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네 버스서 비웃었다며?' 성남의 통쾌한 복수혈전

황민국 기자 2014. 11. 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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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릴 만만하게 보면 안 되지요."

성남FC 수비수 박진포(27)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단단히 별렀던 복수혈전을 국내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FA컵 결승전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박진포는 23일 FC서울과의 FA컵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서울에 꼭 복수하자고 팀 동료들과 한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박진포가 서울전을 별렀던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버스 사건'이다. 서울 선수들이 지난달 21일 FA컵 준결승에서 상주 상무를 꺾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른 준결승에서 성남이 승부차기 접전 끝에 전북을 제압하는 걸 보고 환호성을 지른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서울은 뒤늦게 "선수들이 결승전을 홈에서 치를 수 있어 기뻐한 것"이라고 사태를 수습했지만 우승 후보인 전북보다는 성남이 편하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성남은 2003년부터 서울 원정에선 이기지 못하는 '상암벌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당시를 떠올린 박진포는 "서울 선수들을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릴 만만하게 본다는 기분이 들어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살리는 방법은 오직 승리 뿐이었다. 성남 선수들은 강등 경쟁에 바쁜 와중에도 FA컵 결승전에 온 힘을 기울였다. 박진포는 "서울전에 이번 시즌 들어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며 "코칭스태프와 미팅을 몇 번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단순히 미팅만 많이 가진 게 아니다. 주전과 후보에 구분 없이 승리에 한 마음을 모았다. 이날 결승전에서 후보 골키퍼로 교체 투입되려다 시간에 막혀 불발된 전상욱이 박준혁에게 자신이 분석한 정보를 전달한 게 대표적이다. 전상욱은 "내가 못 뛰더라도 서울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내 나름대로 분석한 자료들을 (박)준혁이한테 전달했는데 그게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남의 복수혈전은 그라운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쳇말로 '뒤끝이 작렬한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우승 시상식이 끝난 뒤 라커룸에서 구단이 준비한 '너네 접때 버스서 비웃었다며? 오늘은 질질 짜게 해줄게 ㅋㅋㅋ'라는 문구가 들어간 플래카드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것이다. 박진포는 "사실 이 플래카드를 보면서 승리욕을 높였는데, 사진까지 찍으니 기분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전상욱도 "적지에서 우승했으니 한 번 해보자고 했다"며 "우승팀의 여유가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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