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낙하산 사장·모르쇠 감사 '예고된 참사'

이경원 강창욱 기자 입력 2014. 11. 25. 03:07 수정 2014. 11. 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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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수수·입법 로비' 비리 백화점.. 한전KDN은 왜?

한국전력 계열 공기업인 한전KDN은 서울 서초구에 사옥이 있다. 최근 출입카드를 찍지 않아도 사옥에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시스템을 뜯어고쳤다. 직원들이 출장비 명목으로 거액을 챙긴다는 첩보에 따라 경찰 수사가 이뤄진 직후의 일이다. 경찰 조사 결과 출장을 다녀왔다는 직원은 모두 400여명이었다. 그중 350여명은 '분신술'이라도 하는 듯 출장기간에 사옥 출입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들이 받아낸 출장비는 11억2000만원이 넘었다. 애초 없었던 출장이기에 증빙할 영수증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돈은 직원 개인이 쓰거나 상납된 것으로 드러났고, 경찰은 사기죄를 적용했다. 그러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본사 출입 흔적이 남지 않게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한전KDN을 다시 찾아가 봤다. 그는 출입시스템이 이렇게 바뀐 걸 확인하곤 어안이 벙벙해 한마디 했다고 한다. "당신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보은인사'의 예고된 참사=한전KDN은 사정 당국이 최근 가장 주목하는 공기업이다. 검찰과 경찰은 경쟁이라도 하듯 한전KDN의 각종 비리를 수사하고 있다.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는 정부 선언에도 방만 경영은 멈추지 않았다. 검찰은 하청업체에서 납품 청탁과 금품을 받은 혐의로 24일까지 총 6명을 구속했다. 뇌물을 받기만 한 게 아니라 '쪼개기 후원금'으로 입법로비에 나선 혐의도 드러났다. 경찰의 입법로비 수사선상에는 전(前) 사장도 올라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개된 내부감사 결과만 보면 한전KDN은 퍽 평온해 보인다. "부패행위 신고 및 처리결과, 해당사항 없음. 범죄유형별 형사처분 임직원, 해당사항 없음." 이것은 현재 한전KDN이 국민들에게 정보공개 중인 올해의 내부감사 내용이다.

최근 실시된 '공직기강 감찰결과'는 '외출부 관리 미흡' 등 2건만 적발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지난 7월 이사회는 국무조정실 감사에서 비리가 포착된 임원의 해임 여부를 논의했다. "비위에 대한 확정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당시 이사회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 임원은 이후 검찰에 구속됐다.

비위는 잇따르는데 내부 단속은 허술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전KDN 안팎에서는 대대로 이어진 '낙하산' 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은 한전KDN을 '자리 만들기'를 위한 조직 정도로 본다. 거듭된 비리에 "참담하다"는 한전KDN노동조합은 '사장 선임 과정의 정치권 내정·낙점 소문은 결국 사실이었다' '부정부패 청산을 요구했지만 전직 사장과 감사들은 학연과 지연을 핑계로 눈감아줬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지난 8월까지 재직한 김병일 전 한전KDN 사장은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 후보 대선캠프에서 활약한 전력이 있다. 그는 입법로비와 관련해 입건된 직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직원들이 사장의 생각과 다른 일을 추진했고, 입법로비 사실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의 전임자인 전도봉 전 사장도 이 전 대통령 후보의 상임특보 출신이다. 노조는 "IT와 전혀 상관없는 퇴역군인이 사장이 돼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한전KDN은 브로커인가"=한전KDN의 경쟁력 부재에서 납품·입법로비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모회사인 한전이 내려주는 일감으로 편안하게 살면서, 중소 하청업체에는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되풀이됐다는 비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전KDN의 전체 매출 중 한전에 대한 매출 비중은 꾸준히 60%를 웃돌고 있다. 이 수치는 2011년 64.83%에서 2012년 68.97%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65.07%를 기록했다.

"정정당당한 경쟁 입찰이라면 중소기업이 따낼 일인데 수의계약·제한경쟁에서는 한전KDN이 따낸다"는 지적도 그간 잦았다. 공공기관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자 계약 실적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도 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전정희 의원은 "한전KDN은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온갖 로비와 편법으로 계약을 따내고, 다시 특정 중소기업과 유착해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고 꼬집었다.

한전KDN은 지난 7년간 22건의 배전운영상황판 물품구매를 특정업체 2곳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곳 중 1곳은 구속된 전직 임원에게 뇌물을 전달한 혐의를 받는 회사다. 전 의원은 "한전KDN은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란 아이처럼 한전의 보호막에서 생계를 유지했고, 자생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KDN은 본보 보도 이후 서울 서초구 사옥 출입시스템 변경 사실을 해명했다. 한전KDN 관계자는 "출입시스템 고장으로 지난 8월 20일부터 9월 1일까지 임시 시스템이 가동됐다"며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게 아니었고,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강창욱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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