담을 곁들인 팁들이 올라와 있다.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 A씨는 "커피머신 제공과 같은 다양한 사은품 행사들이 거의 없어졌다"며 "일부 얌체 소비자들 때문인 듯하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해외 직구 금액은 1조3,589억원으로 지난해 1조1,000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해외 시장에서 큰 손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일부 진상 행각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에 대한 인식은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메닷컴(meh.com) 게시판에는 '무료 배송을 해달라' '공짜 사은품을 달라' 등 한국 소비자들의 무리한 요구가 잇따르자 지난 8월 '제발 자제하자'는 글이 올라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성론도 일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부끄러워 직구도 못하겠다' '알뜰한 정도를 넘어섰다'는 댓글을 남겼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블랙 컨슈머들은 외국 회사들이 이미지 하락을 우려해 소비자의 항의를 대부분 받아주는 점을 악용한다"며 "국가 이미지가 하락하고 선량한 구매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소비자 윤리를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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