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0대 커플은 2년째 사기중..속수무책 사이버 물품사기

박소연 기자 입력 2014. 11. 23. 06:01 수정 2014. 11. 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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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 사이버 물품 거래사기에 안일한 경찰 대응..피해자 속출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소액 사이버 물품 거래사기에 안일한 경찰 대응…피해자 속출]

20대 초반의 커플이 지난해부터 상습적으로 수천만원 규모의 인터넷 물품거래 사기행각을 벌이는데도 경찰은 피해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21일 경찰과 피해자 등에 따르면 조모씨(22)는 지난해부터 네이버카페 '중고나라' 등에 공연티켓이나 노트북, 카메라 등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리고 여자친구 구모씨 명의 계좌로 돈을 입금받아 가로챈 혐의로 지난해 12월 검거됐다. 그러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잠적해 기소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조씨는 그러나 가출 후 지명수배 상태에서도 현재까지 1년 넘게 수천만원대의 사기행각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의 신고로 계좌가 지급정지될 때마다 여자친구 명의 계좌를 노원과 중랑, 중부, 성동구 등에 신설하는 수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확인된 피해자만 총 80여명이며 올해 10월부터 한 달간 신당동과 왕십리, 영등포에서 개설된 계좌로 추가 피해 금액만 최소 1600여만원에 이른다.

조씨는 수사기관을 보란 듯 농락했다. 사기범죄정보사이트 '더치트'와 중고나라 카페에는 조씨의 사기행각에 대한 정보와 피해자들이 알아낸 조씨의 신상명세가 낱낱이 공개돼 있는데도 경찰은 1년째 조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조씨는 최근까지 여자친구 실명이름이 태그된 커플사진을 당당히 자신의 실명이름 페이스북에 전체공개로 게시하기도 했을 정도다.

조씨의 범행은 날로 대담해졌다. '유니크로' 안전거래 문자메시지를 조작해 피해자들에게 보내는가하면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가족관계증명서도 보내 구매자들을 안심시켰다. 주로 수십만원대였던 사기 액수는 지난달 들어 140만원(아이폰6), 235만원(TV) 등으로 규모가 커졌다. 피해자들이 사기당한 사실을 알아채고 SNS 등을 통해 신고 의사를 밝히면 조씨는 'OO일까지 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돈 돌려주면 허위신고 된다. 명예훼손으로 맞고소 하겠다'라며 오히려 피해자들을 협박했다.

하지만 관할 경찰은 이 사건들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좌에 따라 여러 경찰서로 사건이 분산돼 사건 수와 피해금액이 줄었기 때문. 지난해 노원경찰서와 중랑경찰서에 접수된 사건은 지난해 12월 검찰에 넘겨진 후 수사가 사실상 중단됐다. 올해부터 서울 중부경찰서와 성동경찰서 등에 피해사례가 계속 쌓였지만 별건으로 분류됐다.

피해자들은 각개전투를 벌여왔다. 지난달 18일 '중고나라'에서 조씨에게 노트북을 사려다 고시공부와 알바를 병행하며 모은 돈 100만원을 날린 휴학생 김모씨(24)는 한 달째 힘겨운 싸움의 선봉에 서있다. 김씨는 "피해 당일 112에 신고했으나 경찰이 진술서도 대충 받고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해도 무시해 충격을 받았다"며 "심지어 주민등록증 사본과 계좌 영수증 서류도 제대로 받지 않아 재방문을 시켰다"고 꼬집었다.

국민신문고와 경찰서 감찰단에 민원을 올리고 수사이의신청까지 해도 수사에 진전이 없자 김씨는 사실상 '셀프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누적된 피해자들 30여명을 모아 단체카톡방을 꾸려 조씨의 소재를 파악하는 공동대응을 시작한 것. 그러나 이들은 피해자들이 속속 추가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담당 수사관을 재촉하고 진정을 넣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깨닫고 무력감을 느꼈다.

김씨는 "조씨 커플은 자신들의 신상을 피해자들에게 당당히 공개하면서도 허술한 거짓 진술과 잠적을 통해 공권력을 농락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공권력이 이렇게 무능한가. 돈은 못 받더라도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씨를 꼭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담당 수사관들은 수사 중이라는 입장이다. 서울 중부서 관계자는 "사건 접수를 받자마자 부정계좌 등록하는 등 조치했다"며 "작년이나 다른 서에서 발생한 건 별개고 우리에게 접수된 6건에 관해 향후 CCTV 등을 받아 추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동서 관계자는 "경제팀엔 매일 고발사건이 수북이 쌓여 수배 내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며 "맘먹고 도망 다녀 안 잡히는 걸 뭐라 할 순 없다. 신중하지 못하게 거래한 개인 잘못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21일 경찰청은 조씨가 도주한 지 11개월 만에 노원서 악성사기전담팀에 수사협조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또 조씨의 여자친구를 피해자가 아닌 공범으로 기소했다고 전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은 피해금액이 단 몇천원이라도 철저히 수사한다"며 "각 경찰서에 하루 수십건씩 사건이 접수되고 각종 금융범죄와 명예훼손도 늘어나 수사관 1인당 사건이 넘치는 형편이다. 피해계좌 지급정지 절차도 잘 안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조씨의 여자친구 구씨는 경찰조사에서 "반강제로 협박을 당해 계좌개설을 해준 것"이라며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인터넷 사기범죄는 총 3만9282건으로 2011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인터넷 사기 범죄 유형 중 직거래 물품사기 피의자가 4178명(77.2%)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피의자 연령대는 10~20대가 82.2%로 드러났다. 물품사기는 낮은 연령대의 학생들이 가장 쉽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범죄인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인터넷 물품거래 전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사이버캅'이나 '더치트' 등에서 사기피해 신고 여부를 검색하고 안전결제를 하는 것 이외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도 사이트 홍보가 부족하고 정보가 분산돼있어 판매자들에게 보다 높은 책임감과 보안 요건을 의무화해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소액 사기사건이라도 경각심을 갖고 정보를 공유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전현욱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정된 수사자원을 활용해야 하는 현실적 한계가 있으므로 전반적인 경찰 수사인력 증원이 우선돼야 한다"며 "경찰 수사단계에서 인터넷 사기에 활용된 핸드폰 번호나 계좌번호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는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관련 사건이 검색되는 경우 적극적으로 병합해 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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