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놓고 여야 의원 11명씩 갈리다

2014. 11. 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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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형제복지원법 상정, 그 후

▶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한겨레>가 8~10월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을 연재한 뒤 특별법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상정돼 법안소위에 회부됐습니다. 안전행정부는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의원들은 정당별로 온도 차가 컸습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주목받다 잊혀지기를 반복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피해자들이 얼마나 더 외쳐야 세상이 들을 수 있는 걸까요?

"저는 형제복지원 대책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법안 담당하신 보좌관님 계신가요?"

"약속을 하지 않고 찾아오셨네요. 지금 다른 약속이 있어서요."

1984년 여덟살 나이에 형제복지원에서 3년간 감금된 한종선씨 등 6명은 지난 5일 오후 3시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돌아다녔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간사 여준민씨는 "시간이 없다"는 보좌관에게 종이 한 장을 주고 발길을 돌렸다. 법안 제정의 절실함을 담은 종이였다. 지난 7월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 대표 발의로 제정된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형제복지원법)이 상정되기 이틀 전이었다.

낯선 공간에 무작정 들어가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는 건 쉽지 않다. 보좌관, 비서관들이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의원실 방문마다 열고 자기소개를 한다. 낯선 시선이 날아와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대책위원회 활동가들에게 꽂힌다. 그 시선들을 견디며 5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다. "이리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면 감사하고, 바쁘다고 하면 한번 더 부탁한다. 그래도 안 되면 발길을 돌린다. "좋은 일 하십니다." 이렇게 말하는 보좌관도 있다. 칭찬인지 뭔지 속뜻은 잘 모르겠다. 수년간 감금된 인생을 5분 안에 다 뱉어내지 못한다. 결국 피해자들은 "법안 통과가 꼭 필요하다"는 호소로 마무리 짓는다.

2012년 여름부터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한 한종선씨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죠. 그것뿐이에요.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책으로 냈을 때 첫걸음을 떼고, 대책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내일 법안 상정이니까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뿐이에요."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

7일 상정된 형제복지원법은 지난 12일 국회 안행위 법안소위에 회부됐다. 거북이 같은 피해자들의 발이 또 한 걸음 앞으로 나간 것이다.

"이 제정안은 1975년 7월부터 87년 6월까지 형제복지원에 들어와 당한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됐다면 동 법에 따라 조사가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피해자들이 당시 아동이었고 사회 적응 능력이 떨어지는 부분 등이 있고 적절한 조력자가 없어 신청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부 쪽 의견 들어보겠습니다."

"예,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을 해서 피해자들의 명예 훼손을 구제하는 것에 공감합니다. 다만 보상을 전제로 한 특별법 제정은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라든지 타 사건과의 형평성, 국가 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안전행정부는 법안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들렸다.

"진선미 위원님 의견 말씀해 주세요."

"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형제복지원 피해 당사자들은 어린 나이에 끌려갔습니다. 과거의 일들을 다시 꺼내서 진상 규명하고 보상금이라든지 재정적 부담이 고민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걸 하지 않으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있는 걸까, 다시 한번 우리가 제대로 점검하고 품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의원님들, 긍정적 검토를 바랍니다."

"지금 진선미 의원 안에 정부 쪽에서 동의를 하시는 겁니까?"

"예, 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27년간 여론의 주목을 받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1987년 김용원 검사의 수사로 박인근 원장이 구속되면서 사건은 한동안 주목을 받았다. 문화방송(MBC)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 복지 영웅이었던 박인근. 그가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이 실상 약취유인, 감금, 성폭행, 살인, 횡령, 강제노동, 구타 등 온갖 범죄의 온상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 나라가 들썩였다. 1975~1986년 복지원에서 숨진 사망자는 513명.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조사단을 꾸려 조사한 결과, 513명의 사망 원인도 의문투성이였다. 구타로 숨진 원생의 사인을 조작한 의사가 붙잡혔다. 대법원은 그러나 1989년 원생들을 가둔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박인근 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횡령, 초지법 위반 등의 혐의만 인정해 2년6월을 선고했다. 그렇게 사건이 잊혀졌다. 2012년 한종선씨가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함께 책을 내면서 다시 여론을 탔다. 진 의원은 "다들 아시겠지만"이라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철우 의원: "이와 같은 사건이 많이 있을 텐데 이것만 덜렁 특별법을 만들어 놓으면 다른 사건들은 우후죽순 나올 거 아녜요. 이거 제정법인데 공청회 했어요? 그러니까 좀더 공론화해서, 저는 안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1975년이면 벌써 40년 된 건데 과거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있었고 여러 절차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빠졌었단 말이죠."

진선미 의원: "그게 피해자가 아동이었기 때문에…."

이철우: "오늘 이렇게 할 게 아니고 공론화를 해야 합니다. 형제복지원이 갑자기 조용하다가 다시 나타나 가지고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그래요."

진선미: "지금 법안을 만든 것도 아니고 2012년부터 오랜 공론화 과정이 있었습니다. 공청회도 우리가 그냥 만든 게 아니라 (지난 3월에) 피해자들하고 대책위하고 함께 만든 것이거든요. 그 문제를 작년 국정감사 때 언급을 해서 안전행정부 관계 부처 회의도 했습니다. 워낙 오래 기다린 것이거든요."

이철우: "피해자 단체나 이런 게 있어요?"

진선미: "네, 네. 있습니다. 책도 있습니다."

이철우: "나는 처음 들으니까 그런 건데….(생략)"

11월이 끝나기 전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이날 회의는 끝났다. 진 의원은 다음날 한종선씨의 책 <살아남은 아이>를 이 의원에게 건넸다. 책에는 여덟살에 감금된 한씨의 인생이 담겨 있다. 한씨의 누나는 열두살에 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지금껏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1987년 세상 떠들썩하게 한사건은 2012년 재조명받았다형제복지원 사건을 처음듣는다는 의원은 이제야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한다지난해 국정감사 지적받은안행부는 이랬다저랬다국가책임 빠진 반쪽짜리법안 될까 피해자 전전긍긍고통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한 발짝 뒤로 돌아선 안행부

<한겨레>는 안행위 소속 의원 22명을 대상으로 형제복지원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묻는 설문조사를 18~20일 벌였다.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정당만 밝히는 대신 익명을 보장한 조사였다. 새정치민주연합, 통합진보당 의원 11명은 모두 "법안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내무부 훈령 410호에 의해 형제복지원이 원생들을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 책임이라고도 11명이 응답했다. 새누리당 의원 11명은 모두 설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형제복지원이 이념이나 정치가 아닌, 인권 문제였음에도 의견은 사실상 정당별로 나뉘었다.

법안 상정을 앞두고 "형제복지원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며 의원실을 돌며 호소하던 한종선씨는 <한겨레> 설문 결과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의원님 개개인이 양심, 소신에 따라 선택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새누리당은 보수 정치 쪽이잖아요.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온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희 피해 생존자들은 하루하루 극한 트라우마 가운데 지금도 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들은 안행부 유정복 전 장관은 "아직도 그런 시설이 유지된다는 데 아주 깜짝 놀랐다. 관련 부처하고 협의해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안행위 법안소위에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에 동의하되 보상 문제는 신중히 접근하겠다"던 안행부는 회의가 끝난 뒤 입장이 달라졌다. <한겨레>는 20일 형제복지원을 담당하는 정구창 안행부 사회통합지원과장과 통화했다. "진상 조사하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노력하고 좀더 공론화를 거쳐 진행하겠습니다." 법안소위에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했던 발언과 비슷했다.

-형제복지원은 언론 보도로 꽤 많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꼭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의원님들도 많이 모르시는 부분들도 있고. 공청회라든지 토론회라든지 논의를 진행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죠."

-의원들이 여론보다 늦은 면도 있습니다.

"하하. 어쨌든 신중하게, 신중하게 진행돼야 합니다."

-안행부가 진상 조사에 동의하겠다고 했는데 그럼….

"아니, 아니. 진상 규명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공감을 형성하고 진행돼야 하는 것이죠."

-법안 발의까지도 오랜 시간 거쳐서 진행됐습니다.

"아니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텐데요."

1987년 박인근 원장이 구속되면서 형제복지원 정문이 열렸다. 정문을 뛰쳐나온 원생 3000여명이 사회 곳곳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들은 형제복지원 출신임을 숨기거나 '부랑인'이라는 시선을 견뎠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는 거리에서 배회하는 자들을 '부랑인'으로 분류해 영장 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이 굳게 닫힌 정문을 열고 거리에 나온 날부터 형제복지원법이 법안소위에 회부되기까지 27년이 걸렸다.

국가책임을 둘러싼 논란

진 의원 등 54명이 공동 발의한 형제복지원법 1조를 보면, "형제복지원 피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여 은폐된 진실과 국가의 책임을 밝혀낸다"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법안은 진상 규명과 보상 문제를 담고 있다. 안행부와 새누리당은 '국가 책임'을 법안에 포함하는 데 조심스럽다.

안행위 수석전문위원은 지난 5일 이례적으로 형제복지원법에 대해 두차례 검토보고서를 냈다. 이날 최초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강제수용의 근거였고,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따라 부랑인 단속이 강화되었으며,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형제복지원과 같은 보호수용시설이 전국적으로 급증하였다고 피해자 쪽이 주장하는바, 동 내무부 훈령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음. 정부도 동 훈령이 구금 또는 수용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형제복지원 사건 후 이를 폐지하고, 동 사건이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에 따른 결과로 발생하였다고 여겨 1987년 3월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전반적인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하는 등 대책을 강구한 바 있음. 형제복지원이 국가의 지원과 감독을 받는 사회복지법인이었다는 점에서, 업무의 위탁 관계상 국가 또는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최소한 관리감독자로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러나 안행위 수석전문위원은 몇 시간 뒤 검토보고서를 수정했다. "제정안의 제명에서 '국가 책임'을 포함하는 것은, 자칫 현재 시점에서 입증되지 아니한 국가의 책임을 전제로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 책임을 넘어 국가 범죄라고 정의했다. "국가 공권력이 직접 범죄를 행사하는 경우만 '국가 범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건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집필한 <제국의 위안부> 논리와 비슷하죠.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동원한 것은 조선인 업자다. 국가(일본)에 의한 게 아니다.' 이게 박 교수 주장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어떻게 계획했는지 보면 논란은 일단락됩니다. 형제복지원도 비슷해요. 국가는 내무부 훈령 410호를 통해 마음대로 잡아가둘 수 있는 법제를 마련했습니다.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재산 취득에 관한 편의도 봐주었습니다. 박인근 개인에게만 지울 수 없는 범죄입니다." 박인근이 2010년 낸 자서전 <형제복지원 이렇게 운영되었다!>를 보면 국가가 부여한 일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힌 대목이 곳곳에 있다.

국가 책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법안이 반쪽짜리에 그친 예는 '한센인 사건'이다. 2008년 시행된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국가 책임이 나오지 않는다. 국가는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소록도국립병원 등에서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강제 정관수술(단종)이나 강제 낙태수술을 벌였다. 한센인 회복자 강아무개씨 등 19명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 4월 승소했다. 국가 배상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정부는 원심을 유지한 항소심에 불복해 이달 또 상고했다.

부랑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에서 치워버린 역사는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나치 독일은 1938년 인종법 시행령에 따라 부랑인, 매춘부, 집시, 알코올 중독자, 전염병·성병 보균자 등을 반사회적 존재로 분류하고 2만명 이상 강제수용소에 입소시켰다. 이들은 사회와 격리돼 검은색 인식표를 패용했다. 이후 독일은 나치배상법을 제정하여 희생자들에게 연금 형태의 보상을 장기적으로 지급했지만 여기에도 검은색 인식표를 패용했던 부랑인 등은 배제됐다. 인종, 정치, 세계관, 종교에 의한 이유로 배제된 유대인, 정치인 등만 희생자로 인정됐다. 부랑인 등은 1990년도를 지나면서 뒤늦게 보상 대상이 됐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 불안 심리를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 도시 정화, 보통 사람들의 편안한 퇴근길을 위해서 부랑인을 배제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고서 말이다." 이재승 교수의 지적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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