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문화재 보존복원> ① 성프란체스코 성당 '지진 그후'

2014. 11. 24.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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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기록'이 신속한 복구에 큰 도움 전문가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일손 보태

'충실한 기록'이 신속한 복구에 큰 도움

전문가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일손 보태

(아시시=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이탈리아 움브리아주(州)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프란치스코) 성당은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올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 출신인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을 따 교황명을 지었다 해서 더 유명해졌다. 1253년 완공된 성당 역시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리고자 건립됐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조토 디 본도네, 조반니 치마부에, 시모네 마르티니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이 남긴 벽화들이 가득해 예술사적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성당은 1997년 큰 시련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그해 9월26일 움브리아주를 강타한 두 차례의 강진으로 성당과 내부 벽화들이 크게 파손됐다. 당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오전 2시30분께 1차 지진이 리히터 규모 5.5, 이어 정오 무렵 발생한 2차 지진이 5.6이었다. 이 지진으로 성당에서 5명이 매몰돼 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계적 문화유산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을까. 한국 취재진은 재해로 파손된 문화재 복원의 한 사례를 직접 보고자 지난 6일(현지시각) 성당을 방문했다.

취재진을 맞이한 이는 바티칸 소속으로 성당 보존·복원업무를 담당하는 세르지오 푸세티(62)씨였다. 1974년부터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근무했다는 그는 1997년 9월 지진 당시 천장 붕괴로 매몰된 5명 가운데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고 했다. 보존·복원 전문가인 그가 강조한 것은 충실한 '기록'의 중요성이었다.

"1970년대에 성당에서 대대적으로 복원작업을 진행하면서 구조 등에 관한 기록을 충실히 남겼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는 풍부한 사진자료도 남아 있지요. 이런 자료들을 통해 현재와 과거 상태를 비교할 수 있어 작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1997년 지진 이후 복원작업도 모두 기록해 책자로 발간했습니다."

푸세티씨에 따르면 당시 피해는 모두 복구됐다. 다만 지진으로 산산조각이 난 치마부에와 조토의 대형 벽화작품들은 여전히 완벽한 복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평균 2~3㎝ 크기 조각 30만개가 떨어져 나온 이들 벽화는 아직 조각 8만개의 자리가 빈 상태다. 그나마 이 정도 복원도 과거 기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상태의 원본 사진이 남아 있어 이를 실측 크기로 뽑아 대조하면서 퍼즐을 맞추듯 작업했습니다. 조각 하나하나를 들고 육안으로 색을 확인해 원래 있던 자리를 찾아 나가는 방식이었죠. 남은 8만개는 단색 톤이라 육안만으로는 원본상 위치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아직 작업을 남겨 둔 상태입니다."

미복원된 조각 8만개는 구역별로 번호를 매겨 따로 분류 보관하는 중이다. 육안으로 원래 위치를 찾기가 불가능하자 피사대학에서 조각 하나하나를 스캔한 뒤 프로그램을 돌려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푸세티씨가 안내한 보관소에는 꼼꼼하게 분류된 조각 8만개가 질서 있게 보관돼 있었다.

피해 복구 과정에서 다양한 기법과 재료가 투입됐다. 그러나 기법과 재료들이 모두 최초 건축 당시의 전통 방식만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벽면에 쓰인 특수 모르타르 접착제는 '21차례 실험 후 아시시에서 사용했다'는 뜻에서 아예 '21 아시시'라는 이름이 붙은 신제품이었다. 소금성분 때문에 벽화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시멘트와 석회가 포함되지 않은 특수 접착제다. 당시 접착제를 어느 위치에 얼마나 사용했는지까지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중천장 중 안쪽이 붕괴한 성당 상부에는 방진설계를 적용, 기존에 쓰인 철근 대신 탄소섬유를 사용해 내구력을 높였다. 곳곳에 흔들림을 감지하는 센서가 설치됐고, 지진이 나 구조물이 흔들리더라도 마치 방석처럼 함께 움직이며 충격을 완화하는 빔도 사용됐다. 원형을 지키면서도 최신 기술은 적극적으로 반영한 셈이다.

유럽의 문화재 보존·복원 철학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점이라면 '복원작업을 했음을 알 수 있어야 한다'와 '복원이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를 들 수 있을 듯하다. 1997년 지진 이전에도 숱하게 이뤄진 보존·복원작업 역시 이런 규범을 충실히 따랐다.

1974~1985년 진행된 성당 내 벽화 복원작업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오랜 세월 성당 내에서 초를 사용한 결과 벽화 표면에 그을음이 두껍게 덮여 검게 변색했다고 한다. 워낙 단단한 막이 형성된 탓에 조금 긁거나 닦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드릴과 정 등으로 막을 깨야 했을 만큼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푸세티씨는 "복원작업을 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검게 변한 부분을 일부러 조금 남겼다"며 "나머지 부분은 원래 색으로 복원된 상태이고, 이후에는 성당 내에서 초 사용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성당 내 문화재 보존에서 중요도가 큰 대상 가운데 하나는 벽화의 현 상태 유지다. 지진과 같은 대형 재해가 발생하면 부서진 것을 다시 짜맞춰 붙이기 마련이지만, 자연 상태로 둬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파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벽화의 현 상태 유지는 성당 보존업무의 주요 관건 중 하나입니다. 벽화 주위에 조그만 구멍을 여러 개 내고 접착제를 투입하는 방식을 쓰지요. 여기에도 나중에 필요하면 제거할 수 있는 특수 접착제를 사용합니다."

푸세티씨에 따르면 1997년 9월 지진 피해 복구작업은 1999년 12월 끝났다. 2008년 불에 탄 숭례문이 5년 만에 복원된 것을 두고 일부에서 '속도전'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그보다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복원됐다. 푸세티씨는 "이처럼 신속한 복구는 이탈리아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피해 발생 직후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바티칸 주도로 복구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복구에 정부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300여명에 이르는 전문가 외에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까지 일손을 보탰다. 개인부터 단체,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와 문화계도 중요 문화유산의 손실에 애도를 표하며 지원을 위해 팔을 걷었다.

성당 홍보담당인 루이사 베네비에리씨는 "성 프란치스코가 이탈리아의 대표적 성인이므로 이탈리아 국민은 모두 애도했지만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져 교회도 놀랐을 정도"라며 "각계에서 많은 성금을 보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베네비에리씨는 "복원 과정에서 적용된 방진설계 등의 새로운 시도를 배우고자 외국 교육기관에서도 성당을 방문하고 있다"며 "복원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의 예방보존에 더 큰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으로 지난 3~14일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KPF 디플로마 - 건축문화재 보존과 복원'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작성됐습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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