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청 청소차 운전원의 간 큰 취업사기..15명에 5억2800만원 받은 8급 공무원 구속

김현섭 기자 2014. 11. 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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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서울시 인사과에 공문 한 장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돼 날아왔다. '서울특별시 기술직공무원 채용 서류심사 합격자 면접시험 개별안내'라는 제목으로 특정인에게 발송된 것이었다. 공문은 6월 19일 오전 9시까지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4층 후생동 강당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서울시장 직인까지 찍혀 있었지만 서울시는 처음 보는 공문이었다. 더구나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은 6월 29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김희갑 서울시 인사기획팀장은 "일단 직인이 이상했고 공문 형식도 조잡했다. 공무원 채용시험은 인재개발원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서울시장 명의로 안내문이 나갈 일이 없다"고 말했다. 시는 곧장 면접시험 사기주의 경보를 발령하고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공문을 담았던 서류봉투에는 마포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 발신자는 마포에 집이나 직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은 우체국을 방문해 가짜 공문이 발송된 날의 CCTV 영상을 확인했다.

마포구청이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9월 중순이었다. 마포구 관계자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 서울시내 전 구청을 상대로 확인 중이라는 설명만 들었다"며 "그땐 '별 미친놈 다 있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달 말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사람은 마포구 8급 기능직 공무원이던 박모(60)씨였다.

박씨는 1992년부터 지난 6월 30일 정년퇴직할 때까지 22년간 마포구에서 청소차량 운전원으로 일한 사람이었다. 올해 1월 1일부터는 정년퇴직 예정자에게 주는 공로연수 6개월을 받아 출근하지 않았다. 그 기간에 서울시장 명의의 공문을 위조해 발송한 것이었다.

경찰은 박씨를 추궁했다. 가짜 면접시험 안내문은 서류심사 합격자에게 보낸 것으로 돼 있었다. 시에선 채용을 진행한 적이 없으니 안내문에 언급된 서류심사는 박씨가 이미 누군가를 상대로 벌인 속임수가 분명했다. 가짜 공문은 거대한 사기극의 일부였다.

박씨는 취업 알선을 빌미로 구직자들에게 돈을 받아 챙긴 사실을 자백했다. 청소차 운전원 같은 기능직과 별정직·계약직 등 구청 공무원으로 채용되도록 마포구청장과 구청 인사 담당자에게 말해주겠노라 약속했다고 한다. 자신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간부라는 점을 강조했다. 2009년 1월 8일부터 지난 9월 23일까지 5년9개월간 15명에게 400만~1억6000만원씩 받았다. 그렇게 챙긴 돈이 5억2800만원이었다.

경찰은 지난달 말 마포구청을 압수수색했다. 박씨가 취업 알선료를 받았다는 기간 전후의 채용계획서, 면접위원과 최종 합격자 명단 등을 확보했다. 남대문경찰서는 2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박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압수한 합격자 명단과 박씨에게 돈을 건넨 사람을 대조하는 작업도 벌였다. 경찰은 "동일인이 있는지는 수사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포구는 박씨의 개인 비리로 선을 긋는 분위기다. 구 인사팀 관계자는 "구청 채용 시스템은 하급 공무원 개인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을 만큼 허술하지 않다"며 "경찰도 박씨에게 알선을 부탁한 사람 중 채용된 사람은 없는 걸로 잠정 결론을 내린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박씨를 거론할 때 '박씨는'이 아니라 '박씨라는 사람은'이라며 거리를 뒀다.

박씨는 마포구에서 오래 일하긴 했지만 매일 청소차고지로 출근해 거리에서만 근무했다. 이 때문에 구청 인사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관계를 맺긴 어려웠으리란 게 마포구 주장이다. 구 관계자는 "박씨는 평소 허풍이 심하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박씨에게 모두 5억2800만원을 주고 알선을 부탁한 15명은 정말 아무도 채용되지 않았을까. 그러고도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는 점은 이상한 대목이다. 마포구는 박씨가 돈을 돌려줬기 때문일 수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경찰은 이 부분을 포함해 박씨가 받은 돈이 구청 관계자들에게 흘러갔는지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남대문서 관계자는 "내부 가담자가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마포구청장과 인사 담당자 등에게 돈이 흘러들어갔는지도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문동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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