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의 휴먼터치] 오승환, 대범하고 섬세하고.. 완벽하고

2014. 11. 2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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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어차피 제가 상대하는 것은 타자의 스타일이 아니라 집중력이니까요." 프로 10년차 마무리 오승환(32·한신 타이거즈)이 리그 타자들에 대한 세세한 분석노트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자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담감의 핸디캡을 안고, 타자의 집중력과 싸워야하는 자리.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때도, 한신을 재팬시리즈로 이끈 올해도 리그 최고 마무리의 자부심을 지킨 오승환은 어떤 타자도 허투루 보지 않고, 어떤 타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클로저다.

"기복이 없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마무리는 반드시 막아주리라 믿고 올리는 투수니까요." 그가 말하는 마무리의 첫째 조건은 빡빡하다. 100퍼센트와 겨루는 자리. 한번의 실수가 냉엄한 마지막 결과로 이어지는 승부의 무게를 견디는 보직이기 때문이다.

3할을 치면 고개를 들수 있는 타자들이나 한시즌 서른번 남짓한 등판에 15승을 목표 삼는 선발 투수들과는 다른 처지.

여러 번 생각하지만, 마무리에게 '멘탈'이 중요한 이유는 초긴장의 순간에 담대한 승부를 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자리에서 실패를 겪어내면서도 언제나 '나는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낙천적인 성격이라고는 못해도... 천성이 걱정이 많은 편은 아니죠." 일본에 건너갈 때도 그랬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을 믿었다.

"(적응하는데) 힘들 거란 소리는 한번도 안 들었던 것 같은데요." 오승환의 공이야 누가 걱정했을까. 그러나 이런저런 해주는 말속에 낯선 생활이나 일본야구에 대한 경계심은 있었을 법 한데도 그의 기억에는 전혀 남지 않았다.

"(이)승엽이 형도 좋은 말만 해줬습니다. 음식도, 생활도, 사람들도, 야구도. 한국이랑 큰 차이없으니 편하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일년을 겪어보니 과연 그랬다. 나중에 추억삼을 변변한 에피소드 하나 없이 그는 스르르 일본 생활에, 일본 야구에 자리잡았다.

뜻밖에 오승환이 더 편한 팀 동료들로 꼽는 팀은 삼성 보다 한신이다.

"삼성에서는 사실 후배들이 저를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한신에서는 선후배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다들 편하게 저를 대하더라고요. 서로 부담없는 사이들이 되고 보니 한신 팀 동료들이 더 만만합니다." 야구 인생에 크게 힘들었던 시기는 두 번의 수술 경험 정도. 대체로 그는 늘 야구를 잘했고, 늘 정상에 있었다. 좋은 인연, 좋은 환경의 운도 따라줬음에 감사한다.

가장 큰 행운은 프로 첫 팀으로 삼성을 만났음이다.

"마운드에는 기회가 있었고, 그 기회를 제가 잘 살릴 수 있도록 받쳐준 팀의 전력도 있었죠." 삼성은 그에게 기회와 성장을 모두 주었던 둥지다.

한국이 올해 늦게까지 '가을야구'를 했던 덕분에 재팬시리즈까지 치르고 귀국한 오승환도 한국시리즈를 스탠드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삼성의 우승 헹가래를 밖에서 보는 기분이 낯설었습니다. 내가 저 자리에 없어도 되나 잠깐 착각도 들고..." 일본에서도 꼬박꼬박 한국야구를 챙겨 봤던 오승환은 올해 넥센을 강한 상대로 봤다. 자신이 뛰는 경기보다 더 긴장된 마음으로 친정팀을 응원했다. 조마조마했던 시간만큼 우승의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시즌중의 일과표는 단순했다. 일어나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거의 일정했다. 역시 우직함이 어울린다고 매사 무던한 스타일로 짐작해선 안된다.

"사실 잠을 잘 못자는 편이죠. 버스에선 거의 힘들고, 자리에 누워도 쉽게 잠이 못 들어요." 마운드에서나 흔들림이 없는 '돌부처'. '자연인 오승환'은 살짝 예민한 남자다. 잠귀가 워낙 밝아 작은 소음에도 번쩍 번쩍 눈이 깬다.

혈액형은 A형이 맞지만, 흔히들 말하는 'A형 성격'은 부인한다. 섬세한 구석은 있어도, "소심한 남자는 아니라서".

대구에서 혼자 살 때 강아지를 키우기도 했다. 어린 조카들을 끔찍이 예뻐할 만큼 아기를 좋아한다. 화분도 잘 길러서 쉬이 죽이는 법이 없다. 어머니에게 다감한 '딸 노릇'을 한다는 삼형제중 막내아들이라더니 과연 살뜰한 '돌보미'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마운드에서는 그 어떤 순간에도 표정이 흔들리지 않는 시크함이 매력이지만, 팬 사인회에선 의외로 '계를 타는' 팬들이 많다. '돌부처'는 문득 문득 누구보다 환하게 웃어준다.

늘 '완벽'해야 하는 역할. 그 독한 배역을 10년째 맡고 있는 강심장도 '떨림'을 안다.

"남들이 생각하는 큰 경기, 중요한 승부에 떨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긴장하게 되는 경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상황보다 컨디션이다.

[사진=옥영화 기자/ sana2movie@maekyung.com] [chicleo@maekyung.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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